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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6

프린시프 레알 공원

 

※ 이 글은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사진잡지 《보스토크》 35호(2022년 9월 발행)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리스본을 방문했을 때 굳이 이곳을 찾았던 것은 순전히 주앙 때문이었다. 오해가 없도록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주앙 때문이었다. 하나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같이 이곳으로 산책을 나오곤 했던 주앙이고, 다른 하나는 리스본 여행 내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주었던 주앙이다. 간단히 늙은 주앙과 젊은 주앙이라고 해 두자. 깡마른 주앙과 똥똥한 주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쩐지 나이로 구분하는 편이 더 담백한 느낌을 준다. 늙은 주앙은 영화에서 보았을 뿐이지만 젊은 주앙은 오랜 친구다. 늙은 주앙은 영화감독이고 젊은 주앙은 비디오 아티스트다. 젊은 주앙의 성에는 딱히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늙은 주앙의 성에는 ‘사냥꾼’ 또는 ‘산림관’이라는 뜻이 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역대와 현역을 막론하고 포르투갈 대통령들을 싫어하고 자신들이 만든 영화나 비디오 작품에 종종 직접 출연한다는 것이다. 리스본에는 영화를 만드는 주앙이라는 이름의 친구들이 두 명 더 있지만, 한집에서 사는 그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영화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다.

늙은 주앙의 영화를 보면 프린시프 레알 공원 근처에는 분명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젊은 주앙은 이렇게 말했다. 카몽이스 광장 근처에서 내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 한참 올라가다 보면 네가 주앙의 영화에서 보았던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공원이 나올 거야. 나중에 거기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실제로 프린시프 레알 공원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대체 왜 저 아래서부터 걸어 올라오라고 한 거지? 구글맵 같은 것으로 경로를 미리 확인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고 고리타분하게 지도 하나만 들고 돌아다니던 때라, 당시엔 여하간 젊은 주앙의 조언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종종 지도가 무용지물이 되는 알파마 지구의 한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버스를 타러 가기 직전, 젊은 주앙에게 물었다. 혹시 그 나무 이름이 뭔지 알아? 리스본에 관한 것이라면 온갖 잡스러운 것들까지 꿰고 있는 그는 주저 없이 답한다. 멕시칸 사이프러스야. 하지만 학명을 알면 그 나무가 왜 거기 있는지 더 수긍이 되지. 학명이 뭔데? 쿠프레수스 루시타니카야. 너도 알다시피 루시타니아는 포르투갈을 가리키는 말이잖아? 그래서 포르투갈 사이프러스라고도 불러. 그러면서 늙은 주앙이 앉아 있던 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찍은 자기 사진을 보여준다(사진 1). 사진을 잠깐 들여다보고 인사를 한 뒤 버스를 탔다. 그리고 주앙의 조언대로 카몽이스 광장에서 내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진 1


언덕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천천히 둘러보던 그때의 프린시프 레알 지구는 아직 관광객으로 붐비기 전이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이 영화화되어 전 세계적으로 개봉된 지 일 년쯤 지난 무렵이라, 분명 리스본을 찾는 관광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던 때이기는 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제로니무스 수도원 인근의 파스텔드나타 가게가 소개되면서 그 앞에 한국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무렵이다. 프린시프 레알 지구 초입에 자리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확 트여 있는 상 페드루 드 알칸타라 전망대에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눈에 띄기는 했다. 하지만 프린시프 레알 공원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5월의 태양을 피하기 안성맞춤인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노인들이나 낮잠을 즐기는 청년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한동안 다시 찾지 못했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라면 지금의 프린시프 레알 공원은 그때와는 꽤 달라진 모양이다. 영화에서의 식물이라는 주제로 온라인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파트릭 홀차펠이 2021년 4월에 쓴 글을 보면 이곳의 현재 모습은 예전과 적잖이 다르다. 그는 요즘 포르투갈의 수도를 방문하는 그 누구도 늙은 주앙이 140살 넘게 먹은 이 나무 아래 앉아 그토록 생생하고 부드럽게 포착해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찾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거지들, 연인들, 마약상들, 사기꾼들, 그리고 시네필들에게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였던 이 공원을 관광객들이 점령했다.” 이 문장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생전의 늙은 주앙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거지, 연인, 마약상, 사기꾼 같은 존재였으며 그의 영화는 이러한 불량한 존재를 생생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진정한 시네필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홀차펠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쓴다. “하지만 당신이 일찌감치 그곳에 가서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진한 사이프러스 향기가, 우산 모양으로 드리워져 눈길을 끄는 수관(樹冠)에 스미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빛과 그림자의 유희가, 그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내세의 것인 만큼이나 현세의 것이기도 한 비밀들을 여전히 드러내보일 것이다.” 


사진 2


홀차펠의 글과 함께 수록된 이바나 밀로스의 그림(사진 2)은 흥미롭다. 밀로스의 그림 제목은 ‘부부 루시타니카’다. ‘부부’는 생전의 주앙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성이다. 언제부턴가 그는 알파마 지구 테주강 인근의 허름한 하숙집에 기거하던 시절부터 사용하던 불경하기 짝이 없는 (포르투갈어로 신을 뜻하는) ‘데우스’라는 성은 더이상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범죄와 결부된 과거를 감추고 살아가기엔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았을 터다. 또한, 자신이 노스페라투를 닮았다는 점에 착안해 그 흡혈귀를 연기했던 배우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막스라고 부르는 것도 언제부턴가 그만두었다. 여하간 밀로스를 통해 주앙은 그 스스로가 부부 루시타니카라는 하나의 나무가 되었다. 

사실 시네필에게 있어서라면 프린시프 레알 공원은 곧 늙은 주앙의 공원이다. 그의 유작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하나의 공원을 이토록 완벽하게 하나의 천국처럼 그려낸 적이 또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일찍이 페르난두 페소아도 이곳을 리스본 최고의 공원 가운데 하나로 꼽은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페소아는 이곳을 프린시프 레알 공원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리우데자네이루 광장에 있는 또 다른 공원”이라고 썼을 뿐이다. (그런데 2017년에 출간된 한국어 번역판 『페소아의 리스본』에서는 ‘또 다른 공원’을 프린시프 레알 공원으로 아예 풀어서 옮겨 놓았다.) 이 공원의 공식적 이름은 유명한 언론인 프란사 보르제스를 기려 붙여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리우데자네이루 광장은 오늘날 프린시프 레알 광장이라 불리고, 프란사 보르제스 공원은 프린시프 레알 공원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에겐 주앙의 공원과 페소아의 공원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할 명분이 있는 셈이다. 이름의 마력 덕분이다.


사진 3


젊은 주앙이 일러준 대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서 본 프린시프 레알 공원은 늙은 주앙의 영화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의 영화가 공간감을 교란하는 일은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를 볼 때 이 공원을 실제보다 크게 느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주앙의 유작에는 산책을 나간 그가 나무를 등지고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거듭 나온다(사진 3). 이 영화에 보이는 프린시프 레알 공원의 모습은 이처럼 나무줄기를 화면의 중심에 두고 각도와 크기를 달리해 가며 찍은 쇼트들을 통해 제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따금 우리는 그가 아이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소녀를 쫓아 달려가기도 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언제나 나무 아래서다. 우리는 프레임 바깥의 풍경은 어떠한지, 즉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주앙이 보고 있는 풍경은 어떠한지 전혀 알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나무 쪽을 보게 될 뿐 나무 쪽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주앙이 등지고 있는 나무 저편으로 멀리 보이는 배경을 통해 매우 제한적으로만 공원의 경계와 모양새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모호함이 오히려 공원의 규모를 상상적으로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보이는 것을 대신해 생생하게 바깥의 감각을 전달하는 소리의 농밀함에 힘입어 공원은 어엿한 하나의 세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까지 확장된다.


사진 4~사진 6


당연한 말이지만, 늙은 주앙의 프린시프 레알 공원은 어디까지나 영화에만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던 풍경이 여전히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앉았던 벤치에 앉아 그가 보았을 법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사진 4~사진 6). 이렇게 해서, 자신의 영화에서라면 그가 절대 구사하지 않았을 시점 쇼트들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본다. 이런 쇼트들이 영화에 함께 제시되어 버리면 늙은 주앙이 즐겨 찾았던 프린시프 레알 공원이라는 영화적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진정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은 그의 유작이 바로 이러한 세계가 소멸하는 순간을 연출하면서 종결된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앙은 시선을 나무 쪽으로 두고 벤치에 앉아 있다(사진 7). 그의 등 뒤로 쿠프레수스 루시타니카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다프네라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이 나무 쪽에서 공원을 보게 된다. 밀로스가 그린 부부 루시타니카의 모습은 이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밀로스의 그림에는 공원이 보이지 않는다. 주앙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2020-09-10

이름 없는 곳


편지란 무엇입니까? 

한때 편지는 띄워 보내는 것이었고 때로 던지는 것이기도(投書)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누르는―'SEND'라고 쓰여진 버튼이라 불리는 아이콘을―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누르는 편지에는 당장 답신하지 않으면 휴대폰 화면 위에 금새 "메일 보냈는데 읽으셨어요? 살펴보시고 가능한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라는 SMS가 뜨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받고 나면 SMS란 'Save My Soul'의 약자라는 고다르의 농담이 생각난다. 하지만 결국, 이내 나도 누른다.

