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7

안젤라 리치 루키와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의 영화



※2019년 인디다큐페스티발(www.sidof.org)은 2018년 2월 타계한 안젤라 리치 루키(1942~2018)를 추모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녀는 동반자인 예르반트 지아니키안과 함께 1970년대부터 꾸준히 일련의 실험적인 파운드푸티지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아래는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야만의 땅> 상영 후 진행된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현장 강연 청취와 텍스트를 통한 읽기의 차이를 고려하여 녹취본에서 구성을 일부 수정하고 몇 가지 자료와 정보, 미처 강연에 담지 못했던 강연 원고의 내용 일부를 보완해 게재함을 밝혀 둔다. 이 강연 기록은 인디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 뉴스레터 코너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안젤라 리치 루키와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오늘날에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기존의 영상 클립들을 활용해 만든 파운드푸티지(found footage) 영상작업을 접하는 일은 드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젤라 리치 루키와 예르반트 지아니키안만큼이나 포괄적이고 집요하게 장편 길이의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 온 경우는 드뭅니다. 이들의 영화가 그동안 한국에서 폭넓게 소개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동시대 파운드푸티지 영상작업의 계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들의 작품은 영화제에서조차 거의 상영되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오! 인간 Oh! Uomo>(2004)이 상영된 적이 있고, 2014년에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야만의 땅 Pays Barbare>(2013)이 상영된 것 정도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영화계에 각인시킨 초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극지에서 적도까지 Dal polo all’Equatore>(1986)는 아직까지도 상영된 바가 없지요. [이 작품은 온라인 우부웹에서 볼 수 있다: www.ubu.com/film/gianikian.html] 그리고 2013년에 광화문의 일민미술관에서 안젤름 프랑케가 기획한 전시 <애니미즘>이 열렸을 때 단편 <다이아나의 거울 Lo specchio di Diana>(1996)이 여러 초청 작품 가운데 하나로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정상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다 Su tutte le vette è pace>(1998)와 <동양 이미지: 반달 투어리즘 Images d’Orient: Tourisme Vandale>(2001)은 이번에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한국에서 처음 상영되는 작품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특별전은, 영화제 여건상 많은 작품을 상영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뜻 깊은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야만의 땅>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 중 주요작들의 일부 클립을 보여드리며 이 두 감독들이 어떤 작업을 해왔었는지 전체적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40년이 넘게 함께 작업해 왔습니다. 둘은 모두 1942년생으로 동갑이고, 리치 루키는 작년 2월 2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먼저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약 2분 정도 영상 클립을 보여줌]


지금 보여드린 영상은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작품은 아닙니다. 아마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것은 아직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수입되어 개봉 예정인 장-뤽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 북 Le livre d’image>(2018)의 도입부입니다. 여기서 굉장히 낡은 부식된 필름을 서서히 풀어내는 광경이 보이는 클립은, 고다르가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7분짜리 단편 <투명필름 Trasparenze>(1998)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클립은 <이미지 북>의 영문 예고편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A New Film by Jean-Luc Godard”라는 텍스트가 뜰 때 보이는 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투명필름>은 부식되기도 쉽고 취약한 속성을 가진 어떤 물질, 즉 필름이라는 물질을 다루는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작업에 대해 안내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여드린 클립에 보이는 필름은 그냥 단순히 낡은 필름인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서 풀려나오고 있는 필름은 그 자체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작업 경력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띠는 역사적 자료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투명필름>(1998)


