2024-10-28

흐름과 보임 : ‘너머’ 없는 세계의 풍경과 에세이 영화


※ 아래는 "풍경"을 주제로 삼은 《오큘로》 제7호(2018.10.10)에 발표했던 글이다.

 

 “초속(超速)의 비행기를 생각해보자. 초속 사진기는 이 비행기를 부동의 모습으로 정착시킬 것이다.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 상호간에는 움직임은 없다. 순간을 관찰하면 운동은 존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저 아킬레스와 거북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이야기의 맹점은 공간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온다. 비행장·경주로라는 배경에 견줘보면 비행기와 아킬레스가 이동한 공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공간에는 ‘죽음’, ‘역사’, ‘시대’, ‘생애’ 같은 것이 있다.”

― 최인훈(1936~2018)의 『서유기』(1966) 중에서

“역사의 길에는 길을 잃게 하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다. 현재는 마치 도시의 맨 끝에 있어서 더이상 도시에 속하지 못하는 마지막 집 같다. 모든 세대는 놀라서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내 조상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차라리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고 조상들이 우리와 다른 족속이 아니라 그저 다른 장소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로베르트 무질(1880~1942)의 『특성 없는 남자』(1930) 중에서


상념의 주마등을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밟으면서 독고준이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 다음 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아 2018년 다원예술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마련된 엘 콘데 데 토레필의 공연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2015)을 보았다. 네 명의 연기자가 이따금 우스꽝스럽고 종종 부조리하고 대체로 과시적으로 안무된 동작들을 취하는 가운데 그러한 동작들과 딱히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사회와 예술에 대한 성찰을 담은 텍스트가 낭독 및 프로젝션된다. 공연을 보기 전에 살펴본 프로필을 통해,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그룹의 작품 가운데는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를 본 이후의 대화 장면들>(2012)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공연 도중에는 라스 폰 트리에 같은 인물이 여전히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는 식의 텍스트를 보곤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짐짓 세상을 근심하는 예술적 허세와 결합한 공허하게 도발적인 영화적 형식의 대가들을 호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그룹의 작업을 폄훼하려 든다면 온당한 일이 아니겠지만, 어쩐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만은 미리 솔직히 밝혀두는 편이 좋겠다. 즉, 나는 엘 콘데 데 토레필의 공연에 대해 편견 없이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

공연을 보는 내내 무대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골몰하다 가끔 빠져나와 다시 무대를 응시하곤 했는데 사실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이란 공연 자체가 이런 관람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영 달라붙지 않는 동작과 텍스트 사이의 거리를 시종일관 가늠하며 집중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터이니 말이다. 물론 이런 거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위 연기자들의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텍스트에 담긴 ‘통찰’을 음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감각과 통찰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을 잠시 제쳐둔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의문도 떠오른다. 미셸 우엘벡, 파울 B. 프라치아도, 지그문트 바우만 등의 익숙한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머릿속의 참조목록을 뒤적이며 이 공연의 은유와 알레고리를 ‘해석’하고 나아가 의미를 직접 ‘생산’해내는 지적이고 적극적인 관객은 엘 콘데 데 토레필의 이상적인 관객일까 기만당한 관객일까 그도 아니면 조롱의 대상일까?