지난여름, 문득 편지 같은 것을 띄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내고 나면 한참의 시간이 걸린 후에야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그런 편지를. 작년 말 런던에 방문했을 때 공항을 오고가다 알게 된  OOO―이 분이 누구인지는 글에 쓰여 있다―에게. 《보스토크》에 정기적으로 쓰는 칼럼 지면을 이 편지를 띄우는 용도로 잠시 빌려 써서.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물이 국경을 넘어 오가는 것이 예전 같지 않으므로 이 편지가 언젠가 OOO에게 우연히 닿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스토크》가 발간되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OOO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년째 글을 쓰면서도 나는 《보스토크》라는 잡지가 이 정도로 읽히는 줄 몰랐던―김현호 발행인과 박지수 편집장님 및 편집동인 분들께 참으로 민망합니다―것이다.) 알고 보니 OOO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고민하다 오랜 영국생활과 그곳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식사를 하고, 각자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친구가 되었다.

(※ 아래 글은 사진잡지 《보스토크》 제22호(2020년 7/8월호)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이곳─그렇다, 이 잡지는 하나의 장소이다─에 글을 쓰면서 잡지가 나올 무렵 갓 개봉해 시중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다룬 적은 없다. 그렇게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구태여 하나하나 밝힐 필요까지야 없겠다. 아무래도 영화 전문지가 아닌 사진 전문지에 2개월에 한 번씩 실리는 글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의성을 살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에 집착하기보다는 이 칼럼을 읽고 나서 DVD나 블루레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나 IPTV 등을 이용해 찾아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영화들 가운데 글감을 고르곤 했다. 말하자면 이 장소는 영화계에서 진행 중인 최신의 흐름과 경향을 부지런히 따라잡아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나를 간단히 면제시켜 주는 곳─문자 그대로 ‘duty-free’─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오래 이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극장에서도 이렇다 할 신작 영화가 개봉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글감을 찾아 쓰는 일을 망설이게 되었다. 요즈음 영화 관람은 어차피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위한 추천작 가이드도 여기저기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거기에 하나 더 보탤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시기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열없는 주제는 단연 ‘팬데믹 시대의 이미지’ 같은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이런 주제를 굳이 피해서 말한다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의 특성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어떤 장치나 제도의 오작동이나 기능 부전은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이 필수적이고 어떤 것이 부수적인지를 살피게 만든다. 예컨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올해 취소된 칸영화제는 초청작 목록만을 정리해 공식 발표했는데, 이로써 필수적 요소만 두고 보면 칸영화제의 기능과 역할이 소고기 등급 시스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밝혀 버렸다. 여하간 창작자에게나 관람자에게나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일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지금과 같은 시기야말로,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어떤 장치나 제도인지를 재고해 보기에 적기일 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영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은, 카메라로 사람이나 사물이나 풍경을 촬영하고, 마이크로 소리를 녹음하고, 이렇게 해서 얻은 것들을 재료로 해서 일정 시간 동안 영사하거나 재생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관람하거나 홀로 감상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말 영화라는 것은 카메라, 마이크, 영사 및 재생 장치, 스크린이나 모니터, 영화관 같은 요소들의 총합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파블레 레비 같은 이는 2012년에 내놓은 ‘Cinema by Other Means’라는 제목의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하며 다른 방식의 영화 혹은 다른 수단을 통한 영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도 했다. 

여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지난 몇 달 동안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문득 그동안 영화의 주변에서 배회하다 마주치곤 했던 다른 방식의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어쩌면 선뜻 영화라 부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의 가능성에 맞닿아 있는 그런 것들, 하지만 이름 붙이기 힘든 무엇들. 그러고 보니 영화 보기란 조용히 앉아서 기억 흔적을 다시 더듬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나의 기억은 아니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모종의 기대와 흥분을 품고 환대할 수 있을지도.

십여 년 전, 필리핀에서 열리는 시네마닐라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게 되어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다. 나와는 다른 부문의 심사를 맡은 젊은 태국 영화평론가와 점심을 함께 먹고 거리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걷다가도 그림엽서를 파는 작은 상점들이 나타나면 그때마다 엽서를 한두 장씩 사서 가방에 넣고는 했다. 정말 의아하게 보인 것은 그가 엽서를 고르는 태도였다. 그의 몸짓은 무언가 맘에 드는 엽서를 찾고 있다기보다는 매대를 단숨에 쓱 훑어보고는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엽서를 잽싸게 집어 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수집가보다는 오히려 배달원의 몸짓처럼 보였다. 분명 그는 엽서를 사 모으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참 거리를 걷다가 우체국이 나타나자 그는 잠깐 들러 가자며 양해를 구했다. 우체국에 들어가서 그는 조금 전까지 사 모은 그림엽서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작은 수첩을 꺼내어 거기 적혀 있는 주소들을 엽서에 빠르게 옮겨 적기 시작했다. 물론 간단한 안부 인사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떤 이들에게 보내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방콕에 있는 친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틀 후면 자기는 방콕으로 돌아갈 터이고 이내 친구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엽서는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친구들에게 도착할 것이라면서, 자신을 들뜨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시차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곤 갖고 있던 엽서 가운데 두 장을 내게 주면서 귀국하면 곧 만나게 될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내보라고 권유했다.

그와는 달리 당시 내게는 지인들의 주소를 적은 수첩 같은 것이 없었다. 마땅히 엽서를 보낼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준 엽서들을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나에는 120여 년 전 필리핀 어부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이, 다른 하나에는 필리핀의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인 지프니 위에 올라탄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컬러 사진이 있다. 엽서 하단에 조그맣게 적힌 정보를 보고 이제야 알게 된 것인데 원래 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 사진에 수작업으로 색을 입힌 것이다. ‘King of the Road’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필립 지라르도가 선보인 사진이라 한다.

십여 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여행 중에 그림엽서를 사서 지인들에게 보내는 취미는 이미 그때도 꽤 예스럽게 비치는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도 조만간 그렇게 비치게 될까?) 그런데 시차를 그 존재 조건으로 하는 인상주의적 편지라고 해도 좋을 엽서를 고르고 보내는 과정에서, 그 젊은 평론가는 영화 비슷한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엽서를 고르고 보내는 과정을 다시 떠올려 본다. 주의 깊게 고르기보다는 순간적인 감흥에 따라 자못 무심하게, 다만 신속하게 엽서를 집어 드는 그의 몸짓은 스냅 사진을 찍는 이의 그것과 닮아 보인다. 영화는 분명 사진과 함께 이러한 인상주의적 역량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사진과 마찬가지로 현상이라고 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던 까닭에, 이미지의 포착과 이미지의 감상 사이에 시차가 생기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뷰파인더와 디스플레이가 일체화되어 시차를 소거해 버리는 기기를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지금에도, ‘라이브 시네마’ 같은 용어가 내겐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년 11월에 영국에서 겪은 일이다. 나는 런던한국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영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1980년대의 한국독립영화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휴대 전화를 확인해 보니 김신욱 작가라는 분─이 잡지의 성실한 독자라면 내가 작가의 이름 뒤에 ‘라는’을 덧붙인 것을 보고 분명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이 픽업 나오실 거라는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마침 공항 주변의 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조금 늦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결국 약속한 곳에서 그를 만나 픽업 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운전 중인 그에게 “작가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요?”라고 물었다. (성실한 독자라면 이쯤에서 폭소를 터뜨릴 것이다.) 의례적인 물음이라 생각했던지 그는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짧게 대답했다. 이런 유의 대화는 대개 이쯤에서 “아, 그렇군요”라는 말과 함께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은 계속되었고 다행히도 그의 답변 또한 점점 상세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에 사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영국에 왔다. 어쩌다 보니 여행객들을 픽업해 차량으로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일을 주업에 가까운 부업으로 삼게 되어버렸는데 이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런던과 히드로 공항을 오간 것만 3,000번이 넘는다고도 했다. 

조금씩 대화에 흥이 오르면서 그는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들려주기 시작했다. 빈번히 공항을 오가다 보니 공항 주변의 장소들과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는 결국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특히, 공항 주변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광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취미를 지닌 덕후들을 지칭하는 플레인 스포터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는 공항 작업의 결과물로 최근에 한국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면서 전시를 준비하며 만든 소책자 하나와 전시 리플릿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Unnamed Land: Air Port City’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공개한 몇몇 사진들이 《보스토크》라는 사진 잡지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면서 말이다.

“《보스토크》요?”

“네, 사진 잡지인데, 혹시 아세요?”

그러니까, 잡지라는 장소는 이런 것이다. 김신욱 작가의 공항 연작 사진들은 이 잡지 9호를 통해 소개되었다. 나는 그때 이 칼럼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2016년에 발표한,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한 공포영화 한 편을 두고 ‘식물성의 유혹’에 대해 썼다. 하지만 우리는 공항을 통과해가는 여행객들처럼 서로에 대해 몰랐고, 서로의 작품과 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 둘은 14호에서 다시 한번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잡지를 만드는 편집진의 입장에서는 뭐 이런 불량한 작자들이 다 있는가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 법도 하다.

김신욱 작가에게서 받은 전시 소책자에는 이영준 선생이 공항비평가라는 직함으로 쓴 글─제목은 이영준 선생다운 심술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기껏 영국까지 가서 공항 주변만 맴돌다 왔다’이다─이 실려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다가 과거의 김포공항에는 송영대라는 게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는 계류장과 활주로를 향해 열려 있는 공항 2층의 야외 발코니로, 배웅하는 이들이 비행기가 떠나는 광경을 볼 수 있게끔 배려한 유료 시설이었다. 아하! 그동안 한국에서 종종 환송대라고 번역해 온, 크리스 마커가 만든 단편영화에 나오는 공항의 ‘la jetée’도 바로 이런 것이었겠구나. 생김새만 놓고 보면, 말 그대로 발코니인 김포공항의 송영대와 방파제 형태를 띤 오를리공항의 그것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여하간 그저 배웅하고 보내는 곳이라는 뜻만 지닌 환송대보다는 그런 뜻과 더불어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도 함께 지닌 송영대 쪽이 훨씬 멋스럽게 들린다.

