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7

정치적인 것의 장소, 다시


※ 이 글은 계간 사진잡지 《보스토크》에 연재하고 있는 '영화의 장소' 칼럼을 위해 쓴 것이다. (2026년 6월에 발간한 제54호에 수록.) 《보스토크》 53호에 실린 「정치적인 것의 장소」와 얼마간 관련된 글이다. 



괴짜들의 수호천사 제임스 L. 브룩스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올해 초이다. 아니, 소식을 들었다기보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즈니플러스가 2월 5일부터 <엘라 맥케이>(2025)를 공개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미국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실패해 한국에서는 개봉을 거치지 않고 DVD로 직행한 <에브리씽 유브 갓>(2010) 이후 무려 15년 만의 신작이라 반가움이 더욱 컸다. 브룩스의 작품이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것은 <스팽글리쉬>(2004)가 마지막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유년기나 청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브룩스는 스필버그만큼은 아니어도 대단히 폭넓은 문화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라면, 스필버그의 경우에는 그의 입김이 슬쩍 닿기만 한 것도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반면, 브룩스의 경우에는 그가 상당히 깊숙이 관여한 것이라도 그의 이름을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는 점이겠다. 제작사로서 그는 1986년에 설립한 그레이시영화사(Gracie Films)를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빅>(1988), <장미의 전쟁>(1989), 그리고 <제리 맥과이어>(1996) 등의 히트작을 내놓았고,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단편을 보고 매료되어 웨스 앤더슨의 장편 데뷔작 <바틀 로켓>(1996)을 제작하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미국인이라면 1970년대의 가장 성공적인 텔레비전 시트콤으로 꼽히는 <메리 타일러 무어 쇼>를 기억하겠지만, 미국인이 아니라도 1989년에 첫 방영된 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그레이시영화사의 대표작 <심슨 가족>은 모두가 안다.

오랫동안 텔레비전에서 경력을 쌓았던 브룩스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83년으로, 마흔셋의 나이에 발표한 <애정의 조건>을 통해서다. 이 작품은 다섯 개의 아카데미상(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의 희극적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첫 작품은 뉴스룸을 배경으로 한 <메리 타일러 무어 쇼>처럼 자신의 텔레비전 시절 경험을 자양으로 삼은 <브로드캐스트 뉴스>(1987)다. 이 작품은 가장 널리 사랑받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그리고 21세기 첫 십 년의 가장 훌륭한 미국영화 가운데 하나인 걸작 <스팽글리쉬>와 더불어 ‘브룩스적 터치’라는 표현의 타당성을 든든히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브룩스가 자신의 작품에 촘촘하게 개인적인 특성을 박아 넣는 예술가라고 보는 조너선 로젠봄 같은 이는 미국에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유성영화가 도래한 이후 미국인들이 자국의 희극적 재능의 가치를 알아보는 데는 놀랍도록 둔감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들은 하워드 혹스에 대해 그러했고, 제리 루이스에 대해 그러했고, 프랭크 태쉴린에 대해 그러했고, 블레이크 에드워즈에 대해 그러했고, 일레인 메이에 대해 그러했다. 21세기 들어 그들의 둔감함은 더욱 심화하여 브룩스가 내놓은 영화들은 완벽한 몰이해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엘라 맥케이>는 미국 평론가들 사이에서 동시대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낡아 빠진 구식의 영화로 치부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이와 정반대로 언론의 너른 호평과 극찬까지 얻은 프랑스의 경우, 개봉을 포기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데 대한 반발이 거세어져 5월에 제한적으로나마 극장 상영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브룩스는 ‘올드 할리우드’의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 전통을 잇는 우리 시대의 (거의) 유일한 영화감독이다. 이 말은 그가 할리우드 고전기 로맨틱 코미디에 오마주를 표하면서 이 장르의 주제적, 형식적 특성을 비평적으로 재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브룩스의 작업은 로맨틱 코미디에 접근할 때마다 시네필적인 호고(好古) 취향의 과시가 이 장르의 순진함과 충돌하곤 하는 피터 보그다노비치나 코언 형제의 그것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의 작업은 예술적 야심을 품은 젊은 감독이라면 하나같이 비극적, 실존적, 성찰적인 영화를 내놓았던 1970년대 ‘뉴 할리우드’ 시기에 태연자약하게 <새로운 잎>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내놓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던 일레인 메이의 그것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이 시기에 브룩스는 텔레비전 시트콤에 전념하고 있었다.) 즉 그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통을 회고(과거로 취급함)하거나 갱신(미래로 내세움)하기보다는 당대의 관객들과 협상 가능한 현재적 장르로 이어가고자 한다. 보그다노비치나 코언 형제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예술가로서 선택 가능한 여러 양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브룩스에게 그것은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가늠케 하는 지표 식물과 같다.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는, 특히 고전기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수용되기 쉽지 않은 장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를 ‘옛날 영화’이니 이런저런 것들이 맞지 않아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던 관객도 자신과 동시대에 속한 작품에는 좀처럼 그런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이 환상에 기초하고 있는 장르라서? 내가 보기에 이건 터무니없는 설명이다. 그런 주장은 <라라랜드>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뮤지컬이 오늘날의 관객에게 무리 없이 수용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관객은 어떤 장르가 설정하고 있는 환상의 경계를 인지하고 나면 사실적으로는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알면서’ 받아들이고 즐긴다. (우리는 무지한 관객이라는 오래된 이데올로기 비평의 가정을 기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로맨틱 코미디가 좀처럼 수용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문제는 로맨틱 코미디가 뮤지컬처럼 환상에 기초한 장르가 아니라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에 말려드는 괴짜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실적인 장르라는 데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사건은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지만 비사실적이지는 않다. 남녀가 거리를 걷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서로에게 사랑 고백을 하기 시작하자 행인들이 모두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일은 아예 있을 법하지 않고 그만큼 비사실적이다. 그러니 환상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백만장자의 딸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청소부와 사랑에 빠진다는 건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지만 비사실적이지는 않다. 그러니 환상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는 로맨틱 코미디를 괴롭히는 ‘시간적 과민성’의 원인이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수용 여부는 당대의 관객이 일어날 법하지는 않아도 비사실적이지는 않다고 느끼는 일의 한계가 어디인지에 달려 있다. 이 한계를 넘는 순간 관객은 영화가 사실적이지 않고 시대착오적이라며 비난을 가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무엇보다 성적인 것이 암시하는 긴장을 통해 지탱되는 장르다. 따라서 암시가 사라지고 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장르 자체가 와해된다. 포르노 뮤지컬은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있다. 가령, 뮤지컬 <코러스 라인>을 하드코어 포르노로 패러디한 브라질 영화 <오! 헤부세테이우>가 그런 영화다. 하지만 포르노 로맨틱 코미디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성적인 것이 약간만 노골적으로 드러나도 그러해서, 로맨틱 코미디의 인물과 요소와 설정을 고루 갖추었어도 홍상수의 <오! 수정>이 좀처럼 이 장르로 지각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쯤에서 정리해 보자.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르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다.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섹스가 도입되고 나면 거의 불가능해지는 장르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다. 그렇다면 브룩스가 텔레비전 시트콤으로 성공을 거둔 1970년대는 미국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다는 것이 서서히 까다로운 일이 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1971년에 리처드 닉슨은 달러를 고정 비율의 금으로 바꾸어주는 금태환 제도를 폐지했고, 이로써 오늘날과 같은 변동 환율제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화제의 중심에 섰던 1972년에는 주류 언론의 관심을 받은 최초의 하드코어 포르노라 할 <목구멍 깊숙이>가 극장에서 개봉한다. 메이의 <새로운 잎>이 개봉한 것은 1971년이고 보그다노비치의 <왓츠 업 덕>이 개봉한 것은 1972년이다. ‘뉴 할리우드’의 시대에도 ‘올드 할리우드’의 고도로 과민한 장르는 아직 당대의 관객과 협상할 수 있었다. 


<엘라 맥케이>


오늘날 영화에서는 거의 힘을 잃다시피 한 로맨틱 코미디가 방송용 드라마에서는 제법 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이 섹스가 노골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터다. 또한, 1990년대부터 범람하기 시작한 각종 경연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생 역전을 거듭 사실적인 것처럼 비춰주는 영역이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영화라 불리는 영역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나 과민한 지표 식물이다. 그것이 소재로 삼는 상황이 당대의 관객에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또는 비사실적으로 다가가는지에 따라 그것이 속한 사회의 양태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40년 작품인 <모퉁이 가게>가 1998년에 <유브 갓 메일>로 리메이크되었을 때 원작의 편지 교환을 이메일 교환으로 바꾸었다는 바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갓 연애를 시작한 이를 달뜨게 하는 감정적 응축에 꼭 필요한 ‘말의 지연’이 예전과는 다른 뜻으로 변해가고 있던 때, 보낸 메시지에 즉각적 회신이 없으면 ‘읽씹’으로 느끼게 될 사회를 염두에 둔 사전 조정을 여기서 읽을 수는 없을까?

미국영화의 스크린에 음울한 반영웅이 숱하게 배회하던 1970년대를 지나 하드 바디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던 1980년대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브룩스는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은 사실적인 상황을 과감하게 끌어들인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 왔다. 이 점에서 그는 지극히 ‘고전(기 할리우드)적’이다. 이를테면, <스팽글리쉬>에서 일급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부남 셰프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멕시코 출신의 불법 이민자 가사 도우미에게 끌린다. <브로드캐스트 뉴스>에서 일류 대학을 졸업한 워싱턴 방송국의 베테랑 프로듀서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도 다니지 못한 풋내기 남자 앵커에게 끌린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는 자식이 딸린 레스토랑 여종업원에게 끌린다. 

