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오큘로 009: 열렬한 희망, 고다르와 이미지의 책》(2021년 10월 10일 발행)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이 글의 후반부는 고다르와 파졸리니의 관계에 대해 요즘 생각해보고 있는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은 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예수의 말,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삶과 사상을 떠올리면서 파졸리니의 미완의 프로젝트 <성 바울>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다시 읽어볼 때다.
잠시 생각해 보자. 고다르의 <이미지 북> 도입부에 나온 ‘archives et morale’이라는 자막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어렵지 않게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분명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이 작품의 꽤 후반부에 나오는 ‘archéologie et pirates’이라는 자막은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도 여간해선 떠오르지 않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리스어 ‘아르케(ἀρχή)’에 공통의 기원을 두고 있는 두 단어, 즉‘archives’와 ‘archéologie’가 작품의 앞뒤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거듭 보고 난 다음이었다. 예민한 이들이라면 사정이 달랐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다(혹은 없다)고 하는 것, 즉 연상─정확하게는 ‘association/dissociation’의 과정이 부단히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고다르의 작업을 움직이는 제일의 원리라는 것을 여기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아카이브와 고고학이라는 서로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용어들이 <이미지 북>에 등장하고 있음을 일단 깨닫고 나니, 결코 고다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두 명의 사상가와 그들의 저서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는 『지식의 고고학』의 미셸 푸코이고 다른 하나는 『아카이브병』의 자크 데리다이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고다르가 그의 영화에서 직접 언급하거나 그것을 통해 환기시키는 철학적・예술적 저술들을 부단히 떠올리며 그의 영화에 접근하려 드는 이는 자신이 어느덧 과대망상적 독해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그러니, 주의하도록 하자, 고다르의 영화에서 몽테스키외와 베카신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병』의 도입부를 여기 옮겨놓고 고다르의 영화와 함께 살펴보자 제안하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 (다짐은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 우리는 떠올려본다, 아르케란 시작(commencement)과 명령(commandement)을 한꺼번에 거명한다는 것을. 분명 이러한 거명은 동일한 것 안에 두 개의 원리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자연이나 역사를 따르는 원리─물리적, 역사적 혹은 존재론적 원리─가 그 하나로 여기는 일이 시작되는 곳이고, 율법을 따르는 원리─입법론적 원리─가 다른 하나로 여기는 인간들과 신들이 명령을 내리는 곳이자 권위와 사회 질서가 행사되는 곳으로서 바로 이곳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온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매개로 고다르의 영화에 접근할 때 과대망상적 독해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으면서 그것도 오직 피상적으로만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다르 자신의 독서가 언제나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데리다의 독자라면 위에 인용한 도입부만을 읽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단 독서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법의 정신’이 여러 소제목들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해서 <이미지 북>의 이해를 위해서는 몽테스키외에 대한 면밀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이 터무니없는 만큼이나, 한스 오테가 작곡한 《소리의 책(Das Buch der Klänge)》이 영화에 사용되고 제목을 짓는 데도 영감을 주었다 해서 이 곡의 의의를 과장하는 일 또한 그러하다. (고다르와 음반사 ECM 레코드와의 협력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미지 북>에 사용된 오테의 곡 역시 ECM에서 발매된 헤르베르트 헨크의 연주 음반이다.)
일단 거칠게 나눠보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을 묻는 고고학이 시작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카이브는 명령과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카이브 자체가 직접 어떤 명령을 내리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명령에 모종의 권위를 부여한다─‘이러이러한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게끔─는 점은 분명하다. 대체로 이러한 명령은 이론적인 법칙보다는 실천적인 율법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오늘날에는 예술적 판단마저도 아카이브에 근거해 정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조사연구의 충실함과 윤리적 정당성에 기대어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식이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미적 가치판단의 출구 없는 미궁에 다시 빠져들 필요야 없겠지만, 그런 식의 평온한 나태함을 비평적 입장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미지 북>의 도입부에 ‘archives et morale’이라는 자막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서 고다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카이브 및 그것에 근거를 둔 명령의 실천적인 차원이라는 쪽에 확실히 무게가 실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고다르의 방식이 아니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도 아카이브는 반드시 고고학과 더불어 사유되는 것이며 고고학은 반드시 아카이브와 더불어 사유되는 것이다. 아카이브 없는 고고학은 공허하고 고고학 없는 아카이브는 맹목이라고 믿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고다르를 진정 에세이스트적 정신의 소유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는 그가 시작과 명령이라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아르케의 의미들을 언제나 동시에 붙들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르케란 오직 아포리아를 통해서만 사유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리하여 그의 영화는 아도르노가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 가정 내지는 전제에 입각해 에세이적 움직임의 궤적을 따르게 된다.