오늘날엔 전 세계 어느 곳의 공항에도 송영대 같은 시설은 없다. 가족이나 지인 들이 해외로 떠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서일까? 배웅이나 마중을 나간다손 쳐도 기껏해야 공항 내 출국장이나 입국장을 들르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주말이면 공항 인근의 언덕이나 풀밭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이 타고 있을 오고 가는 비행기들을 하염 없이 바라보고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 스포터들이 있다. 이들을 송영꾼이라 불러도 좋겠다. 김신욱 작가의 몇몇 공항 사진들에는 이런 송영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모종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허공에, 그 이름 없는 장소에 매혹된 이들이다. 스크린 또한 이러한 장소이다. 이름 없는 공항이나 영화관은 있을 수 없겠지만, 허공이나 스크린에 이름을 붙인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이러한 장소에 오롯이 매혹되기 위해서는 거기서 오고 가는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 자체의 완벽한 무용성을, 그 쓸모없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히드로 공항으로 향할 때도 김신욱 작가가 아내와 나를 데려다주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들은 바에 따르면, 최근에 그는 괴물이 나타난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네스 호 인근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서도 전시를 열 계획이라 준비를 위해 2020년 초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 했다. 우리는 서울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고 그는 그러마고 약속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일정이 조정되었는지 여태까지 전시가 열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그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은 일도 없다. 

연락하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어요, 라는 말은 어떻게 해야 빈말이 아닐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 끝에, 오래 전 젊은 태국 평론가에게 받은 두 장의 엽서를 꺼내고, 이것들을 김신욱 작가에게 받은 전시 소책자 표지 위에 얹어 스캔하고, 엽서에 적기에는 조금 길다 싶은 편지 비슷한 글을 써서,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보스토크》에 실어 보내는 것이다.




2018-01-11

사프디 형제
Safdie Brothers


※ 아래 글은 2017년 3월 1일 발간된 영상비평 전문지 『오큘로』 제4호에 '아메리칸 언더커런츠' 특집 글 가운데 하나로 실렸던 것이다.




촬영 현장의 조쉬 사프디(좌)와 베니 사프디(우)



누구라도 일단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보고나면, 선동적으로 들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시대의 존 카사베츠!’라고 경박하게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망원렌즈에 포착된 연약하고 불안정한 몸짓들, 금방이라도 기화되어 사라져버릴 듯한 형상들, 이들 속에서 카사베츠의 ‘그림자들’이나 ‘얼굴들’의 잔영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이런 첫인상은 피상적일 뿐이라는 것을 이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사프디 형제를 동시대 미국 독립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기억하게 만든 <아무도 모른다>의 스크린 위를 배회하는 것은 니콜라스 레이의 청춘들(<이유 없는 반항>)과 제리 샤츠버그의 헤로인 중독자들(<백색공포>) 사이 어디쯤에 있는 불안한 영혼들이다. (<아무도 모른다> 촬영 전 형제와 만난 샤츠버그는 “영화에 진짜 마약쟁이를 출연시켜선 안 된다.”고 충고해 주었다고 한다.) 한편 사프디 형제는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뉴욕 인디영화의 이름은 아벨 페라라라고 말한다. (페라라는 <키다리 아빠>에서 노상강도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무척이나 섬세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실제의 현실과 관계 맺는 픽션의 양식을 가공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영화라는 영토를 벗어나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부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페드로 코스타 등의 미학과 공명한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곳과 저곳의 영화적 유산들을 하나의 평면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유리한 (동시에 불리한) 위치에 있음을 명확히 자각하며 작업하는 세대(미겔 고메스, 라야 마틴, 도미타 가츠야, 마티아스 피녜이로 등)에 속하는 이들 형제는, 노골적으로 미학적 전위에 서려 하기보다는 영화적 유산에 기대어 (뉴욕을 무대로 한) 거리영화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소(小)장르에 새로이 활력을 불어넣는 데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야심의 결과는 무척이나 크다. 영화적으로는 진부해질 대로 진부해져버린 뉴욕이라는 도시가 이들의 영화에서는 진정 영화적인 도시, 아니 영화로서의 도시로 갱생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들의 영화는 영향과 흔적이 아니라 전적인 공명을 통해 영화적 유산과 관계하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팽창시킨다.  



<키다리 아빠 Daddy Longlegs>(2009)


사프디 형제의 부모는 베니가 불과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이혼했는데, 이혼한 부모 밑에서 겪은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이후 자전적 드라마인 <키다리 아빠>(2009)의 토대가 된다.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는 데 열광적이었던 아버지 ― 그는 300시간 분량의 영상기록을 남겼고 일부는 <키다리 아빠> 개봉 당시 공개되기도 했다. ― 덕택에 형제는 일찌감치 영화에 빠져들었고 고등학교 때 친구 알렉스 캘먼과 함께 ‘레드버킷(Red Bucket)’이라는 이름의 영화제작집단을 결성했다. 보스턴대학 시절 만난 샘 리센코, 브렛 주트키위츠, 재커리 트레이츠 등이 레드버킷에 합류했고, 2012년까지 영화뿐만 아니라 웹 프로젝트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영상물을 제작했다. (제작집단 레드버킷의 영상물은 비메오 사이트(vimeo.com/user7918188)에서 볼 수 있다.)



<도둑맞는 일의 즐거움 The Pleasure of Being Robbed>(2008)


이들의 장편 데뷔는 좀 기묘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2007년 여름, 케이트스페이드 핸드백의 홍보용 단편영화 제작을 의뢰받은 조쉬는 우여곡절 끝에 (케이트스페이드의 공동창업자인) 앤디 스페이드의 아이디어(도벽이 있는 여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장편으로 확장시키는 기획에 착수한다. <도둑맞는 일의 즐거움>은 스페이드의 지원 하에 조쉬의 연출로 완성되었고, 베니의 단편 <외로운 존의 친구들>과 함께 2008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다. 감정과 충동의 형상으로서의 인물들, 그러한 인물들이 생성하는 불규칙적 운동에 조응하는 삽화적 구성, 인물들을 둘러싼 공간에 비추어 그들을 포착하는 카메라,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카메라를 덜 의식하며 연기하게끔 하기 위한 망원렌즈의 사용 등 사프디 형제의 영화적 특성은 이미 여기서부터 뚜렷했지만, 이를 보다 밀고 나간 것은 이듬해에 발표한 <키다리 아빠>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칸영화제 상영 당시 제목은 ‘Go Get Some Rosemary’였지만 나중에 ‘Daddy Longlegs’라는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Lenny and the Kids’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운랜드>(2007)의 감독인 로널드 브론스타인이 2주간 아이들을 맡아 돌보면서 생활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이혼남 레니 역을 맡고 각본 및 편집에도 참여한 이 영화에서, 사프디 형제의 유년의 경험과 브론스타인의 실제 삶은 영화적 소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영화라는 상상적 몸의 연장처럼 되어버린다. 



<아무도 모른다 Heaven Knows What>(2014)


뉴욕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중독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든 <아무도 모른다>는 사프디 형제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리엘 홈즈라는 여성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 자신 마약중독자였던 홈즈가 형제의 권유로 쓴 자전적 기록물인 『뉴욕의 미친 사랑』을 토대로 (제리 샤츠버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홈즈 자신과 실제 마약중독자들을 출연시켜 만들었다. “이야기라기보다는 난투극이며, 소리치거나, 무언가를 궁리하거나, 사랑이나 약이나 무망한 이해를 애타게 찾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의 모음”(숀 로저스)으로 여겨질 만큼, 여기서 마약중독자들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로서가 아니라 감정과 충동의 형식으로서의 영화에 더할 나위 없이 조응하는 형상으로 비치고 있다. 이 영화는 2014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아리엘 홈즈는 이후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2016)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사프디 형제는 세바스천 베어-맥클라드, 오스카 보이슨과 함께 독립영화스튜디오인 엘라라픽처스(Elara Pictures)를 설립했고, 2017년 현재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신작 <굿 타임>을 제작 중이다. (엘라라픽처스 홈페이지(www.elarapictures.com)에서는 선댄스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사프디 형제의 <검은 풍선>(2012) 등의 단편을 볼 수 있다.)    




2017-10-08

<정도 正道>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가 된 사연

※ 자료 조사 및 검토를 거쳐 아래 글을 보완, 확장한 글을 2019년 1월 19일 본 블로그에 포스팅해 두었다. 

"전용의 계보: 당수태권도는 변증법의 정도(正道)일 수 있는가?"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9/01/blog-post.html

아래 글을 쓸 당시에 다소 불분명했던 몇 가지 점들도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정리해 두었으므로 업데이트된 글을 읽기를 권장한다. 




최근 한 지인의 부탁으로 르네 비에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위 사진)의 판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상황주의 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르네 비에네가 다른 장편영화 한 편을 통째로 가져와 '전용'(detournement)한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인데 영문이나 프랑스어로 된 정보들을 봐도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 

(1) 원본영화 A (중국어버전)
: 영어제목으로는 "Crush"라고 알려져 있지만, 중국어 제목은 <당수태권도 唐手跆拳道>이고 1972년 6월 20일 홍콩에서 개봉되었다. 감독은 두광치(屠光启)라고 되어 있다. 아래 홍콩판 포스터를 보면 포스터(중앙 약간 우측)에 "도연(감독) 두광치"라고 적혀 있다. (중국어로 된 영화정보는  http://bit.ly/2weIGA1 중국어로 된 감독 정보는  http://bit.ly/2x8z1au 를 참고.)