이처럼 가까스로 사실적인 설정을 두고는 있지만, 브룩스는 당대 관객의 감각에 맞추기 위해 소재 자체나 서사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찾으려 들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주장을 담은 액션 영화가 운동의 박력을 잃어버리듯, 정치적인 주장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는 같잖은 소극이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대신 그는 미국 관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대화 부분을 자막 없이 처리하면서 묘하게 그 뜻과 정서를 감지하게 한다든지, 괴짜 주연들은 물론이고 여느 영화에서라면 물색없이 끼어든 익숙한 훼방꾼이나 악역에 그쳤을 괴짜 조연들을 기어이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든지, 불편한 대화 상황을 섣불리 감정적 폭발로 이끄는 대신 긴장을 조율하며 차분하게 이어가는 등의 섬세한 방식을 선호한다. 그런데, 대략 <스팽글리쉬> 이후부터, 미국인들은 브룩스의 연출이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엔 충분치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의 작품은 설정과 현실 간의 차이로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외국인에게 그 형식의 섬세함이 훨씬 더 잘 감지되는 것이 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엘라 맥케이>는 21세기 여성 버전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같은 영화다. 이것은 분명 코미디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다. 빈말이라곤 모르고 스스로에 몰두해 입바른 소리만 하는 이상주의자 엘라는 스미스만큼 괴짜지만 정치에 문외한이기는커녕 똑똑하고 유능한 정책가다. 34살에 부지사가 된 그녀는 모시던 주지사가 행정부의 장관으로 발탁되는 바람에 갑자기 주지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을 괴롭힌 불륜 행각으로 연을 끊고 살았는데 갑자기 나타나 무턱대고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연애를 시도할 용기가 없어 십수 개월째 자기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남동생, 기자에게 뇌물을 주는가 하면 엘라에게 공직을 요구하는 남편 등으로 그녀 주변은 어지럽기 짝이 없다.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은 고모 그리고 경호원과 이야기를 나눌 때다.

이 영화에는 엘라가 남편과 함께 사는 자신의 집에 있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애정의 조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리고 <스팽글리쉬> 등에서 브룩스의 인물들에게 종종 집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꽤 의미심장하다. 엘라는 집무실이나 회의실에 있거나, 고모의 집이나 식당에 있거나, 동생이나 아버지의 집에 있거나, 이동하는 차 안에 있거나, 그도 아니면 실외에 있다. 엘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장소들을 오가지만 정작 그녀의 장소는 없는 것 같다. 이 점에서 그녀는 말의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움직임의 궤적을 통해 장르 내부에 정치적인 것의 형상을 그려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런 움직임이 비사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엘라 맥케이>는 만연한 불신에 당당히 시대착오로 맞서는 영화다. 주지사가 엘라를 두고 말했듯, “사람들이 다하지 못하는 것을 콕 찌르는” 식으로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여간해선 있을 법하지 않지만 비사실적이지는 않은 것은 결코 소진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엘라 맥케이>를 홀대한 미국인들은 헉슬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멋진 신세계’로 이미 이행한 이들이다.

2026-07-01

우편배달부의 가르침


※ 이 글은 2026년 3월 22일 임재철 선생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3월 24일부터 4월 11일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여섯 차례에 걸쳐 게시했던 것을 전체적으로 다시 구성한 글이다. 다시 구성한 글은 2026년 6월 20일 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열린 추모 행사 "임재철, 무적의 비평가를 기억하며"에 맞춰 임재철아카이브의 젊은 기획자들이 만든 소책자에 수록되었다. 이 소책자에는 정지돈 작가, 금정연 작가의 추모글도 함께 실렸다. 이 글을 정리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준 임재철아카이브의 기획자들(금동현, 문윤기, 배은열, 윤지원, 이광호, 이라진, 이중훈, 한민수)께 감사드린다.


이 사진은 2006년 여름, 로카르노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내가 직접 찍은 선생의 모습이다. 이 해에 선생이 제작한, 그리고 내가 프로그래머로 있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첫 공개된 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은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국제비평가상과 넷팩상을 수상했다. 2주 가까이 로카르노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내가 임재철 선생에게서 떠올리는 건 우편배달부로서 비평가의 형상이다. 한동안 선생은 출판사 이모션북스를 운영하면서 책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포장을 해서 우편으로 부치곤 했다. 책을 부치러 가는 길에 나도 몇 차례 따라나선 적도 있다. 한편으론,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이었을 때 수강했던 선생의 영화비평워크숍 수업도 떠오른다. 수강생 셋과 청강생 하나인 단출한 수업이었는데, 그나마 수강생 하나는 학기 도중에 조용히 사라졌다. 이 수업에서는 데이비드 윌스와 피터 브루넷의 『스크린/플레이: 데리다와 영화이론』을 읽으면서, 자크 데리다의 『우편엽서』에서 「진리의 배달부」라는 글을 같이 읽어 나갔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들을 제대로 다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업의 대부분은 선생이 좋아하는 축구 이야기와 이런저런 사담과 험담으로 채워졌고, 그 사이에 (당시에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던)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 자크 데리다에 대하여』에 대한 선생 특유의 ‘난폭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서로 무관한 이야기들 사이에서 이따금 어떤 비평적 번득임이 엿보이곤 했다. 사실 이건 수업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우편적인 것은 위기를 담고 있는 교대나 연기, 잘못 배달되거나 분실될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발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하는 구조적인 필연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송신과 수신이라는 사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선생의 말들이 꼭 그랬다. 그 말들 자체는 딱히 비평적이랄 것이 없이 여기저기 흩어질 때가 많았지만, 그 말들 사이에서 무언가 비평적인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곤 했다. 참으로 기묘한 방식으로, 여하간 편지는 도착하지 않으면서 도착한다. 그렇게 얻은 가르침 몇몇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았다. 


정치적인 영화에 대하여


다니엘 위예와 장-마리 스트로브의 <노동자, 농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선생은 “이 사람들 영화가 왜 진짜 정치적인 줄 아냐? 노동자나 농민은 못 보는 영화를 만들었거든.” 가까스로 망언의 수준에서 벗어난 이 말은 대부분의 노동자나 농민에게 위예와 스트로브의 영화가 삶에서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는 성격의 작품이라는 뜻은 아닐 터다. 한국어 특유의 애매함을 고려하면, 그의 말은 그들의 영화가 대부분의 노동자나 농민이 좋아할 리도 없고 이해할 리도 없는 것이라는 뜻에 가깝겠다. 나는 그의 말에 다음과 같은 뜻도 담겨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노동자나 농민이 좋아하는 영화가 노동자나 농민을 위한 영화일 리 없다. 여기서 ‘노동자나 농민’ 대신 소수자를 지칭하는 표현을 넣어 생각해 보면 그의 말에 담긴 정치적 잠재력이 잘 드러난다. 퀴어가 좋아하는 영화가 퀴어를 위한 영화일 리 없다. 여성이 좋아하는 영화가 여성을 위한 영화일 리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어야 한다. 영화가 항상 이랬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화가 예술이 되어버린 이후, 위예와 스트로브도 그 흐름 속에 있었던 영화의 모더니즘 시기 이후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건 영화가 예술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오늘날 진정 정치적인 영화를 만든다면 그것은 영화제와 갤러리의 관람객에게 가장 잘 수용되는 성격을 띨 것이 분명하다. 즉 정치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구원하고자 하는 주체의 소외를 수반한다. 이것이야말로 위예와 스트로브 영화의 딜레마다. 정치적 영화에 대한 선생의 통찰에는 분명히 마키아벨리적인 측면이 있다. 인간을 위한 정치가 인간적인 것일 리 없다는 확신에 가까운 것 말이다.


우정에 대하여


내가 임재철 선생에게서 우편배달부로서 비평가의 형상을 떠올리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선생은 출판사 이모션북스를 운영하면서 신간이 나오면 가방에 몇 권을 넣고 일일이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전해 주시곤 했다. 그러자면 교통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돈이 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생은 책을 직접 전하고 나면 차나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대개는 일방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대체 내가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는지 상영 도중에 불쑥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으시더니 “어, 영화 계속 봐라. 끝나고 책 주려고 왔다.”고 하셔서 놀란 적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모션북스의 책들은 모두 그렇게 받은 것이다. 다만, 2021년에 나온 네 권의 책, 장-뤽 고다르와 유세프 이샤그푸르의 대담집 『영화의 고고학』, 크리스티안 키슬리 등의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 폴 발레리의 『인간과 조개껍질』과 『정신의 위기』는 받지 못했다. 임재철 선생과 오래 교제한 이들이라면 한두 번쯤 (또는 그보다 자주) 겪는 일이지만, 서로 심기가 틀어져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무렵에 나온 책들이다. 원서로 먼저 읽고 선생께 추천해 드리기도 했던 앞의 두 권을 제외하고 발레리의 책 두 권은 대전아트시네마 로비에서 판매하던 것을 구입해 갖고 있는데, 나중에 그걸 아시고는 “아니, 왜 그걸 사! 만나서 주려고 했는데!”하며 무척 짜증을 내셨다. 선생이 왜 그렇게 직접 책을 ‘배달’하는 일에 집착하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우편적인 것’의 중요성을 일러주셨으면서도 본인은 정작 잘못된 배송의 가능성을 한사코 피하려 든 셈이니 어쩐지 모순된 구석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정에 대한 어떤 낯선 관념을 감지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생전에 선생이 좋아하셨던 영화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는 각별하게 생각한 영화 가운데 하나다. 2000년대 초중반, 한참 16mm와 35mm 필름을 사 모으시기 시작하던 무렵에 35mm 프린트를 구입해 소장하고 계셨던 영화 중 하나기도 하다. (가끔은 직접 수집한 필름 중 하나를 꺼내 사무실에서 영사해 보여주시기도 하셨는데,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를 그렇게 16mm 프린트로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던 것은 확실한데 이 영화에 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적인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강연 같은 걸 하실 때도 이야기가 곧잘 옆길로 새기는 했지만, 사석에서는 그야말로 한두 마디 논평만 툭 던지고는 “이거 만들 때 혹스가 말이야……” 하며 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로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선생이 “라울 월쉬 만큼 셰익스피어적인 감독은 없지.”라는 식으로 말하면, 대체 저게 무슨 뜻일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되어버리곤 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결국 며칠 동안 셰익스피어를 읽고 월쉬로 돌아오게 된다.) 여하간 나는 <리오 브라보>야말로 선생이 생각하는 우정의 관념에 가장 가까운 영화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실력이 되는(good enough)”이라는 지극히 혹스적인 대사 표현에 담긴 프로페셔널들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리오 브라보>를 거듭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악당들의 위협은 있지만 서스펜스는 거의 없거나 현저히 약한 액션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당들의 위협은 구실에 지나지 않고, 실은 서너 명의 남자들이 서너 군데 장소를 배회하면서 가끔 스릴을 즐기고 유유자적 시간을 때우는 서부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선생과 조금 가까운 사이가 되고 나면, 한밤의 거리와 공원, 그리고 편의점 따위를 오가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운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이 배회의 시간에 여자가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무척 드물었다. <리오 브라보>는 이 남자들의 공동체를 귀엽다는 듯, 혹은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는 여성적 시선이 관통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는 여성 최초로 휴고상 후보에 오른 SF 작가이기도 한 리 브래킷이 참여했는데, 그는 <빅 슬립>에서 처음 혹스와 작업한 후 <리오 브라보> 이후의 혹스의 후기작들,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제국의 역습’ 편의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침대’ 옆에서 페드로 곤잘레스가 존 웨인에게 빨간 여성용 속옷을 대어보고, 이를 문간에 선 앤지 디킨슨이 우습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통쾌한 장면 같은 것 말이다. 혹스적 공동체가 20세기의 남성적 시네필리아에 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면, 그리고 선생은 분명 거기에 매혹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 우리는 혹스 영화를 가로지르는 저 여성적 시선으로 그것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우편배달부에게서 얻은 두 번째 가르침이다. 


