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급사 엠앤엠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고전 및 예술영화 전문 OTT 콜렉티오(https://collectio.co.kr)에서 "유운성의 애프터크리틱"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비평을 연재하게 되었다. 2025년 1월부터 대략 3개월마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원고지 100~150매 분량의 글을 공개할 예정이다. 첫 번째 글은 "세 가지 시대: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다. 이 글은 2024년 12월 15일 오후 4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 상영 후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는 콜렉티오에서 볼 수 있으며, 해당 영화 메뉴 하단의 문서 아이콘(아래 사진)을 누르면 글을 볼 수 있다. 단, 구독자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한 부분에서 우리는 찰리 채플린의 <살인광 시대>와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의 포스터가 벽에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본다(그림 1). 극 중 주인공인 영화감독 미겔 가라이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 편집자인 막스의 집에서다. 왜 이 두 영화의 포스터일까? 무심코 보아 넘겨도 좋을 소품이라기엔 지나치게 눈에 띈다. 여기서 시작해 보자.
지독한 과작의 작가 빅토르 에리세가 <햇빛 속의 모과나무> 이후 무려 31년 만에 발표한 신작에는 실로 채플린적인 단순함이 있다. 채플린 영화의 수수께끼는 플롯이나 형식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를 대표하는 떠돌이 캐릭터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도 일면적이다. 영화의 모든 측면에서 그토록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채플린의 영화가 대단히 복합적인 영화적 효과를 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수수께끼다. 이걸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다. 심지어 채플린이 떠돌이 캐릭터를 버리고 연쇄 살인범으로 등장하는 <살인광 시대> 같은 경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이유로, 채플린의 영화는 비평적 모험의 극지極地다. 레이의 영화, 특히 <그들은 밤에 산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의 영화는 일종의 감정적 거울이다. 감정과 판단은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레이의 영화는 비평적 판단의 궁지窮地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마지막 부분, 폐관한 어느 극장에서 미완의 영화 <작별의 눈빛>이 스크린에 상영될 때, 스크린 앞 객석에 앉아 있는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감응할 터다. 그 감응은 <작별의 눈빛>이라는 영화가 없었다면 아예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만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것은 미완의 영화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작별의 눈빛>은 또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관객으로 호명한다. 영화 속 영화관의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클로즈 유어 아이즈>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영화 밖 영화관의 우리 또한 관객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영화와 감정적으로 관계하는 관객(성)은 이렇게 이중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감응이 가능할까?
[이어지는 글은 콜렉티오에서 열람 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