차라리 불성실한 관객이 되기로 마음먹은 나는, 이전에 보았던, 그리고 엘 콘데 데 토레필의 공연이 있고 나서 한 달 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장-다니엘 폴레의 풍경영화 <지중해>(1963)와 그에 대한 노엘 버치의 비판을 떠올려 본다. 『영화의 실천』에서 그는 폴레의 시도를 매우 흥미롭게 보면서도 궁극적으로 <지중해>에서는 이미지의 시공간과 필립 솔레르스가 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언어 텍스트의 시공간이 각기 서로를 무시하는 것처럼 전개되어 구조적 긴장이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숏과 숏의 연결이 없는, 다시 말해 숏의 병치만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지중해>를 에세이적 영화의 한 모델로, 버치를 영화적 에세이 개념을 이론화한 선구적 비평가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버치의 이런 비판은 좀 기이하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에세이적 영화에 대한 버치의 입장을 잘 살펴보면 <지중해>에 대한 그의 비판에는 꽤 일관적인 구석이 있다는 점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는 조르주 프랑쥐의 <짐승의 피>(1949)와 <앵발리드 기념관>(1952)을 진정한 에세이 형식의 영화라고 상찬하면서 이 영화들의 형식은 성찰이고 주제는 이념들의 대립이며 구조는 바로 이러한 대립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버치에게 있어서 에세이적 영화란 곧 ‘이념들의 영화(un cinéma à idées/cinema of ideas)’다. 내 나름대로 버치의 개념을 부연하자면 이념들의 영화란 이념적인 영화와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념들의 영화는 어떤 특정한 이념에 고착된 영화가 아니라 이념들의 배치를 통해 긴장을 만들어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념 자체가 아니라 긴장이다. 심지어 영화작가는 자신이 배치하고 있는 이념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기댈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면 <지중해>가 버치의 눈에 그토록 불만족스럽게 비쳤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풍경 이미지들은 어떤 이념들과도 관계되어 있지 않은 가시성(visibility) 자체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서 긴장이 발생하느냐의 여부 또한 어느 정도 초현실주의적 우연에 내맡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버치는 “영화는 재봉틀과 우산[을 병치시키는 것]과 같은 단계가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폴레에게 있어서 주요한 관심은 이념들 자체의 배치보다는 배치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 어떤 틈을 만드는 일이었고 그 틈에서 발생하고 또 거기로 지나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념들도 그러한 것들 가운데 속할 수 있는지는 다분히 불확정적인 채로 남아 있다. 버치는 그런 틈으로 지나가는 것이 있다면 영화감독 자신도 모르는 것이거나, 그저 사소한 것 ― <지중해>의 경우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즉 지중해 ―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멈추고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의 무대로 돌아와 보면, 이 공연을 이루는 안무 동작들은 <지중해>의 풍경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념들과도 관계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동작들의 배치를 통해 어떤 틈도 만들지 않는 순수한 가시성 자체처럼 보인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저 보일 뿐 그 무엇도 보이게 만들지 않는 춤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비미학』의 알랭 바디우라면 아무것도 형상화하지 않는 비인격적인 몸, 사유 자체 외의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유의 은유”인 동시에 사유의 모든 치장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사유의 순수한 소멸(consumation)”이기도 한 춤이라고 부른 것보다도 멀리, 아마도 지나치게 멀리 나간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은 한 인터뷰에서 “연기자들에게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춤은 아무것도 감추는 것이 없고 오직 보여주기만 하는 춤이다. 엘 콘데 데 토레필의 파블로 기스버트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연극이라기보다는 무대 위의 추상이라 할 춤이에요. 저희는 지적인 구성을 전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비논리적이거나 모순적일 수도 있는 삶의 다른 형식들을 선호하죠. 저희가 공연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낭독될 텍스트를 제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말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죠. 하지만 창작을 개시한다는 건 모험을 찾아 떠나는 것과 같죠. 무엇보다 신체적인 모험이요.”

문득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의 춤은 풍경으로서의 춤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기스버트가 말하고 있는 추상이란 사실 풍경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즉,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으로서의 춤이다. 그러니까 엘 콘데 데 토레필의 공연을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저항의? 역사의? 아니면 사유의?) 가능성들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무엇이건 모든 가능성들을 삼켜 버리는 풍경의 힘을 목격하게끔 하려 든다. 그런데 모든 의미의 구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 자체로 심미화된 경관으로서의 풍경이란 것을 어떻게 무대 위로 옮겨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풍경으로서의 춤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의 춤에서 유추할 수 있는 풍경의 개념은 어떤 것인가? 