시네필리아에 대하여


임재철 선생이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였던 시절에 상영한 <시네마니아>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영화를 보는 일이 삶 자체가 되어버린 뉴욕의 영화광들을 다룬 것이었는데, 거기 나오는 이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이 뉴욕 유학 시절에 이따금 본 적도 있다고 하셨다. 이 영화와 거기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선생의 태도는 양가적이었다. 영화 보기의 매혹에 공감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영화에 삶을 의탁해 버리는 이들을 지독히도 경멸했다. 아니, 그런 이들을 걱정하셨다. 실제로 선생 주위에는 그런 영화광 청년들(주로 남자들)이 제법 있었다. 영화제나 시네마테크를 찾는 일에 전념하며 연애도 직업도 소홀히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선생은 등짝을 때리면서 “야, 영화 좀 그만 봐!”라고 하시곤 했다. 선생이 운영하던 영화관 필름포럼이 낙원상가에 있던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일정으로 방한한 하스미 시게히코가 존 포드의 <웨건 마스터> 상영 전에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고 선생을 따라 하스미 선생과 식사하는 자리에 끼게 되었는데, 거기서 하스미 선생은 일본에서 자신이 강연할 때마다 객석에서 꼭 보게 되는 이들이 있는데 서울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여기에도 그런 이들이 있는 것 같다며 “선생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사람들을 보면 무척 걱정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임재철 선생이 통역해 주셨다). 선생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선생은 영화를 탐식하듯 보는 사람이 아니었고, 누군가의 필모그래피를 ‘도장깨기’하듯 파들어 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선생과 오래 교류하셨던 박상준 선생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선생은 외국에 다녀올 때 국내에 나와 있지 않은 영화의 VHS 테이프를 잔뜩 구입해 오다 세관에 걸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선생 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이들은 지성의 부족을 리스트 채우기로 만회하려 드는 약한 인간, 즉 시네마니아에 불과하다. 반면, 강한 인간의 시네필리아는 어떤 강박도 없는 쾌락으로 영화들 사이를 지나간다. 그는 동일한 태도로 영화 뿐 아니라 철학 사이로, 문학 사이로, 음악 사이로,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소식) 사이로 지나갔다. 이 점에서 선생의 시네필리아에는 지극히 니체적인 데가 있었다.

말년의 선생이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신작(클린트 이스트우드, 장-뤽 고다르,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구로사와 기요시, 봉준호 등)이나, 선생을 따르던 이들이 열광하는 젊은 감독들의 영화는 파일을 구해서라도 종종 챙겨 보셨다. 나도 고다르의 <이미지 북>이나 만다 구니토시의 <사랑의 눈빛을> 같은 영화의 파일을 수소문해 구해 선생께 보내드린 적이 있다. 칸영화제에서 처음 봉준호의 <괴물>을 보고 돌아와 극찬하셨던 선생은 그 이후의 봉준호 영화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셨는데 “너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었다. 하마구치 류스케에 대해서는 “벼락 맞아 만든” <해피 아워>를 제외하고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내가 <우연과 상상>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씀드리자 파일을 구해 달라셔서 보내드린 적이 있지만 이후에 따로 의견을 듣지는 못했다. 선생이 살아 계실 때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던 마지막 영화는 아라이 하루히코의 2023년 영화 <하나쿠타시>였다. (원제는 ‘꽃을 썩게 하는 비’라는 뜻이지만 한국에는 ‘에로티즘 시나리오’라는 황당한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선생은 이것이 홍상수 영화에 대한 일본식의 유쾌한 그리고 탁월한 해석이라고 보았고 하루히코가 주연 아야노 고의 외양을 홍상수와 똑 닮게 분장한 것을 너무 재미있어하셨다. 


주고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나와 한예종 영상이론과 전문사 과정 동학으로 말년까지 임재철 선생과 긴밀히 교류하셨던 변호사 박형섭 형에게서 사진을 전해 받았다. 돌아가시기 꼬박 일 년 전, 알라딘빌딩 1층에서 있었던, 금정연 작가와 내가 함께 진행한 V. F. 퍼킨스의 『영화로서의 영화』 북토크 직후에 찍은 것이다. 선생과 형의 아들, 그리고 내가 같은 프레임에 들어 있다. 이 책은 선생 생전에 이모션북스에서 번역, 출간한 마지막 책이다. 한편으로는, 선생이 영화관 필름포럼을 낙원상가 4층에서 개관(2005년)해 운영하던 초기, 서른 살 전후의 젊은 친구들을 모아 꾸린 워크숍(2008년)에서 내게 강의를 맡긴 책이기도 하다. 별도의 모집 과정이 없이 지인들을 통해 추천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어쩐지 ‘지하조직’ 같은 워크숍이었다. 주로 선생 자신이 진행한 이 워크숍에는 나중에 이모션북스에서 출간한 스탠리 카벨의 『눈에 비치는 세계』를 번역한 이두희, 롤랑 바르트의 『미슐레』를 번역한 한석현 등이 참여했다.


사진을 보면 선생과 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다. 이래서 사진은 거짓말투성이라는 거다. 사진을 보다가 생각해 본다. 선생은 내게 무엇을 주었는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삶을 주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유형의 인간, 영화제나 시네마테크를 찾는 일에 전념하며 연애도 직업도 소홀히 하는 인간, 내가 바로 그런 인간(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때 선생은 장-마리 스트로브의 말을 내게 훈계처럼 들려주셨는데(글에도 인용하신 적이 있다) “시네필의 90% 정도는 타인의 영화 속에서 찌꺼기를 모으는” 이들이고 “시네필리아란 결국 야심의 결여다.”라는 게 그것이었다. 나는 한예종 영상이론과 전문사 시절 선생의 영화비평워크숍을 함께 들었던 친구인 김미경과 결혼했고, 또 다른 친구인 임경용은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며 《오큘로》를 함께 발간하고 내 첫 책과 최근의 책을 출간했다. 서른 살의 우리는 선생이 프로그래머로 있던 광주국제영화제에서 함께 일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아 일하게 되었으며, 김미경은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기획을 추진하는 팀에 합류했고, 경험이 전무했던 임경용은 여기서 카탈로그 출판 담당으로 일하다 나중에는 더북소사이어티/미디어버스를 설립해 출판과 서점 일에 뛰어들었다. 장례식에 선생의 마지막 길을 뵈러 간 우리 셋은 가족분들과 선생의 최근 젊은 제자들(또 다른 서른 살 무렵의 청년들)의 배려로 입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입관식이 마무리될 무렵, 마치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검은 나비가 날아들었다. (나중에 49재를 마치고 위패를 태우는 소지 의식을 할 때도 검은 나비가 날아와 다들 놀랐다.) 

그럼 나는 선생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주고받는다는 개념은 선생에게 낯선 것이었다. 선생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면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져갔다. 선생은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면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주었다. 가령, 도쿄에서 열린 드레이어 특별전을 보러 가서 내가 구입했던 도록은 공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내 짐들을 살피며 “어? 이건 내가 좀 봐야겠다.”고 말하는 선생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토론토에 출장을 가서 구입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 DVD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었다. 한때 TCM(24시간 내내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미국영화를 주로 방영했던 터너클래식무비는 한국 케이블방송 출범 이래 최고의 채널이었다)에서 부지런히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두었던 숱한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돌려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아마 지금쯤은 파주의 어느 창고에 있을 것이다. 대신 선생은 불쑥 이런저런 책을 읽어보라며 건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선생이 번역한 가와무라 미나토의 2016년 저작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상을 받을 것인가?』 미출간 원고가 아직도 내 컴퓨터에 있다.) 때로는 이것은 꼭 보라며 영화에 직접 만드신 자막을 넣어 보내실 때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등가교환은 없었다. (돌려)주고받는 대신 이것을 주고 저것을 가져가고, 이것을 가져가고 저것을 줄 뿐이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 가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선생은 내가 한국에서 만난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보다 더 반자본주의적인 인간이었다. (누군가 선생에게 건물을 살 돈을 주면 아마 그 돈으로 상영 프로그램 수십 개를 꾸리거나 서점을 열 궁리를 하셨을 거다.) 그러던 선생이 내게 딱 한 번, 내가 가져온/빌려온 것을 돌려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미셸 클레이피와 에얄 시반의 3부작 다큐멘터리 <루트 181: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여행의 편린들> DVD가 그것이다. 나는 선생이 이 DVD를 구입하시자마자 가져와서/빌려와서 보고 무척 마음에 들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나는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담으로, “선생님께서 가져가신 제 OOO을 돌려주시면 저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선생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아니, 이 새끼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걸 돌려드리기도 전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마셨다. 결국 우리 사이에 거래(deal)는 한 번도 성립되지 않았다. 거래는 정치를 파괴하고, 우정을 파괴하며, 시네필리아를 파괴한다. 이것은 내가 우편배달부의 삶에서 얻은 네 번째 가르침이다.