영문위키피디아 등에는 제작사가 Yangtzu Productions라고 되어 있는데 위의 (중국어로 된) 영화정보 링크를 보면 "장강영화(홍콩)유한공사"(长江电影(香港)有限公司)이다. (장강이 곧 양쯔강이니 영문회사명을 저렇게 한 모양이다.) 

(2) 원본영화 B (한국어버전)
: <당수태권도>는 1970년대에 횡행했던 이른바 한홍합작 영화 가운데 한 편으로 추정된다. 촬영은 한국에서 이루어졌고 주역 및 중요한 조연은 중국배우들이지만 한국배우들도 출연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은 <정도 正道>이고 1973년 5월 12일 스카라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런데 한국어 광고를 보면 감독이 강유신이라는 이로 되어 있다. 아래는 당시 신문에 실렸던 영화광고다.




위 광고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73년 5월 12일자 일간지들을 검색한 다음에(키워드 검색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광고란을 보면 이 영화 광고들이 실려 있다. 위의 포스터 가운데 왼쪽 포스터 상단을 보면 " 프랑스 파리에서 상영된 화제의 영화!"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래는 한국어판 <정도>의 포스터. 상단에 감독 이름이 분명히 보인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한진흥업이다. 한진흥업은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제작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중앙일보』 1973년 4월 5일자 기사를 보면, 

제작사「한진흥업」을 고발

문공부는 우리나라를 무대로 우리나라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당수태권도』라는 영화가 최근 「프랑스」「파리」에서 용공 단체의 선전영화로 둔갑, 상영되고 있다는 보도 (3월31일 자 본지 4면게재· 중앙일보 「파리」주재 주섭일특파원보도)에 대해 진상조사에 나서 이 영화가 합작영화가 아닌 순수한 우리 나라 영화 (제목은 『정도』 ) 임을 밝혀내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이 영화를 작년 말 「홍콩」 장강전영공사에 수출한 제작사 한진흥업(대표 한갑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진」은 제작에 앞서 「장강」과 7천「달러」에 수출하기로 계약, 동남아지역상영권만 양도하기로 했는데 수출신고절차를 밟기 전에 「한진」이 「장강」에 「필름」을 반출, 「장강」 은 다시 「토키」를 중국어로 바꿔 임의로 「프랑스」 좌파 단체인 「계급투쟁 촉진회」에 이중 수출 했다는 것이다. (기사 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1344888)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정도> 혹은 <당수태권도>는 한국에서 제작해 홍콩에 수출한 한국영화인 셈이다. (홍콩에서는 중국어로 더빙해 개봉하고 이를 프랑스까지 수출한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정도>의 35mm 프린트는 보유하고 있지 않고 비디오 자료도 없다. 시나리오(오리지널 및 심의대본)만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정도> 정보 참조:  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586) 그런데 2012년 12월 7일자 『동대신문』을 보면, 한진흥업 한갑진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영화 필름 127편 및 해당 작품들의 지적 재산권, 대본, 스틸사진, 영화기자재, 비디오테이프, 영화서적 등 관련 저작물 일체를 동국대학교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있다.

한갑진 한진흥업 회장, 한국영화필름 127편 기증후학들의 연구를 위해 다수의 연구 가치 큰 자료 기부

원로 영화인 한진흥업 한갑진 회장이 지난 5일 우리대학에 소장하고 있던 한국영화 필름 127편 및 해당 작품들의 지적 재산권, 대본, 스틸사진, 영화기자재, 비디오테이프, 영화서적 등 관련 저작물 일체를 기증했다. 한 회장은 “영화예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동국대학교가 이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한국영화사를 공부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희옥 총장은 “70년대 영화산업을 이끄셨던 한회장님께서 기증해주신 중요한 영화 사료를 후학들의 연구에 귀중하게 활용하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 기증된 영화자료 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은마는 오지 않는다 △호국 팔만대장경 등으로 보존 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한갑진 회장은 1966년부터 영화 제작 및 보급을 시작해온 한국 현대영화사의 산증인이다. (기사 링크:  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3)

(3) 르네 비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 <정도> 혹은 <당수태권도>는 원래 컬러영화다. 르네 비네가 1973년에 공개한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는 <당수태권도>의 중국어버전 프린트를 활용해, (a) 중국어 사운드트랙은 그대로 둔 채 (b) (원래 영화와 무관한) 프랑스어 자막을 입힌 것이다. 이것이 최초 버전인데 이 프린트는 현존하지 않는다. 이 버전 다음에 나온 것이 프랑스어로 더빙한 버전이고 요즘 보여지는 것도 이 버전이다. 요즘에는 주로 영문자막이 처리된 프랑스어 더빙버전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유튜브나 우부웹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영문자막 처리된 프랑스어 더빙 버전이다. 그런데 이 버전을 보면 흑백으로 되어 있다. 이유인즉, 이 프랑스어 더빙/영어자막/흑백화면 버전은 르네 비에네가 <당수태권도>를 '전용'한 것을 다시 '전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버전은 1990년에 비디오아티스트이자 영화작가인 키스 샌본(Keith Sanborn)이 만든 것이다. 영문자막, 흑백, 그리고 레터박스 처리된 비디오로 제작한 것이고 1990년대에 미국 이곳저곳에서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가 상영될 때는 주로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2017-09-26

로버트 크레이머의 <미 1번 국도>
@ DMZ국제다큐영화제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가 마련한 특별기획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다큐멘터리와 미장센" 부문에서 상영되는 로버트 크레이머의 <미 1번 국도 Route One/USA>(1989)를 보았다. 상영시간이 4시간 15분에 달하는 영화인데 월요일 오전 10시 반에 상영이 잡혀 있어 관객은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해 총 여덟 명의 관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려행>으로 DMZ국제다큐영화제를 찾았고 부산영화제에서 프리미어될 신작 <환생> 마무리작업 중인 임흥순 감독이 와 있었다. <미 1번 국도>를 보고 난 탓인지, 문득 임흥순 감독의 장편데뷔작 <비념>이 떠오르기도 했다.) 

로버트 크레이머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된 것은, 십수 년 전 <H 스토리 H Story>(2001)의 제작과 관련한 스와 노부히로의 인터뷰를 읽으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와는 크레이머와 공동으로 히로시마에 관한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1999년 11월 10일 크레이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스와는 <H 스토리> 작업을 계속한 것은 크레이머를 위해서이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당시 나는 <듀오 2/Duo>(1997)와 <마/더 M/Other>(1999) 등의 작품을 통해 스와에게 깊이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그와 공동으로 히로시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던 로버트 크레이머의 작업에도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한 몇몇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당시로선 그의 영화를 직접 볼 방법이 없었다.

크레이머의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프랑스에서 출시된 DVD를 통해서였다. 2006년에는 <미 1번 국도>가, 2010년에는 <아이스 Ice>(1970), <마일스톤즈 Milestones>(1975), <닥의 왕국 Doc's Kingdom>(1988)과 <워크 더 워크 Walk the Walk>(1996)가 프랑스에서 차례로 출시되었다. 비로소 크레이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게 된 건 2014년에 이르러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마일스톤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 급진주의의 이상이 이후 어떻게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분산되었는지를 숱한 인물들의 일상의 궤적을 좇아가며 파고든 이 작품은 그해 영화관에서 본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한 편이었다. 

<미 1번 국도>는 망명객으로 유럽을 떠돌던 크레이머가 미국에 돌아와 찍은 첫 영화로, <마일스톤즈>의 후속작이라 생각해도 좋지만 그 구성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크레이머는 그의 전작 <닥의 왕국>의 주연을 맡았던 폴 맥아이작(Paul McIssac)과 함께 미 1번 국도를 따라 여행하며 당대 미국 사회의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여러 인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르주 다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이라는 장소를 "검진"한다. 

"[폴 맥아이작이 연기하고 있는] 의사를 왜 [<미 1번 국도>의 여행의 동반자로] 선택했는가? 로버트 크레이머의 아버지가 의사이기 때문에? (<마일스톤즈>에도 검진 장면이 있다.) 존 포드 영화에는 의사라는 주제가 있기 때문에? (포드는 크레이머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인물이고, 내가 항상 생각해 온 바로는, 크레이머야말로 포드의 드문 후계자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진정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크레이머의 예술 - 그는 예술가, 그것도 위대한 예술가이므로 - 이 근본적으로 의사의 기술, 개업 의사의 기술과 같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추상적으로만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환자를 골라받을 형편이 될 수 없다." - 세르주 다네, 세계의 웅성거림 La rumeur du monde (1989)

크레이머는 지나치게 일찍 세상을 떴다. 하지만 올해 초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회고전이 마련되었던 존 지안비토(John Gianvito)의 영화에서, 혹은 미셸 클레이피(Michel Khleifi)와 에얄 시반(Eyal Sivan)의 <루트 181 Route 181: Fragments of a Journey in Palestine-Israel>(2004) 같은 영화에서 크레이머의 '여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고보니 프랑스에서 DVD로 출시된 피터 왓킨스의 <여행 Resan>(1987)을 구입해 두곤 보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14시간 33분에 달한다.) 돌연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순전히 그 제목 때문일 것이다. 마침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2015-09-01

2015년 9월 첫째 주


앤서니 맥콜의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Notes in Duration」(1975)


※ 올해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 2015.8.20~8.27)는 영화제 기간 동안 「카운터-프로덕션 Counter-Production」이란 주제 하에 시청각갤러리에서 전시, 강연,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다. (전시 팸플릿은 이곳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전시 작품 가운데는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1975년 설치작품 <앰비언트 라이트를 위한 영화 Long Film for Ambient Light>(1975)가 포함되어 있었다. 