꽤 영리하게도 이들은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1985)에 나타나는 풍경 이미지를 예로 들고 있는데, 유대인에 대한 집단적 고문과 학살이 있었던 장소를 평화롭고 목가적으로 뒤덮고 있는 폴란드의 전원 풍경이 그것이다.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역사와 기억의 가능성? 이런 진단은 기껏해야 ‘모든 가능성들을 사라지게끔 하는 풍경의 범람에 저항하라!’는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올바른, 따라서 그만큼 더 미심쩍은 주장을 낳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엘 콘데 데 토레필의 이런저런 말보다는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이라는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풍경 개념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풍경을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에 국한해 이해할 필요도 없고, ‘동시대의 풍경’이나 ‘정치적 풍경’ 같은 용례를 비유적인 것이라 해서 굳이 배척할 필요도 없다. 개념을 고찰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것의 사용이지 그것에 대한 정의나 통념이 아니다. 따라서 풍경이라는 개념의 이 모든 사용을 포괄하는 풍경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엘 콘데 데 토레필 스스로도 이처럼 포괄적인 풍경 개념에 의존해 작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을 보면서 10개의 유럽 도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해서, 제목의 ‘풍경’을 이러한 도시들, 혹은 유럽이라는 지리적 경계와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풍경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무대 위에 벌거벗은 가시성의 춤으로서 제시되는 바로 그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풍경이란 어떤 대상이 그것을 둘러싼 어떤 서사도 없고 가시성 이외의 어떤 속성도 없어 보이는 상태로 변환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굳이 ‘변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풍경이란 자연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풍경과 영화』라는 선집을 편집한 마틴 르페브르는 프랑스의 예술사가 안느 코클랭이 『풍경의 발명(L’invention du paysage)』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장소(lieu)’와 ‘풍경(paysage)’을 구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 ‘장소’로 옮긴 것은 그리스어로는 ‘토포스(topos)’에 해당하며 코클랭과 르페브르의 문맥에서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 혹은 순우리말로 ‘터’에 가까운 의미로 읽힌다. (르페브르는 프랑스어 ‘lieu’를 영어로 ‘setting’으로 번역하고 있다.) 코클랭을 참조하며 르페브르는 장소란 “전적으로 가변적인 개념적 구성물”로서 무엇보다 “이야기와 사건의 공간”인 반면 풍경은 “사건성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으로서 “일종의 반(反)장소”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흥미롭긴 하지만 풍경에 대한 그의 이해는 여전히 공간 개념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구석이 있다. 비단 공간만이 아니라 사물과 인물, 표정과 몸짓과 행위, 나아가 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떤 대상이건, 그것이 자신을 둘러싼 서사에서 풀려나고 의미나 가치의 체계로부터 탈각한 것처럼 보일 때, 그리하여 그저 보인다고 하는 가시성 이외의 어떤 속성도 없어 보이는 상태로 변환될 때, 그때 대상은 풍경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풍경은 정신적이다. 가령 정치적 풍경이란 어떤 당파적 서사·의미·가치에서 빠져나와 각각의 당파들이 협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빚는 상황 자체를 응시할 때 떠오르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동시대적 풍경이란 것을 보고자 하는 이는 언제나 반시대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엘 콘데 데 토레필의 파블로 기스버트는 자신들의 공연이 가시화하고 있는 풍경으로서의 춤을 ‘추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데 다시 한번 주목해 보자. 이는 언뜻 보기에 가시성 그 자체로 환원된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 실은 미심쩍은 것임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스펙터클의 구체적 존재 양식이 바로 추상”이며 “스펙터클이란 사람들이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화폐”라고 지적한 『스펙터클의 사회』의 기 드보르다. 의미심장하게도, 스펙터클에 대해 논하고 있는 드보르와 풍경에 대해 논하고 있는 코클랭 둘 모두, 각자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들을 ‘제2의 자연’이라 칭하고 있다. 그저 보이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그렇게 보이게끔 변환되고 구성된 것이라는 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풍경 혹은 스펙터클에 대해 고찰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펙터클이란 권력의 광학이 아니라 건축”(『지각의 중지』)이라는 조너선 크래리의 지적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풍경은 곧 스펙터클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풍경을 비단 대지(land)나 전원(pagus)과만 결부된 개념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그 무엇보다도 흐름(風)과 보임(景)을 통해 우리에게 현전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 이처럼 풍경 개념을 확장해 보면, 영화적 에세이에 관심을 지닌 이들이 왜 종종 풍경을 응시하는 일에 끌리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물론 영화적 에세이스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풍경은 대개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이기는 하다. 이는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풍경 개념이 서구에서 16~7세기에 정립된 회화적 전통의 그것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무성영화 후기의 도시교향악 장르 등은 논외로 하고 현대적 의미에서 본격적인 에세이적 풍경영화라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그동안 한국의 영화제, 시네마테크, 미술관 등에서 상영된 작품들만 고려해 봐도, 아다치 마사오의 <약칭: 연속사살마>(1969),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의 <포르티니: 시나이의 개들>(1976)과 <너무 일찍, 너무 늦게>(1982),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캘커타 사막의 베니스라는 그의 이름>(1976), 샹탈 아커만의 <집에서 온 소식>(1977)과 <동쪽>(1993), 제임스 베닝의 <원 웨이 부기 우기>(1977)와 이의 속편인 <27년 후>(2005), 패트릭 킬러의 <런던>(1994) 및 그 뒤를 이은 ‘로빈슨 연작’들, 존 지안비토의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2007), 니콜라 레의 <안더스, 몰루시아>(2012), 김응수의 <아버지 없는 삶>(2012), 제니 올슨의 <로얄 로드>(2015) 등 죄다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을 풍경으로 삼고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이들의 풍경 개념이 제한적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이러한 사례들만으로도 영화적 에세이에서 풍경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풍경이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되는 법은 없다. 