비인격적/비인칭적인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영화도둑일기』의 한민수 작가에게서도 사진을 한 장 전해 받았다. 임재철 선생께서 남긴 것들을 정리하다 찾은 것이라고 한다. 2008년 초에 찍은 것이다. 아주 익숙한 가르침의 현장이다. 선생을 처음 개인적으로 만난 것도 패스트푸드점이었고 가장 자주 이야기를 나눈 곳도 패스트푸드점 아니면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선생의 강의나 강연은 한 주제로 깊이 파고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나의 화제에서 다른 화제로 불쑥 넘어갔다가 이내 또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적인 대화에서라면 이 전환은 때로(라기보다 종종) 듣는 이를 피로하게 만들 정도로 일탈의 선을 그리곤 했지만, 강의나 강연에서는 신기하게도 어느새 원래의 주제로 돌아와 있곤 했다. 여하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생의 가르침은 하나의 주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제들을 가로지르는 움직임 속에서, 혹은 주제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 가르침 가운데 가장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비인격적/비인칭적(impersonal)인 방식으로 인간적 개념들을 다시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학부에서 물리교육을 전공하고 20세기의 영미 분석철학 저작들에 심취해 있던 내게 대학원에 진학해 생경한 인문학 이론들(당시의 내게는 어떤 식으로도 도무지 ‘이론’처럼 여겨지지 않았고 현학적인 잡설로만 비쳤던)을 습득하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나는 주로 인문학 쪽 배경을 지닌 동년배 평론가들에 비해 현저히 그 분야의 독서량이 적다고 느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선생이 특유의 말투로 말씀하신 것을 흉내 내어 보면 이런 식이다. “야, 그걸 가지고 뭘 고민하냐, 이놈아. 무의식, 의지, 욕망 이런 걸 자꾸 개인적/인간적으로 생각하려 드니까 그 책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나의 무의식, 나의 의지, 나의 욕망, 나의 정념, 나의 지각, 나의 이데올로기, 나의 권력, 나의 행동 이런 게 다 개소리고 망상이라는 게 20세기 사상의 발견인 건데, 그걸 염두에 두지 않으니까 그렇지. 인간적 개념들을 다 비인칭적/비인격적으로 바꿔서, 인간적 소유격을 쓸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해 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선생이 쓰신 글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2003년 12월 11일~12일)에서 발표하신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휴머니즘」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나타나는 비인칭적이고 탈중심적인 시선에 대해 논한 이 글은 21세기 한국 영화비평의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실 무렵 선생은 직접 글을 타이핑해 쓰는 일을 좀 꺼리시곤 했다. 선생은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주요 내용을 메모한 노트를 들고 나를 앞에 앉혀 두시고는 흡사 ‘과외’를 하듯 강의를 하시며 그걸 녹음한 파일을 문서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정리한 문서 파일을 드리자, 이번엔 사무실 컴퓨터 앞에 나를 앉으라고 하시고는 바로 등 뒤에 앉아서 “음, 여기는 이렇게 고쳐라. 거기는 무슨 단어랑 무슨 단어 사이에 이렇게 써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을 고쳐 나가셨다. 말하자면 나는 선생의 비인격적/비인칭적인 자동기계가 되었던 셈이다. 2004년에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특별전에 맞춰 펴낸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에 수록된 선생의 글 「스트라우브-위예의 세계로의 입문」도 이런 식으로 해서 완성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읽고 나면 어떤 권위적인 작업 현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항상 다가가고 싶었던 어떤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이렇게 그 한복판에서 비인격적/비인칭적 자동기계가 되어 체험해 본다는 건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나중에 나는 임경용 미디어버스 사장과 《오큘로》를 창간하고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일본에서만 출간된 선생의 글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휴머니즘」을 웹사이트를 통해 2016년에 한국에 처음 공개했다. 내가 그 글을 타이핑한 당사자라 원고 파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께는 허락을 구했다기보다는 정중하게 ‘통보’를 드렸다. 내가 선생께 가한 작은 ‘복수’였다고나 할까? 선생은 전화로 무척 화를 내셨지만 글을 내리라고 하시지는 않았다. 이 글은 《오큘로》 웹사이트에 올린 것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이들이 읽은 글이다.


비평적인 것에 대하여


임재철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던 몇몇 분들과 연락하거나 만나게 되었다. 모두 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던 분들로 선생의 부고를 듣고 연락해 오셨다. 대부분은 딱히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아니다. 이런 분들과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전의 선생이 다른 이들에 대해 그러셨듯 주로 선생에 대해 험담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선생은 어떤 사람과 조금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들려주시곤 했다. 금정연 작가가 추도문에 썼듯, “국제정치, 축구, 미국과 프랑스와 일본의 대학 제도, 속류 사회학, 문학, 관계의 역학, 개인주의, 그리고 영화 조금”을 비롯해,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업 구상까지 말이다. 그런데 생전의 선생과 교류했던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며 서로 놀라게 되곤 한다. 선생은 사람들을 만나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모두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선생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이는 십중팔구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 된다. 선생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이곳에 저곳의 소식을 전하고 저곳에 이곳의 소식을 전하곤 했지만, 이곳과 저곳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하는 법은 없었다. 나는 선생의 말과 글보다도 바로 이 간극에서, 이 간극을 오가는 움직임에서 어떤 자세를 배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금정연의 말을 빌리자면,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준 건 지식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 방식을 비평적 자세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에 쓴 「영화비평의 ‘장소’에 관하여」라는 글을 꺼내 읽어보았다. 《영화언어》 2003년 겨울호에 실린 이 글은 내가 갓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쓴 것이다. 이 글에는 적잖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만 선생을 언급하는 부분은 없다. 딱히 선생이 쓰신 어떤 글을 인용하지도 않았다. 딱히 선생이 들려준 말을 참고해 쓴 부분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한예종 전문사 과정에서 선생의 영화비평워크숍 수업을 듣고, 선생이 프로그래머로 있던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에서 일하고, 선생이 대표로 있던 서울시네마테크에서 칼 드레이어 회고전 등을 꾸리는 일에 참여하는 등 선생과 함께 있으면서 배운 자세 내지는 방식이 강렬한 다짐처럼 글에 새겨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글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는 선생에 대한 조사(弔詞)를 그때 미리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제 나는 이 글을 하나의 헌사로서 선생께 드리고 싶다. 선생의 가르침대로,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적이 없는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비평가는 어디든 정주할 자리를 찾아 자신만의 집을 짓고 거기 안일하게 머물며 거짓 열광으로 들뜬 발화만을 내뱉는 대신, 장소들 사이를 오가며 먼 곳의 소식을 전하는 배달부가, 장소들을 움직이고 교통하게 만들고 중첩시키는 비평적 몽타주의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저 또 다른 장소를 찾아 총총히 길을 떠날 뿐이다.”


2026-04-19

정치적인 것의 장소


 ※ 이 글은 계간 사진잡지 《보스토크》에 연재하고 있는 '영화의 장소' 칼럼을 위해 쓴 것이다. (2026년 3월에 발간한 제53호에 수록.)


2025년 하반기에 전 세계 평단을 일제히 들뜨게 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블록버스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처음 보고 나서, 나는 오래전에 그의 다른 영화에 관해 썼던 글을 다시 찾아보았다. 이런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놓치면 영영 따라잡지 못하리라.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할라치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버리고 (…) 그 속도에 몸을 내맡긴 채 함께 달려가거나 혹은 도중에 뛰어내리면 그만인 것을. (…) 이 영화의 사운드는 마치 최면술사처럼 관객을 홀리는가 하면, 심장을 직접 가격하는 보이지 않는 망치가 되기도 한다.’ 2002년에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로맨틱 코미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고 쓴 이 구절들은 어쩐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쓴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앤더슨이 20년 동안 내놓은 열 편의 장편극영화 가운데 이 두 작품만큼 서로 닮아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볼 때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하나의 물음을 영화가 상영되는 162분 동안 줄곧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동시대의 아무리 뛰어난 연출자라도 쉬이 육박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솜씨로 조형된 이 의욕적인 액션물의 영화적 박력을 주기적으로 약화하는 성가신 장애물이 되어 갔다. 대체 영화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리는 어디(여야 마땅한 것)인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상식을 뛰어넘는 난폭한 집행으로 요즘 전 세계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ICE(이민세관단속국)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등 분명 트럼프 시대 미국의 정치적 풍경을 환기하는 설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딱히 정치적인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인 영화가 정치적 소재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다룬 영화라는 뜻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치적인 영화는 정치적 소재를 정치적이게끔 하는 (사르트르적 개념을 빌리자면) ‘상황’의 짜임을 구체적으로 감지하게 하는 영화다. 그런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앤더슨이 인종주의의 포스트-파시즘적 양상이라는 상황에 대해 갖는 관심은 <매드 맥스> 시리즈의 조지 밀러가 자원을 둘러싼 현대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해 갖는 관심, 혹은 <바쿠라우>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가 글로벌 사우스의 불균형 개발이라는 상황에 대해 갖는 관심만큼이나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영화는 동시대에 나올 수 있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액션물이다.

사실, 구체적 상황의 추상화는 액션영화의 필수적 조건이다. 본질적으로 액션영화는 심리적이기보다 생리적인 장르다. 상황의 구체성에 관객의 지적인 관심이 지나치게 쏠리게 되면 정작 생리적으로 그를 강타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종종 이 교훈을 망각하고 간헐적으로 마비 증세를 보이는 액션 연출에 대책 없이 빠져들곤 한다. <테넷>을 떠올려 보라.) 효과적인 액션영화의 서사가 종종 동화에 가까운 단순한 형태를 띠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에 지나치게 가중치를 두는 지적인 관객에게 액션영화의 정치성은 한심한 수준이거나 터무니없이 보수적이고 기껏해야 진보적인 풍미를 가미한 것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복합적이면서 생리적으로 박력 있는 액션영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한때 액션영화의 거장들은 정치적인 것의 자리를 직접적으로 영화 내부에 두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인 것을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하게 활성화하곤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영화의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 별다른 정치성을 띠지 않은 서사로 전개되는 영화가, 혹은 대단히 보수적이거나 심지어 파시즘적인 서사로 전개되는 영화가 놀랄 만큼 상황의 짜임을 복합적으로 환기하는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영화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리는 작품 내부에 있지 않고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있다. 이때 스크린은 정치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기호가 되는 대신 그 앞에 앉아 있는 관객을 정치적으로 자극하는 공명기가 된다. 이 경우, 상황의 짜임은 스크린 내부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감지될 수도 있다. 1960년대에 일본 청년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남성적 액션물인 임협영화가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자신들의 정동을 표명하는 대리물로 동시에 수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마키노 마사히로의 걸작 <일본협객전>의 서사를 꼼꼼히 따져보거나 다카쿠라 켄의 스타 이미지를 분석한다고 해서 말끔히 해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일본협객전>