앤서니 맥콜이 촬영한 전시장 사진
(1975년 6월 19일 오전 3시. 뉴욕의 Idea Warehouse)


맥콜이 직접 작성한 작품 설명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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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도 영사기도 사용하지 않는 작품. 세 가지 요소가 모여 이 '영화'를 구성하는데 이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도 다른 것에 선행하지 않는다. 

(1) 벽에 붙은 시간표. 총 50일 치. 실제로 전시가 이루어지는 기간은 시간표 한가운데 표시되어 있다. [ 원래 이 작품은 1975년 6월 18일 정오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전시되었다.]
(2) 변형된 공간.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전구 하나가 눈높이에 매달려 있다. 창문들은 모두 하얀 종이로 덮여 있는데 이로써 주간에는 광원 역할을 하고 야간에는 반사면(즉, 스크린) 역할을 하게 된다.
(3) 벽에 붙은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라는 제목의 2페이지짜리 스테이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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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각갤러리 전시를 위해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전문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이를 아래 옮겨 둔다.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 영화는 동적인 작품처럼 여겨지는 것과 정적인 환경처럼 여겨지는 것 사이의 문턱에 조심스레 자리하고 있다. 형식주의적 예술 비평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이 두 가지 상태를 구분하려 해 왔는데, 이러한 분리는 내겐 부조리하게 여겨진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생각이라고 하는 (전기화학적) 과정 또한 물론이거니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지성이 연속적 시간에 대한 지각을 굳이 ‘순간들’로 분리해 분석하게끔 된 것은 문화적[으로 얻어진] 습성이다. 연속적이고, 중층적이며, 다중적인 지속보다는 정적이고, 절대적인 경험의 덩어리들을 고수하려 드는 것은 편리할지는 모르나 분명 왜곡된 인식의 태도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는 시간 동안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예술을 ‘대상’이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는 시간 동안 변화를 보여주는 예술을 ‘사건’이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 예술을 ‘영원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인 시간에 기반을 둔 것들이 절단되고 구분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통해서라는 점이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벽에 붙은 한 장의 종이는 영화 상영과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는 그것이 우리의 지각들과 맺는 즉각적인 관계에 있다. 

두뇌에 가해지는 자극의 측면에서 보면, 정적인 것이란 [동일하게 여겨지는 것이] 반복되는 사건이다. 숙고가 행해지는 장소가 ‘정적’이건 ‘동적’이건 간에, 우리는 예술 행위라는 맥락 속에서 주의집중의 시간을, 인지와 기억의 과업을 처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대상이나 사건에 [직접] 다가갈 수 없다. 그것들은 좀처럼 ‘과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의도된, 의미를 품은 기호이기 때문에 이[처럼 ‘과시’되지 않는다는] 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단 하나의 관념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나면, 그것은 (예술적) 관념들의 회로에 들어가 그 회로 내에서 톺아볼 수 있게 될 뿐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 정적이건 동적이건 어떤 예술작품의 파악은 다른 모든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잠깐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남은 것이다. 영화 상영과 관련된 규준들 가운데 하나는 ‘제한적으로, 무리지어 보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간에 모이는 것이, 그럼으로써 ‘관객’이라 불리는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집단에는 특수한 행동 특성이 있다.   
  
<화재 주기 Fire Cycle>(1974)와 <네 대의 영사기를 위한 긴 영화 Long Film for Four Projectors>(1974)를 통해, 나는 작품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것이 관객에게 가능한 집중의 성격을 의미심장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만족했다. [통상적인 영화와는 달리 작품을 보기 위해] 주의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작품의 감상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지는 그저 [관람객 각자에게]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에 따라 오고 갔다. 계속해서 바뀌기는 했어도 작품 각각의 구조에는 체계적인 균등성이 있었다. 특정한 위치에서 감상해야 한다는 지시도 없었고, 두 작품 모두 특별히 주의집중의 축이 생기지 않게끔 전체 [전시]공간을 활용했다. (이 점에 있어서 이 두 편의 작품은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1973) 같은 나의 전작들과 다르다. <원뿔을 그리는 선>의 경우에도 관람을 위한 위치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한 방향의 축이 있었다. [관람객들의] 눈의 방향은 결국 언제나 한 곳으로, 즉 영사기의 렌즈로 향했던 것이다.) 어떤 순간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에도 [전시공간의] 규모는 그들을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형식적 특성으로 인해 관람객과 작품 간에 일대일의 관계 성립이 가능해졌다.

이제 나는 다른 기본적인 것들, 즉 시간성과 빛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작품에서] ‘공연적’ 측면을 줄여나가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나는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비싸고 느리다는 점에서 불리한) 사진화학적, 전기역학적 과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러한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짓거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며, 모든 ‘제1원리’ 뒤에는 다른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고, 내가 [통상적인 방식으로] ‘영화들’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동안 나는 [영화]제작의 물리적 과정보다는 예술적 행위로서의 영화 뒤에 숨은 가정들에 천착하려 한다. 

앤서니 맥콜
1975년 뉴욕에서

(번역 유운성)



로무알트 카마카의 <히믈러 프로젝트 Das Himmler Projekt>(2000)


※ 2015년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릴 DMZ국제다큐영화제에 독일감독 로무알트 카마카(Romuald Karmakar)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을 때 특별전을 마련해 초청한 바 있는 감독이다. 그는 21세기 독일영화계에서 크리스티안 펫촐트(Christian Petzold)와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카마카의 경우 알렉산더 클루게의, 펫촐트의 경우 하룬 파로키의 영화적 동지이자 제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 펫촐트의 <피닉스 Pheonix>(2014)는 유대인수용소의 생존자 문제를 다룬 수작으로, 놀랄만큼 과대평가된 '예술연습' 영화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이다 Ida>(2013) 같은 작품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영화사(史)와 인간의 역사에 접근하는 윤리적 태도도 인상적이지만 느리게 타올라 기어이 관람자를 뒤흔들어 놓고야 마는 감정적 조율이 압도적이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마카 작품 가운데 한 편인 <히믈러 프로젝트>가 상영된다.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의뢰를 받아 메인카탈로그에 수록될 짧은 리뷰를 하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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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믈러 프로젝트 The Himmler Project / Das Himmler Projekt
감독: 로무알트 카마카 Romuald Karmakar (2000, 182분)

동시대 독일영화감독들 가운데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이라 할 로무알트 카마카는 쉬이 범주화되기 힘든 독특한 작업들로 예민한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편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함부르크 강연>(2006)과 더불어 그의 가장 대담무쌍한 작품으로 꼽히는 극단적인 ‘낭독의 영화’ <히믈러 프로젝트>(2000)만큼이나 철저하게 카마카다운 영화도 없을 것이다. 카마카는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가 1943년 10월 4일 폴란드의 포즈난(독일어 명칭은 포젠)에서 92명의 나치 친위대(SS) 장교들에게 행한 연설, 무엇보다 유대인절멸계획에 대한 언급으로 악명 높은 그 연설을 영화의 소재로 취했다. (이 연설은 비밀리에 행해진 것이었지만 전체가 녹음 및 보존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단색의 배경막 앞에 강연대만이 덩그마니 놓인 세트에서 한 명의 배우(만프레드 자파트카)가 히믈러의 연설 녹음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것이다.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상영시간은 히믈러가 실제로 연설했던 시간과 거의 같다.) 사실 자파트카는 텍스트를 ‘낭독’(reading)한다기보다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기는 해도) 분명 그것을 ‘연행’(performing)하는 배우로서 - 하지만 히믈러라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헐적으로 쇼트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카메라는 낭독 중인 자파트카의 얼굴을 그의 눈높이에서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히믈러의 연설 도중 청중이 보인 반응(가령 웃음소리)이 자막으로 제시되는가 하면, 연설 도중 말의 중단이나 실수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나고, 행사장의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안 히믈러가 잠시 연설을 중단하고 부하들에게 내리는 지시 또한 고스란히 낭독되는 등, 연설 자체를 재연하려 하기보다는 연설 녹음자료의 시청각적 분석을 통해 연설의 정황을 읽어 내고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쇼트의 변화는 연설의 토픽이 미묘하게 전환되는 경우나 히믈러가 청중 가운데 누군가를 바라보며 지목하는 경우 - 이때 카메라는 그 청중의 시점에서 앙각으로 히믈러를 올려다본다. - 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 및 예측과 결부된 서스펜스는 대단히 강렬해지며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관객은 그 의미와 이유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이라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볼 법도 하다. 이것을 제1차 포젠 연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미니멀리즘적 픽션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연설 녹취록의 낭독이라고 하는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 물음을 픽션과 다큐멘터리 간 경계의 모호함이라고 하는 (이제는 벌써 진부하게 느껴지는) 오늘날 널리 퍼진 담론의 맥락에서 파악하려 드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히믈러 프로젝트>는 하나의 거대한 픽션을 해부하기 위해 마련된 시청각적 실험실이다. 여기서 거대한 픽션이란 히믈러가 연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 나치 친위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의 틀을 완전히 다시 짜는 것이다. 통상 히믈러의 연설은 3시간에 달하는 전체 가운데 유대인절멸에 관한 5분 남짓한 부분만이 강조되고 거듭 인용되어 왔는데, 카마카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제3제국의 거대한 픽션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보게끔 한다. 카마카의 집요한 시청각적 분석을 따라 히믈러의 연설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히믈러 프로젝트’가 비단 나치즘 시기에 국한된 과대망상증적 픽션이라기보다는 오늘날까지도 독일을 사로잡고 있는 픽션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2000년에 <히믈러 프로젝트>가 첫 공개되었을 때 이 영화는 사뭇 예언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히믈러의 발언은 독일 주도 하의 유럽연합 체제를 좌지우지하는 ‘메르키아벨리즘’(울리히 벡)과 소름끼치게 공명하는 것으로 비친다. 즉, 카마카는 이미 화석화되고 진부한 방식으로만 언급되는 역사적 도큐먼트를 온전히 치밀하게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동시대의 이슈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놀랄 만큼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픽션이나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 영화 같은 용어들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시청각적 문헌학(audio-visual philology)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마카는 9.11 테러범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교 지도자 모하메드 파자지의 2개의 강연 녹음자료를 토대로 한 <함부르크 강연>에서 (다시 한 번 배우 만프레드 자파트카와 함께) <히믈러 프로젝트>에서 실험한 방법론을 더 밀고 나가게 된다. 이들 작업은 ‘낭독’이라는 행위가 전면화된 정치적 미학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이따금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 혹은 카마카의 영화적 스승인 알렉산더 클루게의 몇몇 작업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의 텍스트에서 잠재적 의미를 끌어내거나 다른 텍스트와의 병치를 통해 새롭게 가능한 의미를 더하는 그들의 작업과 카마카의 작업을 나란히 놓는 것은 적절치 않다. 히믈러의 연설이나 파자지의 강연 같은 오명의 텍스트에 이끌리는 카마카는 무엇보다 그러한 텍스트들을 내파시키는 데서 자신의 정치성을 발견한다. 