하나의 단어가 여러 다른 것들을 의미한다면 그것들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감춰져 있다 하더라도 단어의 통일성은 대상 자체에 있는 통일성을 상기시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일성을 오늘날의 보수적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그저 언어적 친연성으로 간주해 버려서는 안 된다. (……) 에세이는 추론적 절차에 단순히 대립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 에세이는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의 명제들이 전체로서 서로 어울려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에세이는 논리적 규준들을 따른다.
오늘날 에세이적 작업이라 하면 일종의 자유연상을 따르는 스타일을 취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아도르노는 그런 수필 같은 작업은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아도르노 자신은 편성(configuration)이나 성좌(constellation)라고 부르지만 폴 발레리는 유추(analogy)라고 부르고 마츠모토 토시오는 은유라고 부르며 앙드레 바쟁은 수평적 몽타주라고 부르는 에세이적 방법─물론 여기에 구체(球體)의 형태를 띤 책과 영화를 상상해본 에이젠슈테인의 아이디어를 더해도 좋다─에 대해 생각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에세이란 “문화적으로 미리 결정된 특수한 대상들”에 대한 고찰로서 이러한 대상들은 푸코라면 담론 구성체라고 불렀을 법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에세이적 방법은 연상의 흐름을 따라 유사한 것들을 배열하는 작업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업이 진정 겨냥하고 있는 것은 서로 떨어진 불연속적 요소들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상동성(homology)─오늘의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발레리의 용어 자체가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방법’ 속에서 에세이적 정수를 읽어내는 그의 통찰이다─을 파악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미지 북>에서 고고학과 아카이브, 시작과 명령, 존재론적 원리와 입법론적 원리라는 양극을 부지런히 오가는 고다르가 겨냥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아르케는 결코 규정되거나 정의되는 법은 없지만 움직임 속에서, 아니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서, 그것도 오직 사이에서만 경험된다.
무엇보다도, 이론적으로 상관적인 짝─archive/archéologie─을 고찰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상반적인 짝─morale/pirates─을 함께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그다운 것이다. 이에 착안하면 ‘archives et morale’과 ‘archéologie et pirates’라는 일견 기이해 보이는 조합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를테면 1960년대에 발표한 <중국 여인>에서 그가 마오주의의 의미를 탐문하는 방식은 그것을 여름 휴가와 나란히 두고 그 둘을 동시에 산출하는 보편성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다.) 무언가의 의미는 그것의 속성을 규정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다른 관념들과 이리저리 결합해보는 시도들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고 보는 태도라고나 할까? 들뢰즈가 고다르를 두고 무언가의 의미를 단정하는 계사 ‘이다(est)’의 영화작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예하는 접속사 ‘그리고(et)’의 영화작가라고 불렀던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이는 나무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닮은 것이다. 여하간, 덕분에 우리는 쉽사리 유사성의 함정에 빠져드는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된다. 대신 노략질(pirates)을 윤리(morale)로 취한다는 것─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미지 북>의 핵심적인 테제가 아닐까?─의 의미에 대해 고려해보게 된다.