고다르가 <이미지 북>에서 동시대와 관련해 이미지의 아카이브, 혹은 이미지의 카탈로그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방식과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방법론 사이에는 분명 상응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영화가 개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미지 북>의 도입부에서 고다르는 이런저런 손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드니 드 루즈몽(Denis de Rougemont)의 저서에서 따 온 것으로 알려진 “손으로 생각하기”라는 말을 읊조리는데요. 손으로 작업하고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인데 기묘하게도 고다르가 자신의 작품에서 그들의 영화에서 따온 클립을 인용하기 직전에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지 북>에서 <투명필름> 영상 클립이 나올 때는 여성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옵니다. “오르페우스는 지하에서 돌아왔다. 긴 여행 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사람은 누구인가?”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작업과 관련해 종종 언급되는 글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직접 쓴 ⌜우리의 분석적 카메라 Our Analytical Camera⌟인데요. 원래 이 글은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가 창간한 잡지 『트라픽 Trafic』에 ‘Notre caméra analytique’라는 제목으로 1995년에 실렸던 것입니다. 2017년에는 『파운드 푸티지 매거진 Found Footage Magazine』에 2000년의 영문본이 재수록되기도 했고요. 이 글을 읽어 보면 <투명필름> 클립에서 보았던 부식된 필름을 찾게 된 경위를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이 글이 처음 발표되고 나서 얼마 후에 완성된 <다이아나의 거울>의 구상이 적혀 있기도 합니다.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처음 만난 것은 1974년이고 이듬해인 1975년에 이들이 공동으로 연출한 첫 영화인 10분짜리 단편 <해체의 카탈로그 Catalogo della scomposizione>가 나옵니다. 이번에 상영되고 있는 세 작품처럼 발굴된 영상을 재료로 만든 첫 작품이 나오는 것은 그보다 6년 뒤로 <카라괴즈 카탈로그 Karagöez - Catalago 9,5>(1981)가 그것입니다.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1975년에 밀라노로 와서 살게 되는데, 그러던 중 1982년 봄(혹은 1981년 겨울)에 밀라노의 한 필름 랩에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척자인 루카 코메리오(Luca Comerio)의 필름 뭉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랩의 소유주이자 운영자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코메리오의 수석 카메라맨으로 일했던 파올로 그라나타의 조카였다고 해요. 이 필름 뭉치들을 찾을 당시만 해도 코메리오는 사람들한테서 완전히 잊힌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랩도 거의 문 닫기 직전이었고요. 문제는 코메리오의 필름이 질산염 필름인데다 부패 정도가 심했기에 그 자체로는 프린트를 뜰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이야 공식 아카이브에서 보관, 보존되고 디지털 변환까지 된 영상물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지만 당시 이들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는 거죠. 자신들이 발견한 필름을 살펴봤을 때 뭔가 흥미로운 자료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곧바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확대경으로 프레임마다 살펴보는 식으로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들 스스로 ‘분석적 카메라(analytical camera)’라고 부르는 장치를 만듭니다. 구조를 세세히 설명하기는 좀 복잡하지만 35mm 카메라의 부속품을 활용하고 밀착 프린터(contact printer)를 변형해 만든 일종의 옵티컬 프린터(optical printer)죠. 본인들은 이것이 필름을 세부적으로 관찰하는 일종의 현미경에 가까운 것이라고도 해요.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방식으로 필름을 프레임 단위로 볼 수도 있고, 느리게 재생을 하거나, 혹은 색이 들어간 필터 같은 걸 씌워 원본 필름을 재촬영하는 방식으로도 작업할 수 있게끔 고안한 장치입니다.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16mm 필름 위에 프레임 단위로 다시 재촬영을 해서 코메리오의 원본 필름으로부터 최소 347,000 프레임을 (혹은 50만 프레임 가까이를) 땄다고 합니다. 거의 애니메이션 작업하듯이 말이죠. 그렇게 코메리오의 필름 뭉치를 바탕으로 5년간 작업을 해서 1986년에 <극지에서 적도까지>라는 장편 파운드푸티지 작품을 내놓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이후에 만든 작품들에 원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분들의 경력이나 영화세계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이야기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편집자−이때 객석에 있던 신은실 프로그래머가 <극지에서 적도까지>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현재 이 작품은 디지털 프린트가 없이 16mm 판본만 존재하는데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열리는 롯데시네마에서는 16mm 영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코메리오의 원본 필름을 프레임 단위로 조사하고 속도를 조정하고 색깔을 입히기도 해서 그것을 재촬영했습니다. 때로는 음화(negative)로 반전을 시키기도 하고 원래 프레임의 특정 부분만을 확대해서 보여 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전체적으로 재구성을 한 결과물이 <극지에서 적도까지>라고 하는 이 작품인 것이죠. 