2015-03-03

2015년 3월 첫째 주


[20150224]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벨렘의 노인>(2014)


작년 12월, 현역 최고령 영화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가 106세 생일을 맞이했다. 그보다 몇 달 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그의 신작 단편 <벨렘의 노인 The Old Man of Belem / O Velho do Restelo>이 상영되었다. 『버라이어티 Variety』 에 실린 서면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니, 원래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건강에 문제가 생겨 그가 살고 있는 포르토 자택 근처의 정원에서 촬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첫 공개된 지 여섯 달이 지나 비로소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19분 짜리 단편이기는 하지만 루이스 미겔 신트라, 디오구 도리아, 리카르두 트레파, 마리우 바로수 등 그와 오래 함께 작업해 온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데다, 이베리아 반도라는 특정한 지역의 문화에 대한 사색을 불현듯 보편적 문명에 대한 사유로 전환시키고야 마는 올리베이라 특유의 방법론이 유감없이 구사되고 있어, 거장의 일개 소품으로만 치부하는 건 매우 부당한 일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벨렘의 노인>은 그 주제적 너비에 있어서 <아니오,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올리베이라가 그의 오랜 지기들과 함께 자신의 아파트 '뒷마당'에서 찍은 영상을 자신의 이전 작품들에서 발췌한 영상들과 결합해 만든 소품으로, 어떤 면에서는 '홈 무비'(home movie)에 가깝다 할 작품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벨렘의 노인>의 올리베이라는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의 장-뤽 고다르, <과잉개발의 기억 Memories of Over-Development>의 키들랏 타히믹과 더불어 가장 커다란 사유의 홈 무비 양식을 실험한 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건, 올리베이라가 이 영화는 자신이 이전에 만든 영화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기억에 남을 두 개의 쇼트.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이 보인다. 이때 보이스오버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온다.


"예술작품이란 우리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창조된 동물들과 식물들을 외부에 투사(projection)하는 것이다." 

혜성이 건물 뒤편으로 사라지고 나면, 돌연 한낮의 숲(식물들) 풍경이 펼쳐진다. (프레임 내에는 보이지 않는) 온갖 동물들이 내는 소리가 풍경 속에 뒤섞이는 가운데,


"서정적 작품들, 그리고 극적인 작품들 또한 하나의 정원이다. 허나 그것은 호랑이가 포효하고 인어가 노래하는 동물원이다."


<벨렘의 노인>은 테이셰이라 드 파스코아이스(1877~1952)가 쓴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1825~1890)에 대한 전기소설 『회개자 O Penitente』(1942, 아래 사진)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하나,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떤 식으로 각색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영화는 한 정원 벤치에 갑옷을 입은 세르반테스(리카르두 트레파)가 앉아 있는 가운데, (포르투갈의 호머, 베르길리우스 혹은 단테로 일컬어지는) 『루지아다스 Os Lusiadas』의 작가 루이스 드 카몽이스(루이스 미겔 신트라)가 다가와 말을 건네고, 뒤이어 테이셰이라 드 파스코아이스(디오구 도리아)와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마리우 바로수)가 이들의 대화에 합류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파스코아이스의 말을 다른 세 인물이 주로 듣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올리베이라 자신의 이전 작품들, <불운의 사랑>(1978), <아니오,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1990), <절망의 날>(1992), <제5제국>(2004)에서 발췌한 영상 및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소비에트 시기에 활동했던) 그리고리 코진체프의 <돈키호테>(1957)에서 돈키호테가 풍차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코진체프의 <돈키호테>는 30여 년 전 국내 텔레비전 방영 당시 본 이후 좀처럼 다시 볼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벨렘의 노인>에 출연한 배우들이 (이미 여러 다른 올리베이라 영화에서도 얼굴을 비춘 이들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인용되고 있는 올리베이라의 과거 네 편의 영화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캐스팅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이루어졌다. 



왼쪽부터 루이스 미겔 신트라, 디오구 도리아, 리카르두 트레파, 마리오 바로수
(이들 뒤로 올리베이라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1)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마리우 바로수는 배우라기보다는 올리베이라와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사실 그는 <벨렘의 노인> 이전에 이미 올리베이라의 <프란시스카>(1981)와 <절망의 날>에서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역을 맡아 연기한 바 있다. 즉 그는 올리베이라에게 있어서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전담 배우이기도 한 셈이다. 

(2) 디오구 도리아는 <아니오,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포르투갈 병사 가운데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올리베이라의 1981년 작품 <프란시스카>에서 주인공 주제 아우구스토 역을 맡았다. 극중에서 주제 아우구스토는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의 절친인 동시에 연적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의 <불운의 사랑>은 브랑쿠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벨렘의 노인>에서 디오구 도리아는 브랑쿠에 대한 전기소설을 쓴 테이셰이라 드 파스코아이스 역을 맡고 있다. 

(3) 올리베이라의 손자인 리카르두 트레파는 <제5제국>에서 주인공 세바스티앙 왕을 연기했다. 세바스티앙 왕은 1578년 모로코 원정 당시 크사르-엘-케비르(Ksar-El-Kebir) 전투 도중 사라졌는데(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음), 이후 그는 포르투갈이 위기에 처할 때 다시 나타나 제국을 세우고 지배하리라는 메시아주의적 전설, 이른바 '세바스티앙주의'의 주인공이 되었다.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세바스티앙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는 Caroline Overhoff Ferreira, "Heterodox/Paradox: The Representation of the Fifth Empire in Manoel de Oliveira's Cinema" 같은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이 글은 Dekalog 2: Manoel de Oliveira (Wallflower Press, 2008)에 수록되어 있다. 포르투갈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세바스티앙주의 그리고 제5제국」은 김한민 작가가 옮기고 엮은 페소아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에 실려 있다.) <벨렘의 노인>에서 트레파는 돈키호테의 복장을 한 세르반테스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올리베이라는 자신만의 십자군 전쟁을 꿈꾸었던 세바스티앙 왕의 치기와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광기를 대응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크사르-엘-케비르 전투 이후 포르투갈의 몰락과 무적함대 패배 이후의 스페인의 몰락을 나란히 놓고 사유한다. 올리베이라에게 있어서 세바스티앙과 돈키호테는 이베리아적 이상의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면서, 나아가 실패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명의 불안이 구체화된 보편적 형상이기도 하다.

(4) 루이스 미겔 신트라는  <아니오,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서 치른 마지막 식민지 전쟁에 나선 병사들에게 자신의 조국이 과거에 겪은 일련의 실패의 역사를 들려주는 하사관 역으로 출연했다. 이런 그가 <벨렘의 노인>에서는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를 소재로 포르투갈의 영광을 노래한 『루지아다스』의 저자 카몽이스 역을 맡고 있다. 카몽이스는 『루지아다스』를 바로 그 세바스티앙 왕에게 헌정했었다. (이 책은 1988년 삼영서관에서 국역본으로도 출간된 바 있으나 현재는 절판되었다. 1880년에 나온 영역본은 이곳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그는 죽기 2년 전(카몽이스는 1580년에 사망해 바스쿠 다 가마의 유해가 안치된 벨렘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크사르-엘-케비르에서의 세바스티앙 왕의 패전 소식을 듣게 된다. <아니오, 혹은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유일하게 패배가 아닌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부분, 즉 바스쿠 다 가마 에피소드는 바로 『루지아다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며, 제목 또한 이 책의 한 부분("오, 지배에 대한 갈망이여! 오, 공허한 욕망이여!", 제4곡 95연)에서 연유한 것이다. 

'벨렘의 노인'이라는 제목 또한 『루지아다스』에서 연유한 것이다. 인도로 향하는 바스쿠 다 가마의 선단이 출항한 곳이 바로 리스본 벨렘 지역의 항구인데, 『루지아다스』 제4곡(특히 94~104연을 보라)에는 이 항해자들에게 경고의 말을 내뱉는 한 노인이 등장한다. 평자들은 이 에피소드가 이 책에서 그려진 탐험에 양가적인 의미와 불확실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제국주의적 이상의 낭만화로 저항 없이 빠져들지 못하게끔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벨렘의 노인>은 풍차 날개에 매달려 안쓰럽게 허우적대는 돈키호테가 땅에 떨어지는 모습, 그리고 카몽이스가 『루지아다스』 제4곡의 97연을 읊조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것이 우리 시대 '벨렘의 노인'이기를 자처한 올리베이라가 던지는 경고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이것을 '유언'이라 간주하지는 말자.)