혹은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에 가서 촬영한 베르너 헤어조크의 <어둠의 교훈>(1992) 식으로 재난의 광경을 숭고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바라보지도 않는다. 즉, 위에서 사례로 든 영화들에 보이는 풍경은 개념적으로는 회화적 전통의 풍경과 유사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전적으로 다른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풍경은 일견 자연적이고 선험적으로까지 보이는 그것의 순수한 가시성이 실은 변환되고 구성된 것임을 논증하기 위해 제시된다. 이 말을 영화적 에세이스트들의 진정한 관심은 풍경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이면 혹은 ‘너머’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데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풍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풍경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다만 풍경은 흐르고(교환) 보이는(가시성) 것일 뿐이다. 그런데 흐름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보이는 것을 통해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순간에 사진 찍듯 바라본 풍경이 교환 없는 가시성 자체로만 비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적 에세이는 가시성 이외의 어떤 속성도 없어 보이는 풍경이 실은 교환되는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하나의 풍경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자명하기 이를 데 없다. 가시성이 극도로 강화된 풍경은 여기와 저기,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교환의 토대가 되는 시간적·공간적 대립항들의 한쪽을 억누르면서 여기-현재, 여기-과거, 저기-현재, 저기-과거 가운데 하나에 고착된 기만적인 구성물을 산출해낸다. 영화적 에세이스트들은 이처럼 가시성으로만 환원된 것처럼 보이는 풍경 옆에 시간적·공간적으로 이질적인 풍경을 병치하거나 아니면 아예 풍경이 아닌 것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풍경의 가시성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님을 논증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이러저러하게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비가시적 힘에 대한 사유로, 풍경의 이면이나 너머에서가 아니라 풍경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힘에 대한 사유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한 논증의 과정이 없는 풍경영화는 영화적 에세이와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따라서 에세이로서의 풍경영화란 서로 이질적인 가시적 풍경들의 특정한 배치를 통해 비가시적인 것의 작용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풍경이 꼭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일 필요는 없고 교환(흐름)과 가시성(보임) 자체로 환원된 대상으로서의 확장된 개념의 풍경일 수 있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다. 에세이란 형식·양식·스타일·태도·장르가 아니라 방법(method)이다. 그리고 에세이의 대상으로서의 비가시적인 것은 오직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표현하고 또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이념이다. 이런 이념은 내성(內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이념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자본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 마르크스의 『자본』의 영화화를 구상하면서 적은 노트(1927~8)에 ‘방법’이란 용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가운데 일부만 추려봐도 “변증법의 방법을 보여줄 것”, “방법의 영화화”, “영화 <자본>의 무대는 변증법적 방법을 통한 시각적 교육으로서 전개된다”, “우리에게 있어, [영화 <자본>의] 주제는 마르크스의 방법이다”, “문화적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변증법적 논증만이 아니라 변증법적 방법을 통한 교육이기도 하다” 등 곳곳에서 방법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에이젠슈테인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적 방법이야말로 곧 에세이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이질적인 풍경들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논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뉴욕증권거래소,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 중국 동부 연안의 공장 지대, 유럽으로 향하는 보트에 탄 아프리카 난민들, 에이젠슈타인의 <파업>(1925)에서 발췌한 몇몇 장면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를 가리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런 풍경들은 삽시간에 여기-현재를 가시화하고 있는 듯 보이는 제법 지적인 액티비즘의 풍경으로 동질화되고 만다. 특히 증권거래소처럼 동시대 자본주의라는 힘과 관련된 흐름마저도 곧바로 여기-현재의 가시성(전광판과 모니터 앞에 모인 사람들)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상징이 등장할 때는 더욱 그렇다. 에이젠슈테인이 자신의 노트에 증권거래소는 증권거래소로서 제시되어서는 안 되며 수많은 ‘작은 세부들’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듯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앞서 사례로 든 영화들 가운데,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동유럽의 몇몇 장소들을 방문해 16mm 카메라로 촬영한 풍경들을 별다른 내레이션이나 대사 없이 배치한 아커만의 <동쪽>이 여기-과거의 정서와 저기-현재의 이미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진동하다 그것이 무엇이건 어떤 이념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멜랑콜리로 동질화된 풍경으로 향하는 것도 떠올려 볼 수 있다. 풍경의 가공할 가시성에 저항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며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영화적 에세이스트들이 언어 텍스트를 반(反)풍경적 장치로 활용하는 일에 이끌리는 것이다. 무언의 이미지의 흐름만으로 에세이적 담론을 구성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에 반대하며 “에세이 영화는 발화된 것이건 자막 혹은 사이자막으로 처리된 것이건 텍스트의 형식으로 된 말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필립 로페이트 같은 이의 견해(「켄타우로스를 찾아서: 에세이 영화」)가 일견 나이브해 보일지 몰라도 실천적으로 이를 반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것이건 저것이건 이른바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면 모조리 뭉뚱그려 에세이적 영화라 칭하곤 하는 숱한 논자들보다는 이처럼 논란이 될만한 방식으로라도 규범적 진술을 내놓는 로페이트 쪽이 비평적으로 훨씬 정직하다.