그림 1
가령 <이미지 북>에서 고다르가 혁명에 관해 이야기할 때 거듭 등장하는 이미지 하나를 살펴보자. 그것은 흰옷을 입은 한 소년이 길에서 붉은색 바퀴 같은 것을 굴리고 있는 이미지(그림 1)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바퀴가 아니라 필름을 감는 데 쓰는 릴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워낙 저화질인 데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이미지라서 정작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붉은색 바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고다르가 혁명에 대해 고찰하는 방식은 역시 말과 이미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식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말을 훔쳐서 이미지에 건네주고 다시 이미지를 훔쳐서 말에 건네준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혁명(révolution)은 일단 ‘굴린다(revolve/ribouler)’는 행위와의 연계 속에서 파악되고 이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구르는 바퀴의 이미지가 화면에 떠오른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년이 굴리고 있는 것은 단순한 바퀴가 아니라 필름이 감겨 있는 릴이다. 그는 이 릴을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혹시 훔친 것은 아닐까? 고다르적 연상의 노선에서 혁명이란 ‘다시-훔친다(re-voler)’는 행위와도 얼마든지 연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혁명과 연계된 이러한 행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겨냥해 수행되는 것일까? 고다르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화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릴을 굴리며 뛰어가는 소년의 이미지는 일단 (고다르의 동반자 안느-마리 미에빌의 저서 제목으로 쓰인) ‘말하는 이미지들(images en parole)’이라는 텍스트와 몽타주되며, 얼마 후에는 붓으로 쓰여진 ‘말과 이미지(parole et image)’라는 텍스트와 다시 몽타주된다(그림 2).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다시 훔쳐내야 하는 것도 영화이고 다시 굴려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도 영화라는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노략질은 하나의 윤리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를 무엇으로부터 훔쳐내야 한다는 말인가? 일단 아카이브를 교묘하고 기민하게 활용하는 고착화된 명령들로부터다. 고착화된 명령들은 CMD 혹은 명령 프롬프트와 다를 바 없으며, 이런 명령들과 관계하는 아카이브는 점점 데이터베이스화된다. 푸코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역사적 아프리오리로서의 아카이브가 형식적 아프리오리로서의 데이터베이스로 화하는 것이다.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고다르가 쓰는 용어로는 전자는 랑가주, 그리고 후자는 랑그에 대략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고다르에게 있어 랑가주가 역사적 아프리오리에 상응한다는 것은 흔히 오해하듯 그가 제멋대로의 임의적인 사적(私的) 언어에 집착하는 이가 아님을 암시한다. <이미지 북>의 종반부에서 그는 다짐하듯 말한다. “하지만 랑그는 결코 랑가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mais la langue ne serait jamais le langage)”라고. 그렇다, 데이터베이스는 결코 아카이브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혹은, 언제나 저항이, 아니 노략질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미 <영화의 역사(들)>에서부터 고다르는 어느덧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거치는 동안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전화(正傳化)되고 문화적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린 영화 이미지들을 ‘도용’─다시 강조하건대, 훔치고 굴리기─하여 그것들을 어떻게든 중립화하고 비결정적인 것으로 변환하려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는 지독히 반(反)아카이브적인 인물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업이야말로 아카이브를 데이터베이스화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분명 고다르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아카이브의 질서를 교란하고 흐트러뜨린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결과로 얻은 이미지들을 다시 아카이브에 자리매김하고 특수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고다르의 작업은 진정 고고학적이다. 이는 고고학이란 담론들을 아카이브의 요소 내에서 특수화된 실천들로 기술하는 것이라고 했던 푸코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고다르 역시 고고학을 어떤 시원(始原)이나 창조적 개시에 대한 탐구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온갖 고유명들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주의하라고, 이미 말했다. 고다르의 영화에서 몽테스키외와 베카신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그런데 이쯤에서 『지식의 고고학』의 한 부분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결국 다짐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어쩐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원저의 냉철함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정우의 번역으로 해당 부분을 읽어 보자.
고고학은 (……) 단지 언표들의 규칙성을 수립하고자 할 뿐이다. 여기에서의 규칙성이란 (……) 언표적 기능이 수행되도록 해주는 조건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 고고학은 발명을 추구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최초로 어떤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 이 순간(감동적인, 우리는 이에 동의한다)에 무감각한 것으로 머무른다. 즉 고고학은 이 축제의 아침들이 내뿜는 빛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 고고학이 린네 또는 뷔퐁의, 페티 또는 리카르도의, 피넬 또는 비샤의 텍스트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정초하는 성자(聖者)들의 목록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담론적 실천의 규칙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부 표기를 수정하고 ‘언설(言說)’ 대신 ‘담론’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여기서 푸코가 ‘규칙성(régularité)’이라 부른 것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고다르의 용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단어의 연관성에 기대어 ‘규칙(règle)’을 그 후보로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이미지 북>에서 고다르가 “나는 규칙도 예외도 알지 못했다(je ne connaissais ni les règles ni les exception)”는 몽테스키외의 회고의 말을 따라 읊조릴 때, 이는 그가 규칙과 예외를 모두 가능케 하는 ‘조건들의 집합’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고다르가 『법의 정신』에서 발췌해 인용하고 있는 부분은 아니나다를까 모두 이 책의 서문 몇 페이지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책에 피상적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푸코가 규칙성이라 부른 이러한 조건들의 집합, 이를 가리키는 고다르식 용어가 바로 ‘법(loi)’이다. 