"운명의 여신이 그들에게 뭘 약속했다는 것인가?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대체 무엇인가? 야자수가 뭐란 말인가? 승리가 뭐란 말인가? 승리의 영광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루지아다스』는 바다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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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5]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2014)



2015년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두 달 동안 본 개봉작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실망한 영화들이 적지 않다. 마이크 리의 <미스터 터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베넷 밀러의 <폭스캐처>는 각각 매력이 없지 않은 영화들이었지만 보는 동안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들 형제 영화세계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희한한 힘을 지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르덴 형제는 결코 위대한 영화를 만든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들 것 같지 않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이라는 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문으로만 듣다 비로소 보게 된 영화들 가운데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이다>와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의 <트라이브>를 나는 좀 심드렁하게 본 편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는 (형식이라기보다는) '미적 전략' 내지는 '미적 디자인'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앞선다. 올해 들어 처음 본 영화들 가운데서는 (개봉작은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영화관에서 본 애미 시겔(Amie Siegel)의 <동독/동독 DDR/DDR>(2008)과 <출처 Provenance>(2013)가 가장 근사했다. 최근의 개봉작들 가운데서는, 올해가 아닌 작년 말에 개봉된 두 편의 영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와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가 단연 압도적이다.  

연극과 현실의 삶이 기묘하게 대구를 이루며 때로 갈라서고 때로 마주치고 때로 뒤섞이는 스토리텔링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본 미이케 다카시의 <식녀 쿠이메 Over Your Dead Body> 역시 이런 계열의 영화에 속하는데, 새롭지 않은 스토리텔링에 진부하고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더해져,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미이케 다카시 필모그래피 한 켠에 자리한 '불명예의 전당'(hall of shame) - 그의 최근작 가운데서는 <역전재판 Ace Attorney>(2011)이 이곳에 안치된 바 있다 - 에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다.) 아사야스의 영화에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제스처가 배치되는 상황들의 모호함에 있다. 그는 삶이란 한 편의 연극이라는 낡아빠진 은유를, 삶이란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는 연극이며 인간들은 그때마다 변화된 상황에 걸맞은 역할 혹은 가면을 재빠르게 취해야 한다는 보다 흥미로운 (장 르누아르적) 통찰로 수정해 받아들인다. (레오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나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는 이를 중심 없는 레이어들(layers)만으로 구성된 삶의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보다 음울한 전망으로 밀고 나간다. 그러고 보면 '가장'(masquerade)이야말로 동시대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된 것 같다.) 물론 그 누구도 삶이 요구하는 기민함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매 순간마다 변신의 실패를 거듭하기 마련이지만, 다만 우리는 서로의 실패에 눈감을 뿐이다. '사교'(社交)란, 이 의식적인 맹목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 경합하는 광경을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마 베프 Irma Vep>(1996)와 <8월 말, 9월 초 Late August, Early September>(1998)는 아사야스를 1990년대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주로 꼽게 만들었지만, 그 이후 10여 년 간 그의 필모그래피는 적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여름의 조각들 Summer Hours>(2008) 이후 - 혹은, 이보다 덜 알려진 작업이지만,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안무가 앙줄렝 프렐조카주와의 협업 프로젝트 <엘도라도 Eldorado>(2008) 이후 - 3부작 TV 미니시리즈 <카를로스 Carlos>(2010), 그리고 <실스 마리아> 등의 작품을 내놓으면서 그는 점점 '마스터 디렉터'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마스터피스'라 할 만한 아사야스의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4-10-21

2014년 10월 셋째 주: "Deep Red?"


한 주 동안, 공산주의 국가 혹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영화들 몇 편을 나란히 보게 되었다.


사막의 태양 White Sun of the Desert (1969)
(dir. 블라디미르 모틸 / 소련(USSR) / 1969년 / 84분)
* 2014년 10월 25일(토) 13:00 상영예정 (서울아트시네마)



2011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마련한 여러 특별전 가운데 하나는 "레드 웨스턴: 아메리칸 웨스턴에 대한 공산주의의 응답"(Red Westerns: The Communist Answer to the American Western)이었다. 레프 쿨레쇼프의 <볼셰비키의 땅에서 웨스트 씨의 기묘한 모험 The Extraordinary Adventures of Mr. West in the Land of the Bolsheviks>(1924)에서부터 미르치아 베로이우의 <여배우, 달러 그리고 트랜실바니아인 The Actress, the Dollars and the Transylvanians>(1979)에 이르기까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동독,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 만들어진 '레드 웨스턴' 16편이 상영되었다. 당시 나는 영화제 일로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 전체를 볼 수는 없었고 간간히 짬을 내어 3편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모스필름 90주년 특별전"(2014.10.10~26) 프로그램에, 로테르담에서 놓쳤던 작품 가운데 한 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블라디미르 모틸의 <사막의 태양>이다. (이 작품은 모스필름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전편을 감상[이곳을 클릭]할 수 있으며 영어자막도 제공된다. 하지만 이 시기 소련영화 특유의 색감을 만끽하려면 역시 영화관에서 복원판으로 보거나 러시아에서 출시된 블루레이로 봐야 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10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에 다시 상영될 예정이다.)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0월 17일에 관람했는데, 10월 12일 상영 시에는 '레드 웨스턴' 프로그램의 기획자였던 세르게이 라브렌티에프의 강연이 있었으나 (다음달 소식지에 실을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아쉬운 대로 2011년 로테르담 특별전 당시 발간된 소책자에 실린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라브렌티에프에 따르면, 흐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했던 1962년, 소련에서는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1960)이 개봉되어 입장권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1960년대에 자라난 소련의 아이들은 '선량한 공산주의의 개척자들'에 대해선 깡그리 잊어버리고 스터지스 영화의 주인공인 율 브리너의 제스처, 걸음걸이, 카우보이 복장 등을 따라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당 차원에서 자국의 신문과 잡지 등을 동원하여 이 영화에 대한 비판운동을 전개했는데 박스오피스 결과를 실제보다 적게 조작하는 일도 포함되었다. 결국 정부는 <황야의 7인>의 상영을 중단시켰고 이 영화에 대한 '공산주의적' 응답이 될 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레드 웨스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리투아니아 출신) 비타우타스 잘라키아비추스의 <죽기를 바란 자는 없다 No One Wanted to Die>(1966), 에드몬 케오사얀의 <도피한 복수자 The Elusive Avengers>(1967) 그리고 블라디미르 모틸의 <사막의 태양>이다. 모틸의 이 작품은 소련 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직 소련 내 연방국가들 간의 형제애가 여전히 강조되고 있던 시절에 제작된 이 영화가 "소련과 중앙아시아 문화의 양립불가능성은 물론이고 동방에서의 연방정책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음이 분명"(에밀리 힐하우스)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제작되기 일 년 전, 소련은 체코의 프라하를 침공해 강압적인 방식으로 공산주의 개혁의 움직임을 잠재웠다.)

1960년대 소련영화들 가운데 연방정책 - 특히 중앙아시아의 통합 - 과 관련된 함의가 담긴 것으로 (이 시기의 소련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내게 얼른 떠오르는 것은 보리스 바르넷의 활기와 냉소, 멜랑콜리가 뒤섞인 스피디한 걸작 <알룐카 Alyonka>(1961)와 (이번 "모스필름 90주년 특별전"에도 포함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진중한 예술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다. 전자는 일견 낙관적인 전망을 내비치는 듯하면서 실은 통합의 불가능성을 암시하는 반면, 후자는 예술가 영화의 외견을 빌려 문제에 우회적으로 접근하면서 - 시간적 배경 또한 몽골-타타르족의 침입이 있던 15세기다 - '러시아적인 것'을 보편과 통합의 가능성으로 재발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사진 1] <사막의 태양>. 내전 참전 후 귀향 중인 군인의 몽상
Counter 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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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t
[사진 2]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The Mirror>(1975). 전쟁에 나간 남편의 귀향을 기다리는 여인

<사막의 태양>에서, 게릴라 압둘라의 아홉 명의 아내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졸지에 떠맡게 된 주인공 슈호프는 여정 도중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아내와 이 아홉 여인들에 행복하게 둘러싸이는 몽상에 잠긴다. (각각이 '러시아적인 것'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상징하는 것임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사진 1] 혹은 모스필름 유튜브 채널 <사막의 태양> 영상의 45:24~46:32를 볼 것.) 통합 혹은 연방(제국)이란 사실 형제애나 우애가 아니라 일부다처의 하렘 - 공산당의 '본처'인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라는 '첩들'을 관리하는 - 이 아니고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 짖궃은 농담의 강도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슈호프의 아내의 자리에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러시아적 모성의 이미지([사진 2])를 슬쩍 겹쳐놓고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실, <사막의 태양>의 그 꿈 장면이 아주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영화 초반부터 슈호프의 아내 카테리나를 과도하게 성적으로 이미지화한 탓이 크다. 영상의 00:22~01:30을 볼 것.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장면은 거의 부뉴엘적인 뉘앙스를 띠게 되었을 것이다.) 