이쯤에서 한국영화의 경우로 눈을 돌려보면, 가시성 이외의 어떤 속성도 없어 보이는 풍경은 적어도 199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권금성으로 향한 두 남자가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관광객들만 둘러보다가는 시큰둥하게 “그냥 그런데?”라고 말하며 하산해버리는 모습을 무심하게 담은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1998)의 한 장면은 한국영화의 한 특이점을 이룬다.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에 있어서 사정이 이럴진대 그 이외의 대상들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적 전통의 풍경화(산수화), 특히 서화일치(書畫一致)라는 표현이 뜻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등가성 및 이념과 풍경의 일치를 추구하는 문인화(文人畵) 같은 장르의 특성이 한국영화에 이식되었다는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 문인화를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대해 “추사의 경지는 오묘하다 해도 너무 모화사상(慕華思想: 중국 것을 흠모하는 경향)에 빠져 도무지 이 땅의 냄새가 나질 않아”라고 비판하며 화가 장승업에게 “너는 글 없이 그림만으로 완벽한 너만의 화법을 개척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취화선>(2002)의 김병문(안성기) 같은 인물은 볼 수 있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사람들이 모여 추사의 <세한도>을 함께 감상하는 장면에서 임권택은 원본대로라면 그림 두루마리 왼편에 길게 이어져 있을 추사 자신과 여러 다른 이들의 발문(跋文)을 아예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땅의 냄새가 나는 풍경, 이는 그 자체로 심미화되기 이전에 감정적으로 물든 풍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상처, 트라우마, 혹은 한으로 얼룩져 부정적으로 여성화된 풍경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영화는 이러한 부정성에서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감정적으로 물든 풍경이란 여하간 부정적으로나마 의미화·역사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벗어나 가시성 자체로 환원된 풍경으로 향할 때 그러한 풍경의 가공할 무의미에 저항해 버티면서 영화를 구성하는 방법론이란 한국영화에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미처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세상은 서둘러 가시성으로 환원된 것처럼 보이는 풍경으로, 스펙터클로서의 풍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이는 <상계동 올림픽>(1988)으로 한국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연 인물로 평가되는 김동원이다. 1997년에 그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자료화면, 인터뷰, 재연, 내레이션 등을 통해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명성, 그 6일의 기록>을 발표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종반부에서 그는 투쟁 10주년이 되는 1997년 6월 10일에 명동성당 주변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해 보여준다. 이곳에서 한때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 흔한 기념식도 없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과 경찰들 몇몇과 거리에서 노래하는 이와 이런저런 이유로 성당을 방문한 사람들이 보일 따름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시성으로 환원된 풍경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김동원은 10년 전 투쟁의 현장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이 풍경 위에 겹쳐(superimpose) 놓더니 이내 아예 과거의 영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희망은 오직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내레이터의 말로 이 시퀀스는 마무리된다. 이를 1990년대까지도 잔존한 1980년대식 운동권 영화의 흔적이라고 치부해 버려선 곤란하다. 오히려 그런 흔적이라면 <명성, 그 6일의 기록>이 아니라 이한열을 어쩐지 ‘교회 오빠’를 닮은 ‘운동권 오빠’로 둔갑시켜놓은 장준환의 <1987>(2017)에 넘쳐난다. <명성, 그 6일의 기록>의 김동원은 어느덧 여기-과거의 노스탤지어적 풍경(무용담)으로 화해버린 1987년 명동성동 투쟁의 이미지가 여기-현재의 가시성으로서의 풍경을 배경으로 해서만 의미화·역사화될 수 있다는 데 놀라고 있는 중이다. 저항의 가능성은 어느덧 풍경 앞에서만 성립되는 가능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압도적인 가시성의 풍경 앞에서 의미화·역사화의 가능성이 결국 사라지고 삼켜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은 여전히 남는다. “희망은 오직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환상적인 내레이션은 이런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기합처럼 들린다. 