이 강의가 있기 직전에 상영된 <야만의 땅> 같은 경우에는 영상에 대해 어느 정도 코멘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노래 가사나 말이 수반되어 있지만 <극지에서 적도까지>는 코메리오에 대해 안내하는 도입부의 자막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이미지가 주가 되는 작품이죠. 여기서 우리는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파운드푸티지 영화작가로서 지니는 특이성 가운데 하나를 포착하게 됩니다. 이들의 작업을 파운드푸티지 영화실천의 계보나 맥락 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틀린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들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필름이라는 것을 모종의 형상을 담고 있는 ‘그림’이면서 그 자체로 손상되기 쉽고 소멸될 수도 있는 몸을 지닌 ‘물질’로서 동시에 제시/현재화(presentation)하는 것이라는 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이 두드러지거나 약화되어도 안 되는 겁니다. 어떤 필름을 발견했는데 이것을 다시 프린트해서 내가 작업에 사용한다, 혹은 이런 디지털 자료가 있는데 내가 하려는 작업에 부합하니 사용한다, 나는 필름의 물성(materiality)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오래된 필름을 발굴해 사용한다, 이런 식이 아니라 발견된 필름 그 자체가, 그것의 총체성이야말로 자신들의 카메라 앞에 놓이는 리얼리티요, 이 리얼리티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단지 필름에 담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필름이라고 하는 물질적 더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림’과 ‘물질’ 가운데 어느 한쪽이 주가 된 상태에서 다른 것이 부가적인 의미를 더하는 것도 아닌, 그 이중성을 동시에 포착하는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가 문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이 용어의 최상의 의미에서 충실하게 ‘다큐멘터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입니다.

예컨대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하룬 파로키가 만든 몇몇 파운드푸티지 작업들을 보면 거기서 ‘물질’이라는 측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거나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에요. 그림에 담긴 정보나 형상을 분석하는 데 보다 치중하는 편이라 할 수 있죠. 한편 피터 체르카스키 같은 작가의 파운드푸티지 작업에서는 아무래도 물질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집니다. 켄 제이콥스의 경우 그림과 물질이라는 측면 양쪽에 관심이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작품은 그림이라는 측면이 두드러지고 어떤 작품은 물질이라는 측면이 보다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는 편이에요. 반면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그림이자 물질로서의 필름이라는 대상의 리얼리티 자체를 동시에 포착하는 일이 관건이에요. 때로 코멘트에 상응하는 텍스트에 곡을 입혀 사용하거나, 원본 필름을 반전시키거나, 색을 입히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조작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본 필름을 완전히 추상적으로 변형을 시킨다거나 하는 조작은 없어요. 잠시 <극지에서 적도까지>에서 발췌한 영상을 보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약 5분 정도 영상 클립을 보여줌]