그의 영화에서 존재론적인 것과 입법론적인 것은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서로 교차하며 아르케란 오직 그들 사이에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처럼, 법이라는 말 또한 이론적인 법칙과 실천적인 율법 양자를 왕복하는 움직임의 궤적을 통해서만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푸코의 기획이 무엇보다 언표들의 규칙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고다르의 고고학적 실천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미지들의 법과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들의 법이란 이미지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제도적인 측면에서 따라야 할 율법적 규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제도적으로 율법화되곤 할 때마다 고다르는 노략질(pirates)로 맞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에 여기저기서 ‘훔쳐온’ 온갖 이미지들이 만연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지들의 법이란 이미지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미학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제공해 주는 이론적 법칙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법이 미학적으로 이론화되곤 할 때마다 고다르는 윤리(morale)를 내세우는 것으로 맞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에 정치적 표상으로 들끓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고 온갖 정치적 슬로건들이 만연하는 이유다. 이렇게 보면 그가 1982년에 발표한 <열정>에 나오는 “영화에는 법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지(Il n'y a pas de loi au cinéma, c'est pour ça qu'on l'aime encore)”라는 대사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흔히 이 대사 속의 ‘loi’는 ‘규칙’─공식적인 영문판 프린트에서는 ‘rule’─으로 번역되었고 또 그렇게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원래 대사의 반어적 뉘앙스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법의 부재를 두고 희희낙락거릴 수도 없지만, 그것을 정의 내리고 규정할 수도 없다. ‘법의 정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미지 북>의 4부에서 고다르는 자신의 고고학적 실천과 관련된 곤혹스러움을 몽테스키외의 말을 빌려 읊조리고 있다. 고다르가 낭독하고 있는 부분을 어쩐지 친밀한 느낌을 주는 이재형의 번역으로 읽어 보자.
만일 내가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갖게 하고, 복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종하는 데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믿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믿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편견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인간들을 깨우쳐주려고 애씀으로써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이 보편적 덕성을 실천할 수 있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에 따르는 유연한 존재인 인간은 그에게 그 자신의 본성을 보여주면 그것을 이해할 수도 있고, 그것을 빼앗으면 그것에 대한 감정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다. (……) 나는 이 작업을 (……) 수도 없이 포기했다. 나는 구상 따위는 안 짜고 그냥 내 목표만 따랐다. 나는 규칙도 모르고 예외도 몰랐다. 내가 진실을 발견한 것은 오직 그것을 잃어버리기 위해서였다. [‘nature’는 ‘성격’ 대신 ‘본성’으로, ‘ouvrage’는 ‘책’ 대신 ‘작업’으로 옮겼으며, 번역을 아주 약간 수정하였다.]
위의 문장들을 고다르가 이따금 낭독하는 동안 정작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 학살과 살인과 모욕과 감금과 순교와 처형 등의 광경을 담은 폭력의 이미지들이다. 영화작가로서 고다르가 근심하는 지점은 이러한 이미지들과 연관된 현실의 폭력에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다루는 ‘법(loi)’ 자체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배우 헨리 폰다가 출연한 두 편의 미국영화, 즉 존 포드의 1939년 작품 <젊은 날의 링컨>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6년 작품 <누명 쓴 사나이>를 흥미롭게 끌어온다. 전자의 영화에서는 법─정확히는 법률 서적─과의 만남에 들떠 있는 젊은 폰다의 모습을, 후자의 영화에서는 감옥에 갇힌 채 법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나이든 폰다의 모습을 발췌해 보여준다(그림 3).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법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il y a quelque chose qui cloche dans la loi)”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서 법은 결코 사법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것은 실천적인 정의론과도 거의 관련이 없다. 여기서 고다르는 할리우드라는 하나의 역사적 아프리오리가 제공했던 규칙성으로서의 법이 특정한 순간에 정립되고 붕괴되는 국면들─1939년과 1956년─을 폰다의 이미지들을 통해 포착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림 3
돌이켜 보면,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는 이미지들의 법이 아포리아를 통해서만 파악되는 아르케이길 그치고 일종의 제도이자 관습법이 되었을 무렵 시도된 일련의 혁명 속에 있는 것이었다.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로서의 법을 다시 아포리아 속에 두라는 요청, 이는 법의 정신을 회복하라는 요청이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자신들의 시원(始原)적 지위를 과시하지도 않고 명령 프롬프트를 통해 호출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요소도 아닌 채로 존재하는 곳, <이미지 북>의 고다르는 그곳을 캐나다 실험영화 작가 마이클 스노우의 표현을 빌려 ‘중앙 지역(la région centrale)’이라 부른다. 이 영화의 5부는 여러 아랍영화에서 발췌한 이미지들로 가득한데 이것들은 서구화된 시네필들의 기억 속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고다르는 서구적 시네필의 정전들과 단단히 묶여 있는 이미지들의 갱생이란 역시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온 노략질의 대가가 여전히 새로운 아르케이온을 물색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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