모순적인 것의 경합이 없는 정치적 무대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적 상황의 짜임을 환기하는 액션영화의 정치적 효과는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일까? 비밀은 부정적인 것의 미적 과잉에 있다. 이 과잉의 일반적 도식은 다음과 같다. 권위주의, 여성 혐오, 배타적 인종주의 등의 부정성이 내면화된 단순한 인물을 설정한다. 그의 내면화된 부정적 성향은 일견 긍정적인 모럴로 전도되어 외면화하는데, 권위주의는 명예와 의리와 충성과 성실로, 여성 혐오는 순수함의 추구로, 배타적 인종주의는 악에 대한 증오로 나타나는 식이다. 그런데 그의 모럴에 도전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는 이를 고스란히 지켜내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액션의 계기는 마련되었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다. 그의 행동이 아무리 극단적일지라도 감독은 줄곧 그의 편에 머물러야 하는데, 다만 어디까지나 이 동행은 심정적인 공감이 아니라 시각적인 공모의 형태를 띤다. 그의 위엄을 강조하고, 그의 행위에 웅장함을 부여하며, 그의 주변을 빛과 어둠, 각양각색의 색채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공간으로 채워 나간다. 이러한 미적 과잉이 어느 순간 인물의 행동과 묘하게 어긋나며 생기는 지극히 도착적인 감각, 정말이지 영화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감각이야말로 관객을 자극하는 공명기의 핵심이다. 다만, 서투른 연출자가 이런 미적 과잉을 자신의 방법으로 택할 때, 그 결과는 우스꽝스러운 일차원적 패러디처럼 비치기 십상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영화적 참조물로 알려진 작품들 가운데 존 포드가 1956년에 내놓은 서부극 <수색자>는 이러한 미적 과잉이 정치적으로 작동하는 가장 탁월한 사례다. 이 영화는 서사적인 수준에서 거의 노골적으로 서부극의 영웅 신화를 비판하고 있는 <아파치 요새>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치적이지는 않다. (포드 자신은 이들 영화가 영웅 신화 비판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정치적인 것이 영화 내적으로 서사화되어 버린 데 대한 자기-부정은 아니었을까? 그가 추구한 이상적 서부극은 <웨건 마스터>처럼 그야말로 동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수색자>는 서사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복수극이다. 인디언에게 자신의 동생 부부를 잃고 어린 조카를 납치당한 주인공은 복수를 하고 조카를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고 다닌다. 피의 불순성을 참지 못하는 철저한 인종주의자인 그가 조카를 찾는 이유는 놀랍게도 죽이기 위해서다. 인디언과 몸을 섞고 사느니 그편이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연기한 존 웨인은 이 영화에서만큼 불길한 광기가 깃든 눈빛을 보여준 적이 없다. 혹은, 포드는 웨인의 눈빛을 이런 식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영화에서 그가 저지르는 모든 행동의 극단성은 바로 이 눈빛에 응축되어 있다. 하지만 포드의 영화는 전도된 모럴에 사로잡힌 인간의 수직적 위엄을 광활한 대지와 청명한 하늘의 수평적 엄정함으로 강조하고 부각하는 공모적 미적 과잉의 극치다. 나는 <수색자>가 특별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또는 그릇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전도된 모럴의 도착성을 미적 과잉을 통해 강렬하게 체험케 하는 정치적으로 불길한 영화라고는 생각한다.


<수색자>


1970년대 미국영화에 새 기운을 불어넣으며 이른바 ‘새로운 할리우드’에 대한 기대로 들뜨게 했던 당대의 젊은 감독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색자>의 열광적인 팬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비평가, 각본가, 그리고 감독이기도 한 폴 슈레이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에 그는 명백히 <수색자>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각본을 무려 네 편이나 집필했다. (흥미롭게도 다카쿠라 켄이 등장하는) 시드니 폴락의 <암흑가의 결투>,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 존 플린의 <롤링 썬더>, 그리고 슈레이더 자신이 직접 연출한 <하드코어>가 그것이다. 이들 영화에서 주인공은 야쿠자에게 납치당한 친구의 딸을 구하러 일본으로 가거나(<암흑가의 결투>), 십 대의 매춘부를 구하기 위해 매춘굴로 쳐들어가 갱들과 총격전을 벌이거나(<택시 드라이버>),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강도들을 찾아 복수하러 멕시코로 가거나(<롤링 썬더>), 실종된 후 포르노 업계로 흘러간 딸을 찾아 나선다(<하드코어>). 무엇보다, 슈레이더의 주인공들은 권위주의, 여성 혐오, 배타적 인종주의 등이 내면화된 단순한 인물들이며, 그들의 부정적 성향은 조금씩 다르게 긍정적으로 전도되어 외면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인물과 시각적으로 공모하면서 부정적인 것의 미적 과잉을 감행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변혁의 기운이 감돌았던 1960년대를 지나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도 보수적이고 파시즘적이라는 혐의를 받는 온갖 영화적 복수극이 넘쳐나던 시기에, 연출자들이 포드적 대담함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그래서 <택시 드라이버>의 경우처럼 브레송의 소매치기나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를 모델로 삼아 (포드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일인칭 내레이션까지 동원해 가며) 심리적 복합성을 추구하기도 했던 것일 터다. 이제 동화는 없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액션의 박력은 불가능하게 된다. 인물은 위엄을 잃고 그저 위험한 존재로만 비치게 된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것의 자리는 여전히 스크린 바깥에 놓인다.


<롤링 썬더>

<암흑가의 결투>


바야흐로 트럼프 시대에 만들어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포드의 영화를 그토록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유형의 인물은 아예 주인공의 자리를 잃는다. 이 영화에서 ICE의 대령인 숀 펜은 권위주의, 여성 혐오, 배타적 인종주의를 아무런 전도도 없이 고스란히 외면화하고 있다. 파워 엘리트들의 조직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하는 데 문제가 될 과거를 없애기 위해, 십수 년 전 흑인 여성과 관계해 생긴 딸을 찾아 죽이려 드는 그는 그저 풍자적 웃음거리로 비칠 뿐이다. 그는 앤더슨에게 시각적으로는 반감의 대상이고 심리적으로는 무지의 대상이다. 주인공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무장 투쟁 혁명 조직의 일원이었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대령의 딸을 자신의 딸이라 믿고 살아온 그는 애타게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가 지닌 부정성(마약 중독)은 모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포드나 슈레이더의 영화에서라면 그는 대령이 찾아다니는 복수의 대상인 악한에 불과했을 터다. 앤더슨의 각본은 액션영화에 최적화된 동화적 단순함을 띠고 있지만, 부정적 성향을 긍정적으로 전도해 외면화한 인물은 더는 거기에 없다. 보는 이를 홀리는 영화의 속도는 이제 정치적 올바름이 모순 없이 질주하는 속도가 된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은 스크린 내부로 들어가 동화의 교훈이 된다.

슈레이더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나서 페이스북에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만듦새는 A+급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나 숀 펜에게 일말의 공감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죽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감지되는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슈레이더의 말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이처럼 인물에 대한 공감이나 공모를 배제하지 않고서는 정치적 액션영화를 만드는 건 이제 정말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고. 스크린 바깥에 정치적인 것의 자리를 두고 관객을 얼떨떨하게 만들면서 내기를 거는 것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겠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동화 말고는 이제 액션영화의 정치적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2026-03-17

Notes on the Censorship-Effect of Film Festivals and K-movie Phenomenon


※ This text was originally published under the title "Discovering/Capturing Asian Cinema" in When East Meets East: The Emerging Asian Film Co-Production Landscape (Philip Cheah Ed., KOFIC, 2023). It was subsequently revised and published as a booklet titled A Phantom Without a Body Can Possess Any Body (Common Imprint X The Book Society, 2024).

Courtesy of the publisher, you can download the original PDF version of this booklet here.



“Only style or form can materialize the formless monsters (…) who roam in our social atmosphere.”

—Jean-Luc Godard’s France/tour/détour/deux/enfants (TV mini-series, 19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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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iel Dorsky, in his slim yet insightful book, Devotional Cinema, once wrote, “if Dante were writing the Inferno today, the first ring of Hell would be a large circular desk of newscasters.” As we envision the path leading to that ring, we can undoubtedly see a red carpet, teeming with cameramen and journalists. We might also catch a glimpse of a film market bustling with salespeople buying and selling movies somewhere beyond the carpet.

Film festivals held in Cannes, Berlin, and Venice receive unparalleled attention from film professionals worldwide. However, while Cannes and Berlin continue to attract industry people, the Venice Film Festival, which does not have a large film market, seems to have lost some of its appeal to the industry. In recent years, the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which takes place right after Venice, has emerged as the primary promotional venue for films.

Being officially selected by or invited to these film festivals is still considered a prestigious achievement, and winning an award in the main competition only adds to the honor. The screening and award-winning at these festivals, however, do not necessarily guarantee any artistic value, but rather allocate artistic (and sometimes commercial) function at best, which can be tentatively called “work-function.” In other words, the film does not gain any additional attributes that it did not have before. This is a fact that anyone can easily discern if they critically analyze the politics surrounding film festivals.

Therefore, what I have in mind here is not to answer questions such as “how could a bad film like this be invited to the Cannes Film Festival?” but to shed light on the subtle yet formidable censorship-effects generated by the work-function system of major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especially in relation to Asian cinema. This article will explore this issue by focusing on the cases of Japanese and Filipino cinema. Subsequently, it will reflect on the so-called K-movie phenomenon and the role of the work-function system in the landscape of Asian co-production and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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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since Kurosawa Akira’s Rashomon (1950) won the Golden Lion at the Venice Film Festival, putting Japanese cinema on the global map, Japan has been recognized as a leading nation in film art for a considerable time. More recently, Japanese cinema seemed to have re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as Hamaguchi Ryusuke's Wheel of Fortune and Fantasy (2021) and Drive My Car (2021) were awarded at the Berlin and Cannes successively and garnered widespread critical acclaim. 

Let us take a moment to look back at the situation of a decade ago. Around 2010, many journalists and critics often remarked that contemporary Japanese cinema fell short of its once esteemed status. At the time, they would often voice their dissatisfaction with contemporary Japanese cinema, claiming that it could not measure up to its predecessors. However, looking at the situation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away from their common and hackneyed criticisms, reveals that the issue at hand was not a decline in the quality of Japanese films, but rather a discrepancy that had increased between the function assigned to Asian films and that assigned to Japanese films in the global film culture or at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Historically, Japanese cinema has played a paradoxical role by positioning itself outside of Asian cinema while also playing a central role within it.

When examining the works of Abbas Kiarostami, Jia Zhangke, Apichatpong Weerasethakul, Tsai Ming-Liang, Lav Diaz, Hong Sang-soo, and other leading figures of contemporary Asian cinema since 1990s, the following is brought to our attention: there might be some differences, but to some degree they all make use of the effects of narratives and mise-en-scène that have been traditionally respected, while also employing a contemporary aesthetic that positions them within some unique “conceptual” framework. This is what could be considered the work-function of contemporary Asian cinema, which these directors are responsible for and have been encouraged by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Interestingly, higher international acclaim is often bestowed upon works that appear to achieve a “harmony” between the traditionally respected and the contemporary, rather than works that explicitly bring to the fore their conceptual framework. For instance, when it comes to the films made by the same director, it is true that Weerasethakul’s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is more widely embraced and accepted than his other films such as Syndromes and a Century (2006), and Lav Diaz’s Norte, the End of History (2013) more than others such as Evolution of a Filipino Family (2004).