보신 바와 같이 <극지에서 적도까지> 도입부에는 어떤 산악지대의 풍경이 보입니다. 기차에서 보이는 풍경은 이탈리아 최북단,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롤 지방의 풍경입니다. 지아니키안은 바로 이 지역 출신인데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관련을 직접 언급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자신의 출신과 관련되어 있는 장소로 시작함을 밝히는 것이 영화에 흥미를 부여하는 방법 혹은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죠. 앞서 말씀드린 ⌜우리의 분석적 카메라⌟라는 글에는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극지에서 적도까지>의 각 섹션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를테면 방금 보여드린 클립에서 작품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첫 번째 섹션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기에 기차에서 본 티롤 지방의 풍경. 이 영상의 원래 길이는 5,044 프레임, 즉 97m였다. 여기서는 세 배로 느리게 보여준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처럼 생긴 필름의 구멍들(sprocket holes)은 한쪽이 모두 손상되어 없어진 상태여서 하나씩 다 만들었다. 필름 위에 보이는 철로가 가로지르는 대지를 뒤덮고 있는 화학적 안개, 즉 곰팡이는 필름 위에 실현된 망각이다. (…) 기차 터널은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 효과를 만들어낸다. 터널이란 곧 전쟁에 참전하게 될 병사들이, 비록 땅굴 같은 것이긴 해도, 수 년을 보내게 될 주요 장소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이 텍스트가 내레이션의 형태로 들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극지에서 적도까지>는 필름이라는 물질의 특성을 역사와 관련된 기억(망각)의 은유로 삼는, 말 그대로 ‘분석적’인 영화처럼 비칠 겁니다. 하지만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분석은 그런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의 <극지에서 적도까지>라는 영화를, 그 자체를 보는 경험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영화에 대해서 종종 범하는 실수는 바로 이 부분에서입니다. 이분들이 인터뷰나 글을 통해 한 코멘트와 실제로 본 영화의 경험 자체를 섞어 버리는 것이요. 정작 영화는 그런 코멘트를 통해서 서술되었던 컨텍스트가 주어지지 않은 채로 보이는 데도 말이죠. 이들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이조차도 아예 주어지지 않을 때도 많지만, 연도와 장소를 알려주는 아주 사소한 몇 개의 단서를 제외하고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기록된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로 일련의 푸티지들을 보게 됩니다. 원본 필름에 있던 스크래치나 곰팡이 등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채로 말이죠. 물질로서의 필름의 상태를 더 낫게 ‘복원’하는 일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아키비스트라 불릴 수 있다면 최악의 아키비스트란 뜻에서 그럴 겁니다. 

이들에게 있어 필름이란 태어나고 살고 노화하고 죽어 사라지는 구체적인 몸(corpus)이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이들 영화의 분석이 겨냥하는 것은 필름이라는 리얼리티를 그림이자 물질로 동시에 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바꿔 말하자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그림)과 몸(물질)의 상보성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거죠. 몸이 없는 역사란 추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역사 없는 몸이란 자연으로 환원되겠죠. 물론 이들의 영화는 필름이라는 물질이 그렇게 자연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실천입니다. <투명필름>에서 보이는, 고다르가 <이미지 북> 도입부에서 인용한 그 클립에 나오는 오래된 필름과 관련해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시네마의 마지막 상태, 그것은 기억에 불을 붙이는 폭탄이 되는 것”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겠죠. 말이 나온 김에 잠깐 <투명필름>에서 나온 오래된 필름의 정체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극지에서 적도까지> 뒷부분에 가면 1차 대전 시기에 루카 코메리오가 이탈리아 병사들을 찍은 필름의 영상들이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오전에 상영되었던 <정상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다>에서 활용된 것도 코메리오가 1차 대전 당시에 찍은 필름이에요. 이 영화는 <전쟁포로 Prigionieri della Guerra>(1995), 그리고 <오! 인간>과 함께 1차 대전을 다룬 전쟁 삼부작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투명필름>에서 보이는 그 오래되어 부식된 필름 또한 다름 아닌 1차 대전 당시 코메리오가 찍은 전쟁 당시 영상이에요. 마운트 아다멜로(Mount Adamello) 부근에서 1916년에 촬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1981년 겨울, 혹은 1982년 봄의 밀라노 랩에서의 ‘발견’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인지를 이제 짐작하셨을 겁니다. 잠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전쟁 삼부작 각각에서 발췌한 클립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편을 나란히 옆으로 붙여 보았는데, 맨 왼쪽이 <정상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다>, 가운데가 <전쟁포로>, 맨 마지막이 <오! 인간>이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약 2분 정도 영상 클립들을 보여줌] 

