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사진잡지 《보스토크》 40호(2023년 7월 발행)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6월 23일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포럼 ‘차이밍량: 영화의 여정, 느리게 걷다’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포럼은 《2023 부산모카 시네미디어: 영화의 기후》 전시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최근에 나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 출간된 유라이 메덴의 『스크래치와 글리치』를 흥미롭게 읽었다. ‘21세기 초반 영화의 보존 및 전시에 관한 소견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영화의 제작, 유통, 상영, 보존 등이 완전히 디지털로 이행한 지금, 필름 아카이브나 미술관은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담겨 있는 에세이집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실제로 오갔던 우스꽝스러운 대화 하나가 실려 있다. 교수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은 이제 구식이 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최근의 모든 기술적 변화를 경시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후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학생 (어리둥절하며): 교수님, 사실 저는 지금 교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종종 두 번, 때로는 세 번씩 (교실 안에 앉아 있는 다른 학우들에게 손짓으로 동의를 구하며) 저희는 바로 그러려고 모이거든요. (양손을 들어 각각의 손에 들린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보여 주면서) 이런 것으로 영화를 보는 습관을 깨고 대신에 커다란 스크린으로 무언가를 보려고요.
교수 (미심쩍어하며): 학생이 지금 하는 말은 믿기 힘든데요. 여러분이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고요? 언제요? 어디서요? 우리는 잘 운영되는 필름 뮤지엄이 있는 도시에서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동시에 이곳은 매일 다른 영화를 보여주는 이 지역의 유일한 장소죠. 대부분 35mm 필름으로요! 저는 거의 매일 밤 거기에 가는데 학생을 본 적은 없어요. 사실 여러분 중 누구도 거기서 본 적이 없어요.
학생 (놀라며): 필름 뮤지엄이라고요? 무슨 필름 뮤지엄이요? 저희는 우리 집 거실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데요. 아니면 제이슨네 거실에서요. 저한테는 4K 55인치짜리 QLED가 있고 제이슨도 막 LG에서 나온 새 8K OLED를 샀거든요.
이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오늘날 영화의 집은 과연 어디인가? 메덴의 책을 읽고 있을 무렵 나는 영화감독 차이밍량이 최근 몇 년 동안 만든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보면서도 똑같은 물음을 떠올렸다. 여기서 나는 차이밍량이 그간 활동해온 방식을, 그리고 그가 만든 작품들을 돌이켜보며 이 물음에 접근해보고 싶다.
21세기 들어서, 특히 2009년에 발표한 <얼굴> 이후로, 차이밍량은 영화감독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행보를 밟아왔다. 이렇게 말하면 영화감독과 아티스트는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만들어서 그 제작비를 회수해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을 영화감독이라고 보고, 미술관이나 영화제나 비엔날레 같은 제도 및 기관의 커미션을 받아 작업하지만 딱히 작품의 제작비를 회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본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카메라, 마이크, 조명기, 편집 프로그램 등등)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무빙 이미지의 성격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해도 말이다.
물론 아티스트도 작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마다 일정한 관객을 끌어 제작비를 회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개별 작품 각각은 관객을 거의 끌어들이지 못하더라도 아티스트 자신이 일종의 ‘브랜드’로서 인지되거나 평단과 저널리즘의 주목을 받는다면 지원금이나 후원금으로 작업을 지속할 기회를 얻을 확률이 높다. 사실 오늘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이런 의미에서라면 이미 영화감독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다. 그리고 차이밍량은 영화감독에서 아티스트로 느리게 이행해온 이들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21세기 영화의 상태를 가늠해보게끔 하는 작가다. 영화인들과 시네필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도발적으로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도발에 걸맞은 작품까지 내놓는 데서 여전히 필적할 이가 없기도 하다.