However, when it comes to Japanese cinema, films that make use of a conceptual framework are exceedingly rare, and even if such films exist, they are often excluded from prestigious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because they are not in accordance with the work-function of Japanese cinema in the global film culture. As a result, even until the early 2010s, most Japanese films invited 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tend to be limited to expressive films based on highly manipulated mise-en-scène or excessive genre films such as the so-called “Asian Extreme.” In 2011, for instance, the Venice Film Festival, led by Marco Müller, invited Sono Sion’s Himizu, Tsukamoto Shinya’s Kotoko, and Shimizu Takashi’s Tormented, while the Cannes Film Festival, led by Thierry Frémaux, invited Kawase Naomi’s Hanezu, Miike Takashi’s Hara-Kiri: Death of a Samurai, and Sono Sion’s Guilty of Romance. In terms of the work-function imposed on Japanese cinema by the film festival circuit, it seems that it was trapped in a kind of double-bind, where it must produce cutting-edge contemporary dramas or genre films without solely relying on aesthetic trends utilising a conceptual framework.

In the 21st century, Japanese cinema was expected to take on the responsibility of filling the void left by other modernised Asian art films and of creating a new center again by being an outsider inside Asian cinema. However, even this function was being threatened by the works of Korean directors such as Bong Joon-ho and Park Chan-wook. Among those who have attempted to escape from the double-bind were Kurosawa Kiyoshi [via Bright Future (2002), Retribution (2006)], Zeze Takahisa [via A Gap in the Skin (2004), Heaven’s Story (2010)], Manda Kunitoshi [via Unloved (2001), Seppun (2007)], Suwa Nobuhiro [via M/Other (1999)], Aoyama Shinji [via Eureka (2000)]; and others. Their films, however, unlike those “Japanesery” films of Kore-eda Hirokazu or Kawase Naomi, are still not fully appreciated or understood in foreign context outside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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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moment Hamaguchi incorporated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as a crucial element into the fictional world of Asako I & II (2018), he began to wear his ambition on his sleeve towards making a contemporary Japanese film “universally acceptable.” In Drive My Car, he eventually succeeded in making a universal drama that can be accepted without requiring specific knowledge of the politics, economics, society, and culture of Japan. How long has it been since we watched a film like this, that is, a contemporary Japanese film set in contemporary Japan that can be widely accepted regardless of contemporary Japan?

Even before going to see Drive My Car, I felt somewhat uneasy upon seeing a promotional still photograph of a red car standing against a snowy backdrop. When I saw Kafuku and Misaki heading towards Hokkaido, with a sudden shift, I started to regard this film with a rather skeptical perspective. (In Shinkai Makoto's Suzume (2022), which was nominated in the 2023 Berlinale competition, we once again encounter a red car heading towards the land of trauma: Sendai, a place associated with memories of the earthquake.) At that moment, the climax feels nothing short of predestined, in which they share their traumas and embrace each other while overlooking the ruins of Misaki's home destroyed by a landslide. Why did Hamaguchi choose to take such a predictable path? At some point, it occurred to me that he might have had the ambition to be not only an internationally acclaimed filmmaker but also the successor to the tradition of Japanese cinema, which had come to a halt at the end of the 20th century and was starting anew.

To achieve such ambition, however, he must above all break free from the double-bind imposed on Japanese cinema within the global arthouse film culture. How can a Japanese film director create a cutting-edge contemporary drama or genre film by solely relying on aesthetic trends utilising a conceptual framework? To escape from this situation, he must make a film like Bong Joon-ho, even if or while he pursues the aesthetics of Abbas Kiarostami or Apichatpong Weerasethakul.

Why does Japanese cinema face such a situation in the 21st century? The reason is as follows: making Japanese films used to mean leading contemporary aesthetics and styles through creating universal dramas or genre films, represented by figures such as Kurosawa Akira of Rashomon and Seven Samurai (1954), Oshima Nagisa of Death by Hanging (1968) and The Man Who Left His Will on Film (1970), and Kitano Takeshi of Sonatine (1993) and Hanabi (1997), but the halcyon era of Japanese cinema had faded away after Kitano’s downturn. Nevertheless, global, and particularly Western, arthouse networks continue to demand Japanese films that seemed to belong to that era. However, moving on from this double-bind is not easy, and as a result, Japanese cinema in the 21st century became a kind of “local cinema,” with directors like Kore-eda Hirokazu and Kawase Naomi making “Japanesery” films that appealed to a small number of overseas arthouse fans.

Kurosawa Kiyoshi is a virtuosic filmmaker who has revitalised popular genres in highly unique ways, from his early soft-porn works such as Kandagawa Wars (1983) and The Excitement of the Do-Re-Mi-Fa Girl (1985). However, outside Japan, his films still seem to be accepted with some suspicion or indifference and remain in an obscure position, except for a few works like Cure (1997) and Tokyo Sonata (2008). It implies a great deal that Kurosawa’s The Wife of a Spy, which seemed to mark a departure from the double-bind and won the Silver Lion at the 2020 Venice Film Festival, was co-written by Hamag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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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ensorship-effect of the work-function system, operated by the film festival circuit, has a much more pervasive impact on cinema today than traditional censorship systems aimed at controlling excessive depictions of violence or sex, or explicitly political comments. Such impact is far-reaching, regulating a wide range of global arthouse films all around the world. This is justified by the politics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that divide and allocate, or in Foucaudian terms, “normalise” categories of aesthetic work-functions. It might be a misconception to assume that the division and allocation of aesthetic work-functions is exclusively carried out by programmers or curators. To judge which film has the potential to be accepted “internationally” and decide which festivals they should be premiered at falls under the purview of sales agents, who sometimes are even involved from the production stage. Therefore, to discuss the politics of film festivals without considering their function would be pointless.

If we look beyond major film festivals like Cannes, Berlin, Venice, and Toronto, there are other intermediate festivals where the programmers’ tastes and their personal networks with individual directors or specific countries have a much greater importance, such as Rotterdam, Vienna, and others.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in Korea has been striving to establish itself as a festival that embodies the spirit of the latter while struggling to earn a place among the former. To discuss how the Busan’s “cross-eyed” attitude and its censorship-effect has distorted and normalised Korean independent cinema over the past two decades, it would require a separate article. On the other hand, even within large film festivals, there are independent sections that include films distinct or pushed out from the official selections, such as the Director's Fortnight at Cannes and the Forum at the Berlinale, as well as official sections that showcase more experimental films, such as Orizzonti at Venice or Wavelengths at Toronto. However, these complementary sections only re-divide and re-allocate the work-functions that were already divided and allocated through the main sections of the “A” festivals, and are in fact part of a larger system.

In today's world, numerous film festivals take place all around the globe, and some have dubbed this phenomenon the “Festival Galaxy.” However, there is no galaxy, but rather only the feudalism. Then what are the films outside the overall domination of work-function system operated by the feudalistic festival circuit that assigns artistic or commercial functions to individual films? These might be as follows:

A. Films for the domestic consumption in each country that do not require immediate international recognition.

B. Films circulated within the enthusiast community through specialised fan websites, festivals, events, which sometimes operate a sort of quasi or “dark” work-function systems. The most extreme example would be pornography.

C. Films that strongly resist to accept work-function assigned to national cinema.

The films in the third category are often seriously damaged by the censorship-effect of the festival circuit. The fluctuation of the status of Philippine cinema in the festival circuit over the past two decades is a representativ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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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function assigned to Philippine cinema can be traced back to the socially engaged realism stamped by the West mainly on the films of Lino Brocka in the 1970s. It is significant that Brillante Mendoza’s Serbis (2008) was the first Filipino film to be invited to the main competition of the Cannes Film Festival since Lino Brocka’s Bayan Ko competed in 1984. In 2009, Mendoza won the Best Director award at Cannes for Kinatay

Since then, the aesthetics once referred to as “real-time cinema,” which he first attempted in Manoro (2006) and established in Foster Child (2007), led to many imitators in the Philippines. While such Filipino films were first assigned their work-function on an international level, the task of assigning work-function to those who employ more conceptual and contemporary aesthetics, such as Lav Diaz, Raya Martin, John Torres, and Khavn de la Cruz was left to the re-division/re-allocation systems such as Orizzonti at Venice, Directors’ Fortnight at Cannes, or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 and others. And those films that had not been assigned their work-function in such systems were passed on to even smaller festivals or had to settle for limited showcases inside the Philippines.

Especially in the case of artistic and auteur-driven Filipino films, unless the director was already established through “A” festivals like Cannes, there was almost no chance to attract the attention of international sales agents. As a result, those hoping that their films would not be confined to the domestic showcase had to cling desperately to the hierarchical official work-function systems operated by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This situation applies similarly to most films from Central Asia, Southeast Asia, and the Middle East. The films from these regions have mostly failed to be assigned a work-function that can be recognised internationally. As a result, within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circuit, Central Asian films are judged against the work-function of Chinese or Russian cinema, Southeast Asian films are judged against that of Taiwanese or Thai cinema, and Middle Eastern films are judged against that of Iranian cinema. This situation continues to persist even today, where many Asian films are being evaluated (and excluded) based on a bizarre system of comparison to those from different cultural and linguistic backgrounds.

This kind of stringency forces Asian filmmakers to conform to the work-function of their national cinema as regulated by the festival circuit, while also self-censoring to exclude anything that deviates from it. It is significant that even during the period when Philippine cinema was rising as a new “New Wave” of the 21st century, Sherad Anthony Sanchez's groundbreaking film, Imburnal (literally translated as “Sewer,” 2009), was rejected not only by major festivals but also by many adventurous festivals, as it was the kind of film that refused to conform to the familiar work-function of Philippine cinema.


6

In his Aesthetic Theory, Theodor W. Adorno argued the following: “modern art is questionable not when it goes too far—as the cliché runs—but when it does not go far enough, which is the point at which works falter out of a lack of internal consistency. Only works that expose themselves to every risk have the chance of living on, not those that out of fear of the ephemeral cast their lot with the past.” However, if that is the case, cinema can never be modern art, or films that are willing to “go far” must risk just simply “living on” without proper recognition. This situation could be even more harshly felt by Asian filmmakers.