왼쪽부터 <정상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다>, <전쟁포로>, <오! 인간>


이렇게 해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자신들이 찾은 푸티지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을 계속해 왔는데, 오늘 <야만의 땅> 바로 앞에 상영되었던 <동양 이미지: 반달 투어리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이 영화의 원본 필름을 프레임 단위로 살펴보고 각각의 프레임에 담긴 인물의 얼굴과 몸짓의 유형들을 면밀히 살펴보다가 이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얼굴 생김새가 무솔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가 계속 나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무솔리니 딸인 에다 무솔리니(1910~1995)였던 거죠. 원본 필름 자체가 무솔리니의 딸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인도로 여행을 갔을 때 따라간 카메라맨에 의해서 촬영된 일종의 여행기(travelogue)였던 것입니다. 1926년에 촬영된 것이라고 해요.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에다의 얼굴 부분을 확대하고 느리게 재생해서, 그녀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점령기, 1926년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리비아를 찾은 모습이 담긴 <야만의 땅>과 짝을 이루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양 이미지: 반달 투어리즘>의 에다 무솔리니


이제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원본 필름에 대해 행하는 작지만 의미심장한 ‘조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이들의 ‘분석적 카메라’는 온전히 카메라라기보다는 일종의 옵티컬 프린터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씀은 이미 드렸습니다. 이 장치 앞에 놓이는 낡은 필름은 카메라 앞에 놓인 대상으로 그것의 물질적 상태와 거기 담긴 이미지와 형상을 동시에 보여줘야 합니다. 필름의 음화(negative)를 양화(positive)로 뜨는 작업과는 조금 다르게, ‘필름을 필름으로 찍는’ 일종의 재촬영(re-fliming) 작업을 통해, 프레임 단위로 50만 장에 가까운 프레임을 따는 식으로 거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가까운 수고를 거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대단한 특수효과는 아니지만 사소한 조작들이 있어요. 원래의 필름을 세 배, 혹은 네 배 정도 느린 속도로 보여준다거나, 때로는 원본을 반전시켜 음화로 보여주기도 하고, 원본에 없는 색을 입히기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왜 이런 조작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작이 없이 그저 원본 필름을 영사해 보는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낡은 필름이라면 그것에 기입된 시간의 흔적을 물론 지각하기는 하지만, 필름에 담긴 사건 자체에 집중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예전에는 저런 일도 있었군!’이라든지 ‘저런 데까지 가서 저러고들 놀았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필름의 이미지에 담긴 내용에 집중하는 파운드푸티지 영화작가라면 여기서부터 출발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런 효과가 아니라는 거죠. 당신들은 이 필름이라는 몸의 존재를 한시도 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각하면서 거기 담긴 사건과 형상들을 보게 된다, 이 점을 상기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들이 원본 필름에 가하는 조작의 의미는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조작이 없었다면 특히 <오! 인간> 같은 영화는 뭔가 기이하고 엽기적인 필름을 본다는 느낌이 강해졌을 수도 있어요.


<야만의 땅>


그렇다면 <야만의 땅> 같은 경우,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어요. 영화 후반부에 보면 “동아프리카 전쟁 앨범: 1935~1937”이라고 부제가 붙은 파트에서 당시 촬영된 스틸 사진들을 하나하나 꺼내 들고 카메라 앞에 놓고 보여주면서 이따금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에서는 유독 사진을 들고 있는 손(가락)의 존재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은 음화로 된 사진을 들고 있는 손을 찍은 다음에 그것을 반전시킨 거라서, 사진 자체는 이처럼 통상적인 흑백 양화의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손은 음화로 반전되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 4] 참조.) 왜 굳이 이렇게 찍어야 했을까요? <야만의 땅>에서 이 파트 이전에서는 이러한 손의 존재를 직접 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손이라고 하는 것이 화면에 쑥 들어와 있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영화의 경우, 프레임 단위로 느리게 재생하는 것 자체가 필름이라는 몸의 존재를 시시각각 상기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반면, 그저 한 장의 이미지로 된 사진의 경우에는 그런 수단을 쓸 수가 없어요. 영화처럼 프레임 단위로 조작을 가한다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만일 손이라는 것의 흔적 없이 사진 한 장을 영화 스크린을 꽉 채워 보여준다고 하면 우리는 사진 필름의 물질성은 지각하지 못한 채로 그냥 거기 담긴 형상들만을 보게 될 겁니다. 