[사진 3]

+ Parallel

[사진 4]

아홉 명의 중앙 아시아 여인들에 둘러싸인 슈호프의 모습([사진 3])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우애를 강조하는 선전용 포스터의 스탈린([사진 4])과 비교해 보라. 슈호프는 자신의 몽상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임을 안다. 그런데 이 몽상은 기묘하게도 스탈린의 몽상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것은 도착적인 것의 이상화이며 금지된 것의 프로파간다이다.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정신분열증. 이러한 정신분열증이 낳은 긴장의 텍스트인 <사막의 태양>은 당대 소비에트의 이상과 그와 관련된 도상들을 일그러뜨리고 얼룩지게 한다.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dir. 조슈아 오펜하이머 /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 2012년 / 159분 *director's cut)
* 2014년 11월 국내 개봉 예정

이 역겹기 짝이 없는 다큐멘터리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되었다.  『뉴 스테이츠맨 New Statesman』 에 기고한 글(2013.7.12)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각 개인들의 가차없는 이기주의를 공적 부의 원천으로 삼는 자본주의 - "개인들이 협소한 사적 이익을 희생하고 직접적으로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려 할 때 [오히려] 공공의 선이 위축되는 패러독스" - 에 대한 언급을 거쳐, 이러한 자본주의가 초래한 공적 공간의 사유화(privatising the public space)가 <액트 오브 킬링>의 인도네시아 학살자들의 행위 - 자신들이 50여 년 전에 저지른 학살의 광경을 거리낌 없이 '영화화'하려 드는 - 와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이 이들을 데리고 영화를 위해 벌인 일들을 여기 시시콜콜 옮기고 싶지 않다. 궁금한 이들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지젝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데, (1) 지젝의 '자본주의적 개인' 개념은 기껏해야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의 개인 개념을 현실적인 것으로 단정지은 것에 불과하고 (2) 오늘날 점점 범람하는 '퍼블릭 섹스 비디오' - 공공장소에서의 섹스 포르노 비디오, 개인들이 웹상에 올리는 누드나 포르노 이미지 - 들과 같은 방식으로 공적 공간을 (뻔뻔스럽게!) 사유화하고 있는 것은 지젝이 지목한 인도네시아 학살자들이 아니라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이기 때문이다. (글의 말미에 지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출증자들은 공적 공간에 침입하는 반면, 웹상에 자신들의 누드 이미지를 게시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사적 공간에 머물면서 다른 공간들을 포괄하기 위해 그것을 확장시키고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의 안와르와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공적 공간을 사유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살자들은 '공적 공간을 사유화'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지젝이 그에 대비시켜 말한 '공적 공간에 침입하는 노출증자들'에 가깝다.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작업은 야외섹스를 즐기는 한 커플의 비디오를 '합의 하에' 촬영해 주기로 한 뒤, 이런 행태에 대한 고발이랍시고 촬영 영상을 정리해 웹상에 게시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정리하자면, 여기서 지젝의 논의는 이론적 구성물('자본주의적 개인')의 자명성과 영화적 구성물(다큐멘터리의 '캐릭터')의 투명성을 가정함으로써만 성립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 솔직하며 적확한 언급은 조너선 로젠봄의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액트 오브 킬링>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암살단의 잔학행위라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라면, 나는 이러한 정보를 얻기 위한 보다 효과적이고 유용한 다른 방식이 있을 거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이 영화가 제공하는 것이 그러한 정보에 대한 시적, 심리적 혹은 정치적 통찰 같은 거라면, 그러한 통찰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내게 제공할 평론가들이 있는지 보고 싶다. 이 영화에 그런 게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으로서는) 여기에 덧붙일 말이 별로 없다. 다만 약간의 치유제가 필요할 뿐이다. 일요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본 리티 판의 <잃어버린 사진 The Missing Picture>(2013)처럼. 이 작품 역시 '미디어시티서울 2014'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혹시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의 주제는 '파르마콘'(pharmakon)이었던가? 


 [사진 5] <액트 오브 킬링>. 50여 년 전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영화화하는 가해자 [Shooting]
(카메라 뒤의 인물은 '빨갱이 학살'의 주범이었던 안와르 콩고)

[사진 6] <잃어버린 사진>. 40여 년 전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의 기억 [Projection]
(수용소에서 크메르 루즈의 선전영화를 보았던 기억을 클레이 인형과 모형을 통해 재현한 장면) 


(2014.10.22 추가) 위의 글을 포스팅한 후, 페이스북 코멘트를 통해 정승훈 교수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적어 보내주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 격식 없이 편하게 쓰신 거라는 걸 감안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난 지젝 의견에 좀 공감했는데, 이때 사유화되는 공적 공간은 사회적으로 준수되는 어떤 윤리적 문턱 위에 자리잡는 정치적 공공역과 같다고 봤습니다. 킬러들은 그 문턱을 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노출하려는 듯하지만 실은 그런 문턱은 아랑곳 않고, 그걸 파괴하듯, 문턱 밑으로 관람자들을 끌어내려 자신들의 안방으로 초대해놓고 왕년의 업적을 떠벌립니다. 회사에서 하지 못하는 성희롱을 술자리에선 재미로 하듯 학살을 정당화하는 거죠. 정치적 커밍아웃 같은 진지함이 아니라 과시적 퍼포먼스 같은 뻐김이 그래서 가능한 거고, 그게 더 섬뜩한 거고. TV 토크쇼 장면은 이 사적 비공식적 뒷담화가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과정을 시사하는데,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질 때 공공의 윤리적 문턱은 어디 있는가 하는 게 이 영화의 질문이라고 봅니다. (가령 5.18 조롱 같은 걸 온라인이 지들 안방인 양 배설하고 공유하는 일베 무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고, 그래서 공공역의 사유화는 정치든 섹스든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별 저항 없이 우발적으로 도처에서 유통 소비 심지어 향유되는 글로벌한 경향과 닿아있는 듯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점을 문제적으로 드러내려 했지, 자신의 비윤리적 욕망으로 공공역을 사유화하는 걸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후속작인 <침묵의 시선>은 희생자 편에서 계속 질문을 이어가고 있고.."

정승훈 교수의 반론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킬러들은 ~ 관람자들을 끌어내려 자신들의 안방으로 초대해놓고 왕년의 업적을 떠벌립니다. 회사에서 하지 못하는 성희롱을 술자리에선 재미로 하듯 학살을 정당화하는 거죠."

: 비유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의 킬러들이 과시적인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그들이 마련한 자리에 우리나 감독이 초대받아 간 것으로 생각될 수 없어요. 킬러들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술판을 벌이게끔 한 것은 다름아닌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죠.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관객)는 그 안방의 술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펜하이머가 촬영하고 편집하여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를 통해 그 안방의 술판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킬러들의 퍼포밍(performing)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 물론 인도네시아 판차실라 청년단(Pancasila Youth)의 집회 장면처럼 시네마베리테적 관찰이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 킬러들의 퍼포밍을 퍼포밍한 기록입니다. 정승훈 교수는 지젝과 마찬가지로 킬러들의 과시성에 놀란 나머지 불현듯 영화라는 매체를 뒤로 물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위에서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작업은 야외섹스를 즐기는 한 커플의 비디오를 '합의 하에' 촬영해 주기로 한 뒤, 이런 행태에 대한 고발이랍시고 촬영 영상을 정리해 웹상에 게시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지요.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관람자들은 가능한 매체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노력하기 마련인데, 그러고 보면 지젝과 정승훈 교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액트 오브 킬링>이 실은 포르노그래피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셈인데요.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안와르 콩고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카메라 앞에 (때로는 뒤에) 선' 안와르 콩고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2) "TV 토크쇼 장면은 ~ 공공의 윤리적 문턱은 어디 있는가 하는 게 이 영화의 질문이라고 봅니다."

: 저는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다큐멘터리 자체가 이미, 정승훈 교수가 언급한 TV 토크쇼와 마찬가지로 "사적 비공식적 뒷담화가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그 TV 토크쇼와 <액트 오브 킬링>은 다른 영역에 있지 않고 - 제게 이 영화는 그 토크쇼보다도 훨씬 역겨웠습니다 - 나아가 킬러들의 '사적 비공식적[이기 마련인데 과시적으로 떠벌려지는] 뒷담화'가 인도네시아 방송의 국지성을 넘어 보다 광범하게 공적영역을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2013년 영화제 서킷(과 웹상의 각종 토렌트사이트들)을 휩쓴 이 영화 덕택이었죠. 그 잠식의 "범위가 점점 넓어질 때 공공의 윤리적 문턱은 어디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 영화가 (안에서) 제기하고 있는 질문이 아니라 이 영화로 인해 (바깥에서)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만일 실제로 이 영화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저는 그에 대한 증거를 보고 싶습니다. 

(3) "오펜하이머는 이 점을 문제적으로 드러내려 했지, 자신의 비윤리적 욕망으로 공공역을 사유화하는 걸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 그 느낌의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작인 <침묵의 시선>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다루었다는 이 후속작의 존재가 <액트 오브 킬링>을 위한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액트 오브 킬링>과 유사한 혹은 비교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루되, 보다 사려깊은 접근으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여겨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9.11 테러범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함부르크 이슬람사원의 이맘(Imam) 모하메드 파자지의 강연 오디오 기록물을 텍스트로 옮긴 후, 이를 단순한 배경 앞에 앉은 배우로 하여금 낭독케 하면서 원래의 강연을 분석적으로 해체해 버린 로무알트 카마카의 <함부르크 강연 Hamburger Lektionen>(2006),  수백 명의 사람들을 납치, 고문, 살해한 멕시코 청부살인업자가 자신의 이력을 구술하는 광경을 담아내되, 어떤 자료 화면이나 재연도 없이, 비좁은 호텔 방에서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냉담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비판적 거리를 취하고 있는 지안프랑코 로시의 <엘 시카리오: 164호실 El Sicario: Room 164>(2010) 등이 그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언급한 <잃어버린 사진>의 리티 판이 2003년에 발표한 <S21: 크메르 루즈 킬링 머신 S21: The Khmer Rouge Killing Machine>(2003)도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