For filmmakers working within any national cinema that has already been historically assigned one or more work-functions, their allowable acrobatics are limited to discovering an untrodden field within the confines of the work-functions regulated by the festival circuit that holds international influence, without deviating from them. If they fail to discover it, they will soon be labeled as mere epigones or second-rate filmmakers. However, as the number of untrodden fields decreases, internationl attention to the national cinema diminishes, except for the films of the “pioneers” who were the first to contribute to a national cinema being assigned work-functions. 

Since the 1960s, Western film experts have assigned work-functions to non-European films under the cloak of the “New Wave,” mobilising rhetoric of novelty, innovation, and discovery. Today, their logic is being amplified and reproduced at an even faster pace through the work-function division/allocation system that is widespread across film festivals worldwide. Even more problematic is the situation after the decline of such New Wave phenomena. What was once seen as the only viable aesthetic for entering the festival circuit now becomes something to be avoided at all costs. The work-functions that were once assigned to national cinemas are now paradoxically subject to censorship-effect. In the case of national cinemas, such as Japanese, (now defunct) Hong Kong, Indian, and recent Korean cinema, which are ambiguously recognised as a genre themselves, the situation may be different.

Perhaps Adorno was right after all. A genuinely modern film may not merely reject outdated styles or work-functions, but rather renounce the entire system of division and allocation. As a result, it must perform daring acrobatics that run the risk of being deemed unacceptable by the establishment. They are akin to a dance with death, a high-wire act, teetering on the edge of the acceptable, as exemplified by Ritwik Ghatak's masterpiece Reason, Debate, and a Story (1974), which could be considered a film that he risked his life to make. He once referred to Indian films made by directors like Satyajit Ray as “clinically disinfected realism of poverty.” Though it is difficult to agree with his criticism on Ray, we can somewhat understand his remarks as pointing out the work-function of Indian cinema that had been approved in the global arthouse film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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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often said that Korean cinema is receiving unprecedented attention today, but the truth is that critical analysis of Korean cinema remains extremely challenging, and insightful discussions are rare. Above all, this is because the very existence of Korean cinema as an object is quite obscure and problematic. If such a claim sounds absurd, then consider the following two questions before thinking about it again. Among the so-called specific characteristics of Korean cinema promoted or loudly proclaimed by those who tout the rise of K-movie, what is there in them that hold more significance than mere advertising copy? The more fundamental second question is whether there really are any specific characteristics of Korean cinema.

In an era where the film industry is heavily influenced by transnational capital, a naive technical definition such as “a collection of films mainly made by directors or producers with Korean nationality using capital invested in Korea” is almost useless. Such a technical definition can only be used for futile categorisation. For instance, while Kore-eda Hirokazu’s Broker (2022), produced by ZIP Cinema and distributed by CJ ENM, is considered as a Korean film, Bong Joon-ho’s Okja (2017), which was produced and financed by Netflix, is excluded from this category.

Some may argue against the above claim, saying that there is something unique in the films of Hong Sang-soo, Bong Joon-ho, Lee Chang-dong, and Park Chan-wook. It is understandable.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films and the provisional construct known as “Korean cinema” appear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at of John Ford’s films with Hollywood, Jean Renoir’s with French cinema, Ozu Yasujiro’s with Japanese cinema, or Guru Dutt’s with Bollywood. Although films by Ford, Renoir, Ozu, and Dutt are often cited as examples of specific characteristics of the collective modes of representation that presumably gave rise to them, they are also recognised as unique exceptions that challenge the consistency of these modes. In contrast, Korean cinema associated with the films of Hong, Bong, Lee, and Park has never historically produced any collective modes of representation. To be sure, their films are not products derived from Korean cinema, nor can they be merely regarded as exceptions to Korean cinema; they are only labeled collectively as Korean cinema or K-movie. In other words, Korean cinema is a phantom name, or the name of a phantom. Kim Ki-young, whom Bong often mentioned with admiration, assimilated the inherent abjectness of Korean cinema, which had long drifted as a phantom without any concrete form, and turned it into his own idiosyncratic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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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Kwon-taek's Chunhyang (2000) was the first Korean film to be nominated for the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At the onset of the 21st century, he conducted an exploration of the possibility of Korean cinema primarily regarding its form. However, his experiment did not bring about any changes in the Korean film industry. Like Bae Yong-gyun’s The People in White (1995), his film was exceptional but remained isolated from other films of the New Korean Cinema period. Both films were screened at Cannes, but neither was assigned any work-function related to Korean cinema.

In retrospect, these films were made and released during a period of major industrial restructuring in the Korean film industry. This was a time when the desire and aspiration to transplant not only the forms derived from various foreign films but also the post-1970s Hollywood-like system into Chungmuro (the Korean equivalent of Hollywood) reached its peak. This was exemplified by the release of Shiri (1999), promoted as the “Korean-style blockbuster.” If Im Kwon-taek’s Seopyeonje (1993), which drew an audience over one million in Seoul alone, symbolised the height of the encounter between art and business within the old system of Chungmuro, Bong Joon-ho’s The Host (2006), which drew an audience over 13 million nationwide, symbolised the summit of the encounter between art and industry within the emerging new system of K-movie. It was through this another “Korean-style blockbuster,” titled Gwoemul (Monster) in Korean, that Bong received his first invitation to Cannes. This film, along with Kim Ki-duk’s Spring, Summer, Fall, Winter... and Spring (2003) and Park Chan-wook's Oldboy (2003), was one of the films that contributed to Korean cinema being assigned a work-function within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circuit.

In 2019, the year that marked the 100th anniversary of Korean cinema, Bong Joon-ho’s seventh feature film, Parasite, became the first Korean film to win the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It had been 19 years since Chunhyang was nominated for the Cannes competition. Since its premiere at Cannes, numerous articles, reviews, and interviews were done. Many foreign critics have marveled at the film’s free and seamless flow between various genres. To those familiar with Korean films, as well as TV programs and YouTube content from Korea, such reactions may seem somewhat baffling, for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genre hybridity or genre switching is the default setting of Korean popular culture forms. 

In some ways, we can say that while there may not be a uniquely Korean cinema, there is a uniquely Korean hybridization or switching between genres. This phantomlike charateristic has been prevalent in Korean films and was once often referred to in a derogatory sense as Chungmuro yeonghwa or Banghwa. It runs so deep that it can be found in most films from past to present. Even today, it is considered a selling point for Korean films in terms of appealing to audience. However, in most cases, it is not intentional but rather the byproduct of abortive attempt to construct a film with coherent structure while appealing to a wide audience.

For instance, films like the two-part Along with the Gods series (2017/2018), both of which surpassed 10 million viewers, and Extreme Job, which drew 16 million viewers upon its release in early 2019, also exhibit a similar genre-bending characteristic as Parasite, but often jarringly switched between them. However, these films lack Bong’s delicate cinematic tools and do not even have anything like Kim Ki-young’s excessively grotesque strength, so they remain just jumbled and indeterminate, not going any further. If the Along with the Gods series and Extreme Job demonstrate the persistence of the hybridity of Korean cinema once derisively referred to as Chungmuro yeonghwa, and Kim’s films excessively push this hybridity to the point of overkill and formalise it in a very local way, Parasite turns this formalised hybridity into a “genre” internationally acceptable in contemporary global film culture. 

To many foreign critics, the “tooling” that Bong performs to handle all sorts of incongruity is seamless, and instead what stands out more are the various genres that serve as the target of that tooling and the extraordinary genre that emerges through it. As a journalist put it, “Bong Joon-ho has become a genre unto himself.” The reason why such characteristics are not easily perceived by Koreans, rather ironically, might be because they have become “immune” to the inconsistent and hybrid elements through their periodic exposure to Korean cinema as their cultural “Host.” Anyway, to paraphrase that journalist’s words, Korean cinema has finally become a genre unto itself. In other words, a phantom name has finally become a genre unto itself. But a phantom has no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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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Granny (2014) is the third feature film by Hwang Dong-hyuk, known for the Netflix series, Squid Game (2021). It was distributed by CJ Entertainment and attracted over 8.6 million viewers in Korea. It has been remade in China, Vietnam, Japan, Thailand, Indonesia, the Philippines, and India so far, and in 2022, a Mexican remake was also released. While some of the remakes were co-produced with CJ or its related companies, none of them were released or showcased in Korea, except for the Vietnamese version, Sweet 20 (2015), which was screened at the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in 2016.

CJ is one of the major companies for co-productions between Korea and other Asian countries, but the results of these collaborations are rarely shown to the Korean audience, partly due to the peculiar racism and prejudice that some Koreans exhibit towards other Asian countries (excepting Japan and Chinese-speaking countries). As a result, these films have difficulty gaining acceptance in the Korean domestic market. In addition, there is a lack of cultural facilities in Korea that cater to foreign residents, and despite the estimated tens of thousands of immigrants from Southeast Asia living in Korea, there is a complete absence of film distribution networks targeting them.

CJ is not targeting the global market outside Asia through these co-productions nor investing in them for that purpose. The primary goal of these co-productions is only to produce “films for domestic consumption in each country that do not require immediate international recognition,” as I mentioned earlier. The co-produced films, localised for each country, do not have any work-function in the global film culture and any significant impact on it. In the case of Korea-Southeast Asia co-productions, the films deployed are often Korean movies optimised as “items” or “contents” suited for “one-source multi-use.” A phantom without a body can possess any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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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not only assigns work-functions to Asian films but also exercises a censorship-effect upon them. The work-functions assigned by BIFF are limited to the film festivals held in Korea and Asian countries, with few exceptions such as the Berlinale Forum or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 Its censorship-effect extends beyond simply excluding films without distinctive qualities and applies to more experimental films. Lav Diaz’s films, for instance, were not showcased in BIFF before Norte, the End of History was invited to the Un Certain Regard section at Cannes in 2013. However, since Diaz’s films had been consistently accepted and showcased at Venice’s Orizzonti, Rotterdam, and other respected festivals before Norte was invited to Cannes, in this case, BIFF’s censorship-effect had a limited impact solely on Korean cinephiles.

Furthermore, the system in which BIFF exercises a censorship-effect and divides/allocates work-functions is not autonomous and reproduces the problematic systems of other major film festivals such as Cannes, Venice, and Berlin. In other words, while BIFF claims to be a platform for cultural exchange among Asian films and filmmakers, in reality, it tends to select and showcase Korean films that can be accepted at major Western film festivals, and mainly promote Asian films that have already been approved and assigned a work-function at those festivals. There is a handy tip well-known among Korean cinephiles who visit BIFF every year: just skip the Asian films that have their world premiere in Busan. I suspect that this exclusionary attitude could be a byproduct of Busan’s “cross-eyed” policy that I mentioned earlier.