이게 <야만의 땅> 후반부에서 사진을 보여줄 때 손을 프레임 안에 포착하고 굳이 음화로 반전시키면서까지 보여줘야 했던 이유가 아닐까요? 단지 시각적인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그리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사진이건 영화이건, 자신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것의 대상이자 리얼리티인 필름을 대하는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의 대상으로서의 필름’이라고 하는 입장을 거의 40여 년간 이 정도로까지 집요하게 견지해 온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한 뤼미에르주의자에요. 뤼미에르 시네마토그래프 앞에는 당대의 풍경, 공장, 사람 이런 것들이 있었다면 이들의 ‘분석적 카메라’ 앞에는 뤼미에르 같은 이들이 만든 필름 자체가 놓이는 것이죠.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이 자신들의 영화에서 필름이라고 하는 물질을 만지는 손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에요. 이들의 작업에서 (드니 드 루즈몽의 표현을 빌린) 고다르 식으로 말하자면 “손으로 생각하기”라고 하는 것의 중요성은 정말이지 큰 것이지만, 사실 1990년대까지 만든 작업들에서 필름을 만지는 작업자의 손이라고 하는 것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만의 땅> 같은 영화에는 방금 보신 것처럼 후반부에 아주 적극적으로 드러나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보다 손을 통한 작업이고 자신들의 영화는 이 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인데요. 생각해보면, 가장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2000년대 후반이라고 했으니까 통상 이런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비롯해서 영화계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작업들이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되던 무렵이죠. 그때부터 이들의 작업에 이런 식으로 손이 튀어나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자부심의 표현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이런 게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작업에서도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업자의 손 자체는 언제나 인지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비록 간접적이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올해 2월에 한 인터뷰를 보면, 리치 루키 감독이 세상을 떠난 후 지아니키안 감독은 2차 대전 중 비시 정권 시기의 프랑스, 그리고 유대인들을 태우고 아우슈비츠로 향했던 기차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2차 대전 시기로 온 것이네요.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 둘 모두 1942년생이니까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난 것이고, 지금껏 이들은 그런 시기에 태어난 자기들이 살아온 이 미친 세상을 있게 한 이전의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영화를 택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에 대한 언급을 아주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야만의 땅> 같은 경우는 보면서 이분들이 동시대에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 정도는 아주 우회적인 발언이라고 했겠지만 이들의 이전 영화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정말이지 분노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럽 등지에서 벌어졌던 내전이나, 한편으로는 이주민들이나 불법이민자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취하는 오늘날의 제노포비아 현상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고도 하죠. 지금까지는 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역사적 정보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맥락적인 부분들도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은 아르메니아계인데요. 그의 아버지는 아르메니아 출신이고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에 벌어진 터키(오스만 제국)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추방과 집단 학살의 생존자이기도 해요. 그가 리치 루키와 작업한 영화들 상당수가 1차 대전 직전(<극지에서 적도까지>)부터 1차 대전 시기(<전쟁포로>, <정상에선 모든 것이 조용하다>, <오! 인간>) 및 1차 대전 이후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 시기(<동양 이미지>와 <야만의 땅>)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이분들의 작업이 필모그래피 전체가 역사적 시기를 연대기적으로 따라오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그런 경향이 좀 있습니다. 여하간 여기에 가족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족사가 이런 영화들의 여백에서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겠지요. 물론 <극지에서 적도까지>가 완성된 1986년에 만들어진 개인적인 영화 <코도르시우로의 귀환: 아르메니아 일기 Ritorno a Khodorciur: Diario Armeno> 같은 작업이 따로 있기는 해요. 예르반트의 아버지인 라파엘 지아니키안의 기억이 담긴 영화입니다. 리치 루키와 지아니키안은 1980년대 후반에 집단학살의 증거가 될 아카이브 자료를 찾아 아르메니아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이와 관련된 영화도 있고요. 하지만 아르메니아와 관련된 이들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후일 이들의 영화가 보다 더 포괄적으로 소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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