차이밍량과 전혀 반대편에서, 즉 아티스트가 아닌 영화감독으로서 21세기 영화의 상태를 가늠해보게끔 하는 작가라면 단연 봉준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차이밍량과 봉준호는 모두 이와 관련해 동일한 메타포에 매달리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건 바로 집이다. 가옥으로서의 집(house)과 가정으로서의 집(home)이라는 뜻을 모두 고려해서 말이다. 영화의 가족, 영화의 거처, 영화의 집이라는 것이 대체 오늘날 어떻게 가능한가? 혹은 과연 가능한가? 차이밍량과 봉준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1990년대 내내 꾸준히 이 문제 주변을 맴돌던 차이밍량이 폐관을 앞둔 영화관을 무대로 한 2003년 작품 <안녕, 용문객잔>에서 그것에 의식적으로 접근했다면, 봉준호는 2000년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이 문제에 다가갔다. 함께 모여 사는 곳이지만 어디까지나 개별적이고 고립화되어 있는 거주 형식인 아파트에서 하나의 일상적 범죄를 목격하고 작은 영화적 모험에 뛰어드는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인물을 통해서 말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설정은 영화 보기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건드린 히치콕의 <이창>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봉준호 영화의 모험에는 히치콕적 로맨스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봉준호의 인물들은 그들을 둘러싼 장소만큼이나 본질적으로 고립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기생충>에서도 가족, 거처, 집이라는 문제에 접근했고 충분히 동시대 영화의 상태로 비춰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반지하 방의 위쪽에 난 창문을 흡사 영화 스크린처럼 바라보고 사는 기택네 가족과 어쩐지 아트 갤러리를 닮은 저택에서 사는 박 사장네 가족의 대비를 통해서 말이다. 기택네 가족을 통해 구현된 영화적 형상, 장소 없이 떠도는 비천한 영화가 아트 갤러리에서 기생하는 일은 과연 어떻게, 얼마나 오래 가능할까?
차이밍량이 1992년에 <청소년 나타>로 정식 데뷔하기 직전에 만든 중편의 제목은 ‘내게 집을 줘(給我一個家)’였다. 건설 노동자인데 정작 자기 집은 갖지 못하는 이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 차이밍량은 지난해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회고전에 맞춰 내놓은 신작 <곳>에서 그의 영화적 이력을 잠정적으로 결산하는 듯한 몸짓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어디에(何處)’이다. 의미심장하게 울리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강요된 방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영화는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이 작품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21세기에 차이밍량이 밟아온 궤적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순전히 장편 극영화만 놓고 보면 요즘의 차이밍량은 그야말로 과작의 작가처럼 보인다. 10년 동안 발표한 것이라고는 2013년 작 <떠돌이 개>, 그리고 2020년 작 <데이즈(日子)> 두 편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나타>로 데뷔하고 나서 <얼굴>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적어도 2~3년에 한 편씩은 꼬박꼬박 장편 극영화를 만들곤 했다. 그런데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그리고 VR 작업 등을 모두 고려하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단순히 편수로만 따진다면, 그는 최근 10여 년 동안 스무 편이 넘는 작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영화관보다는 주로 미술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특히 차이밍량이 2012년에 내놓은 <무색>, <행자>, <금강경>, <몽유> 등 네 편의 단편으로 시작된 ‘행자(行者)’ 연작─원래는 느리게 걷는 여정이라는 뜻에서 ‘만주장정(慢走長征)’ 연작이라고 불렸던─은 어느덧 아홉 번째 편인 <곳>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연작은 붉은색 법복 같은 천을 걸치고 당나라의 고승 현장으로서 등장하는 배우 이강생이 아주 느리게 어떤 장소들(홍콩, 타이페이, 쿠칭, 마르세유, 도쿄, 좡웨이, 파리 등)을 걷는 것을 롱테이크로 포착한 쇼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 쪽에 익숙한 이라면 브루스 나우만의 워킹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걷기를 수행 중인 이강생은 오늘날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 영화 자체에 상응하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자 연작은 영화와 미술과 공연의 경계 지대에서 걷는 작품이다. 실제로 차이밍량과 이강생은 이 연작의 공연 버전이라 할 <현장>이라는 작품─2015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 시에는 ‘당나라 승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2021년에 발표한 <소요(漫不經心)>는 행자 연작의 번외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연작들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을 소요하는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차이밍량이 스크린 앞에 서서 자기 작품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생각하기에 따라 <안녕, 용문객잔>과 밀접히 관련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다만 <안녕, 용문객잔>의 무대가 폐관을 앞둔 영화관이었다면 <소요>의 무대는 2018년에 새로 개장한 대만 좡웨이 사구 공원의 전시관이다. 영화의 새로운 집, 그렇다고는 해도 아마 잠정적인 집, 여하간 잠시 발길을 멈추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 이런 집으로서의 갤러리 혹은 미술관. 