이런 추정을 확신하게 된 것은 <명성, 그 6일의 기록>으로부터 꼬박 20년 후에 발표된 김동원의 신작 <내 친구 정일우>(2017)를 보면서다. 이 작품은 김동원 감독을 <상계동 올림픽> 제작으로 이끌었던 고(故) 정일우 신부(본명은 존 데일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대부분은 김동원 자신이 촬영한 것이 아닌 생전의 정일우 신부의 모습이 담긴 기록영상과 지인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명성, 그 6일의 기록>과 유사하지만, 내레이션이 감독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화자가 낭독하는 편지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다른 부분이다. 언뜻 회고와 추모의 성격을 띠고 있는 듯한 이 작품에 의외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역시 압도적인 가시성으로서의 풍경이다. 영화가 3분의 2쯤 지났을 무렵, 비극적 과거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상계동과 용산의 현재 풍경, 그리고 바다 위로 건져 올린 세월호의 모습을 극부감으로 찍은 영상이 돌연 제시된다. 그 위로 감독 자신의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 공동체란 낯선 단어처럼 들립니다. (…) 상처받은 이들이 앞장서서 싸워야만 하는 이 현실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불안이 아니라 공포이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비명이다. <명성, 그 6일의 기록>이나 <내 친구 정일우>에서 이런 풍경 시퀀스가 드물고 예외적인 것은 오히려 김동원이 오늘날 압도적인 가시성으로서의 풍경이 도래하는 것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한 때문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김동원의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든 영화적 에세이라고는 불리기 힘든 것이지만, 어느덧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영상작가들에게 최신의 경향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하지만 방법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풍경 에세이의 풍경들에 맞서는 가장 정밀한 음각(陰刻)의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자문하기보다는, 재개발 구역이나 도심의 낙후된 지역 등 공동체를 무너뜨리면서 출현한 풍경에 감정적으로 탐닉하는 풍경 에세이들 말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풍경 에세이들은 풍경의 가공할 가시성에 저항하는 반(反)풍경적 장치로서의 말이 아닌 감정적으로 물든 추억, 회고, 우수의 말들로 풍경을 다시 부정적으로 여성화하곤 한다. 이는 영화적 에세이를 하나의 방법이 아닌 형식이나 스타일로 취한 결과다. 반면 김동원의 말은 반드시 그에 대항하는 말과 함께 온다. 감독 자신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여전히 카메라가 세월호 선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정일우 신부의 말이 들려온다. “왜 그 싸움[을],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 버리느냐? 왜 그 사람들만이 이 나라를 위한 싸움[을] 해야 되느냐? 얻어맞고, 다치고, 죽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면은 저나 여러분들께서 그 덕을 볼 건데, 너무하잖아요?” 이 내레이션이 이어지는 동안 김동원은 세월호 선체를 보여주던 화면을 슬며시 페이드아웃하고 한동안 무지화면만을 남겨 둔다. 풍경의 소멸, 혹은 암흑이라는 절대적인 풍경의 출현. 그렇다, 이것은 내기에 걸린 이미지다. 질 J. 올망은 이미지란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지운다 해도 언제나 무언가가 남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의 무대로 다시 돌아가 본다. 거듭 말하지만, 이 공연에서 풍경이란 다름 아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춤이다. 그렇다면 이 공연을 위해 씌어진 텍스트는 어떠한가? 이것은 춤이라는 풍경의 가시성에 저항하는 반(反)풍경적 장치가 아니다. 그보다는 춤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사유의 흐름에 가깝다. 이 공연을 보면서 춤과 텍스트를 동시에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엘 콘데 데 토레필은 풍경 앞에서 과연 사유는 버티는지, 아니 버틸 수 있는지를 묻는다. 풍경으로서의 춤의 가시성에 매혹되어 텍스트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사유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사유란 무엇인가? 세계 안의 것이고 세계 밖의 것이다”라고 로베르트 무질은 썼다. 그렇다면 바깥 없는 세계에서 사유란 무엇인가? 이 공연은 가공할 위력의 가시성으로서의 풍경 앞에서 사유를 두고 벌이는 위험한 내기이다, 라고 생각하며 국립현대미술관 멀티프로젝트홀 입구를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