행자 연작 가운데 2018년 작품인 <모래>에서 우리는 막 건설 중인 좡웨이 사구 공원의 풍경을 배회하는 이강생을 보게 된다. 전시관 건물 내부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은 이내 거기서 멈춘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우리는 언제부턴가 차이밍량이 더는 영화관을 영화의 집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배회하다 돌아가 앉아서 기다리다 보면 가족들이 하나둘씩 귀가할 거라는 믿음을 보장해주는 장소가 바로 집이다. 영화의 집으로 간주되었던 영화관도 한때는 그런 장소였다. 일단 표를 끊고 입장하면 영화는 이미 시작한 다음일 수 있지만 기다리다 보면 다시 처음부터 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는 곳 말이다. 적어도 차이밍량이 친숙하게 느끼는 영화관이란 그런 곳이다. (나는 20세기의 여러 영화관, 특히 재개봉관이라 불리던 곳들을 떠올려본다.) 행자 연작 가운데 하나로 2013년에 발표된 <행재수상(行在水上)>에서 이강생은 말레이시아 쿠칭에 있는 한 7층 건물 주변을 맴도는데, 이곳은 어린 시절 차이밍량을 돌보았던, 그리고 그에게 원초적 영화 경험을 제공한 외조부모가 살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 경험과 맞닿은 영화관 풍경은 오늘날의 관객에겐 무척이나 낯선 것이다. 영화가 이미 시작했는데 입장할 수는 있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다시 시작하길 기다릴 수는 없고 퇴장하는 출구로 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보고 싶다면 표를 다시 구입해 들어와야 한다. 그런가 하면, 예술영화전용관이나 독립영화전용관에선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영화가 처음부터 다시 상영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제에서는 심지어 영화가 일단 시작하고 나면 입장 자체가 불허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영화관들은 분명 영화관의 외양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영화의 집은 아니다. 따라서 영화관에 붙이는 ‘아트하우스’나 ‘전당’ 같은 이름은 그저 영화산업의 허영심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욕망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반어적 개그에 불과한 것이 된다.
대략 2007년 무렵부터 차이밍량은 아예 영화의 집을 미술관으로 이식하는 자못 대담한 기획에 착수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그리고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전시다. 그는 폐관된 영화관에서 뜯어낸 극장용 의자들을 전시실에 설치하고 스크린도 갖춰 영화관처럼 만든 뒤 거기서 자신이 만든 23분짜리 단편영화 <이것은 꿈이다>를 상영했다. 2013년 작품인 <떠돌이 개>는 애초부터 영화관이 아닌 장소에서의 스크리닝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장편 극영화인데, 미술관에서 보여줄 때는 특별히 요청해 자정까지 문을 열도록 하거나 주말엔 밤샘 이벤트를 하기도 해서 관람객들이 덮을 것과 먹을 것을 들고 와 볼 수 있게끔 했다. 이렇게 볼 때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때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고 차이밍량은 단언한다. 물론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더는 영화의 집이 아닌 오늘날의 영화관이겠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차이밍량은 영화를 그저 미술관에 가져와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영화관을 미술관에 설치하는 것만도 아니고, 일체의 영화관 경험 자체를 미술관으로 이송하려 하고 있다고 말이다.
<소요>에 나오는 좡웨이 사구 공원의 전시관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차이밍량의 행자 연작들이 말 그대로 ‘동시 상영’되는 영화의 집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관람객은 언제라도 들어와 작품들 사이를 오가며 감상할 수 있고, 보다가 조금 지치면 쉬기도 하고, 나와서 공원을 거닐다가 원한다면 전시관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이밍량은 영화관에서 미술관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영화관과 미술관을 접합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차이밍량이 생각하는 영화의 여정의 끝인 것일까?
만일 차이밍량이 여기에서 멈췄다면 다소 아쉬웠을 터다. 행자 연작의 아홉 번째 작품인 <곳>에서 차이밍량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두 명의 배우를 번갈아 보여준다. 하나는 연작의 주인공인 이강생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밍량의 작업에 최근 합류한 아농이다. 이 둘은 차이밍량의 장편 극영화 복귀작 <데이즈>에서 이미 나란히 등장한 바 있다. 이로써 <곳>은 행자 연작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한편으론 <데이즈>와 짝을 이룬다. <곳>에서 이강생과 아농이 처음 교차하는 장소는 바로 미술관이다. 영락없이 <현장> 공연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미술관 바닥을 덮은 커다란 백색 종이 위를 기어 다니며 아농이 목탄으로 여러 개의 선들을 그리는 가운데 붉은색 법복을 입은 이강생이 그 사이로 지나간다. 이들의 움직임이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가 싶을 때, 돌연 차이밍량은 집에서 잠들어 있는 아농의 얼굴을 보여준다. 흡사 이들의 만남이 꿈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들은 거리에서 다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아농은 거리를 메운 인파들 사이로 느리게 걸음을 옮기는 이강생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영화의 집을 떠난 영화는 잠시 머물던 예술의 거처마저 벗어나 비로소 세계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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