EXIT

It is undeniable that CJ ENM and BIFF have been major players in the international growth of K-movie. However, as we have seen earlier, despite claiming collaboration with Asian cinema, they have often utilised and sometimes even excluded it from the main stage. Exploring the new possibility of collaborations between Korea and Asian countries should begin with reflecting on how these exclusionary mechanisms operate. The three-year hiatus caused by the COVID-19 pandemic has forced us to take time for reflection on this matter. Was this period a dawn or a sunset? Concerning Korean cinema, I hope that it was a sunset. The reason is as Claude Levi-Strauss wrote in Tristes Tropiques; dawn is simply the day’s beginning, but sunset the day run through again, but 50 times as fast.

2026-01-24

세 가지 시대: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

 

※ 배급사 엠앤엠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고전 및 예술영화 전문 OTT 콜렉티오(https://collectio.co.kr)에서 "유운성의 애프터크리틱"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비평을 연재하게 되었다. 2025년 1월부터 대략 3개월마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원고지 100~150매 분량의 글을 공개할 예정이다. 첫 번째 글은 "세 가지 시대: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다. 이 글은 2024년 12월 15일 오후 4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클로즈 유어 아이즈> 상영 후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는 콜렉티오에서 볼 수 있으며, 해당 영화 메뉴 하단의 문서 아이콘(아래 사진)을 누르면 글을 볼 수 있다. 단, 구독자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한 부분에서 우리는 찰리 채플린의 <살인광 시대>와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의 포스터가 벽에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본다(그림 1). 극 중 주인공인 영화감독 미겔 가라이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 편집자인 막스의 집에서다. 왜 이 두 영화의 포스터일까? 무심코 보아 넘겨도 좋을 소품이라기엔 지나치게 눈에 띈다. 여기서 시작해 보자.


그림 1

지독한 과작의 작가 빅토르 에리세가 <햇빛 속의 모과나무> 이후 무려 31년 만에 발표한 신작에는 실로 채플린적인 단순함이 있다. 채플린 영화의 수수께끼는 플롯이나 형식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를 대표하는 떠돌이 캐릭터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도 일면적이다. 영화의 모든 측면에서 그토록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채플린의 영화가 대단히 복합적인 영화적 효과를 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수수께끼다. 이걸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다. 심지어 채플린이 떠돌이 캐릭터를 버리고 연쇄 살인범으로 등장하는 <살인광 시대> 같은 경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이유로, 채플린의 영화는 비평적 모험의 극지極地다. 레이의 영화, 특히 <그들은 밤에 산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의 영화는 일종의 감정적 거울이다. 감정과 판단은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레이의 영화는 비평적 판단의 궁지窮地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마지막 부분, 폐관한 어느 극장에서 미완의 영화 <작별의 눈빛>이 스크린에 상영될 때, 스크린 앞 객석에 앉아 있는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감응할 터다. 그 감응은 <작별의 눈빛>이라는 영화가 없었다면 아예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만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것은 미완의 영화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작별의 눈빛>은 또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관객으로 호명한다. 영화 속 영화관의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클로즈 유어 아이즈>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영화 밖 영화관의 우리 또한 관객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영화와 감정적으로 관계하는 관객(성)은 이렇게 이중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감응이 가능할까?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라는 점에 주목하자. 감응 여부는 전적으로 내기에 걸려 있다. 여기서 에리세의 영화는 어두운 극장의 스크린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라는 단순한 기제로 환원된다. 감정은 그들 사이에 살았다. 그런데, 여전히? 이 질문으로 향하는 동안, 에리세의 영화는 채플린적인 단순함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리세는 이만큼이나 단순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동안 온갖 상념에 잠긴 육체가 급기야 부풀어 터질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를. 

<그들은 밤에 산다>는 1950년대에 10대나 20대 시절을 보낸 영화광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감정의 영화다. 스무 살에 이 영화를 보았던 평론가 장 두셰는 당시의 시네필에게는 두 개의 중요한 극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니콜라스 레이가 바로 그 두 개의 극이었다. 두셰는 덧붙인다. 니콜라스 레이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지성을 상쇄하는 감정이었다고. 사정은 에리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을 터다. 실제로 <그들은 밤에 산다>는 에리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이며, 1986년에 그는 『니콜라스 레이와 그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그 무렵에 니콜라스 레이 회고전을 프로그래밍하기도 했다. 대단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영화의 역사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에리세를 고다르와 비교해 볼 수도 있는데, 둘 모두 개인적이라고는 해도 <영화의 역사(들)>에서 고다르의 방식이 매우 로셀리니적이라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에리세의 방식은 매우 레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2


<살인광 시대>와 <그들은 밤에 산다>의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작별의 눈빛>이라는 영화 속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1947년으로 설정된 게 결코 임의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에리세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첫 숏에서부터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연도다(그림 2). 이때 우리는 이것이 영화 속 영화의 숏이라는 것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1947년은 어떤 해인가? 1947년은 바로 채플린의 <살인광 시대>가 개봉된 해이고, 니콜라스 레이의 <그들은 밤에 산다>가 완성되어 첫 시사를 했던 해다. (다만, 레이의 영화는 완성되고 2년이 지나서야 개봉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에리세가 1947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공식적인 영화사에서라면 1947년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닥쳐 반미활동조사위원회가 할리우드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겠다며 청문회를 시작한 해로 알려져 있다. 채플린도 이 위원회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다.

2006년에 발표한 <라 모르트 루즈>라는 단편에서 에리세는 자신이 기억하는 첫 영화 관람의 경험은 1946년에 산세바스티안 소재의 쿠르살 영화관에서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가 본 것은 바질 래스본 주연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주홍 발톱>이다. 평범한 우체부가 연쇄 살인범임이 밝혀지는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에리세는 현실에서 우체부만 보면 두려움에 떨고 편지를 죽음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그의 데뷔작 <벌집의 정령>에서 이미 뚜렷이 나타났던 지극히 에리세적인 관객의 형상, 영화와 매우 감정적인 관계를 맺는 관객의 형상이다. 그리고 1946년과 1947년, 지나치게 인접해 있는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의 시간적 라벨들.

조금 느슨하게 생각해 보자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일종의 암호처럼 출현하는 1947년이라는 해는 이 영화가 무척이나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려 보이고 있는 영화의 세 가지 시대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상징적 명명은 아닐까? 분명 여기서 1947년이라는 해는 영화의 첫 번째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의미에서 특권화되고 있다. 이 첫 번째 시대의 특징은 관객이 영화와 감정적으로 실존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1940년생으로 이 시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그래서 간신히 첫 번째 시대를 통과할 수 있었던 에리세의 개인적 체험은 얼마간 <벌집의 정령>이나 <남쪽> 같은 영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영화의 두 번째 시대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첫 번째 시대의 경험을 스크린에 불러내곤 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시대가 끝나고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된 것은 언제인가? 두 번째 시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영화의 세 번째 시대에 발표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에리세는 이것을 꽤 직접적인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어지는 글은 콜렉티오에서 열람 가능]


2026-01-19

사라짐의 즐거움

 

※ 아래 글은 대전창작센터에서 열린 전시 《메신저의 신비한 결속》(한주옥 기획, 2024.3.26~5.19)에 대한 것으로, 전시 종료 이후에 출간된 동명의 도록에 수록되었다. 참고용 도판이나 사진 없이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의 해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비밀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베일을 벗기거나 해체함으로써가 아니라 오로지 비밀을 비밀로 수호함으로써 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역설이다. 대부분의 그럴듯한 역설처럼 이 역설 또한 철저히 논리적인 생각의 소산이다. 비밀은 정의상 무언가를 감춘 것이다. 감춘 것이 드러나 버리는 순간 비밀은 더는 비밀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처럼 감춘 것이 드러날 때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여기서 앎의 대상은 바로 그 ‘것’이다. 감춰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무엇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비밀에 대해서라면 앎의 대상은 감춤이라는 행위 자체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즉, 비밀을 안다는 것은 감춤을 아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하이데거에게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감추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감추는 이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만일 하이데거가 대답을 망설인다면 미셸 세르의 『천사들의 전설』을 참고해 보라. 세르의 천사들이야말로 바로 그런 존재들이니 말이다.


2024년 어느 봄날, 대전창작센터에서 열린 전시 《메신저의 신비한 결속》을 보고 돌아온 후, 한동안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근사한 도판이 하나씩 나오는 세르의 큼직한 책을 읽으며 전시의 이모저모를 곱씹어보곤 했다. 일단 이 전시의 기획자인 한주옥 스스로가 이 전시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책으로 꼽기도 했고, 전시장에 비치된 리플릿에 수록된 기획의 말에서도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발신하는 미묘한 메시지들을 “그토록 정확하고 정교하고 더없이 훌륭하게 코드화된 언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전시에 초청된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느슨하게 잇는 모종의 연상적 단서들이 세르의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적 모티브들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이때 리플릿에 실린 전시 안내도는 일종의 암호화된 지도로, 세르의 책은 암호를 푸는 데 꼭 필요한 키워드 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즉, 이 전시는 실제로 관람하면서 얻는 경험만큼이나 관람 이후의 세심한 탐색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또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꾀까다로운 기획자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나는 지금 1층 전시실 벽에 걸려 있던 이빈소연의 그림 <들켰다>를 떠올린다. 그리고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이 그림을 다시 본다.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림 아래쪽의 문어 한 마리, 중앙의 열린 스티로폼 상자에서 튀어나와 흡사 이중나선처럼 꼬여 위로 솟아 있는 두 개의 문어 다리, 그리고 그 사이로 노란색 밴딩끈 같은 것이 위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다소 깔끄러운 느낌을 주었던 자신의 고모가 이따금 보내주는 해산물 택배 스티로폼 상자에 들어 있는 문어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밝혀 두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전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세르의 책을 지침 삼아 들여다보면 그림 위쪽 스티로폼 뚜껑 부분에 그려진 날개 모양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이 스티로폼 상자는 무언가를 배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도 생각이 미친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 그림의 영어 제목은 한글 제목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카두세우스(Caduceus)’인데, 이는 사실 헤르메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의 이름이다.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올라가는 형상의 이 지팡이 끝에는 날개 모양 장식이 있다. 즉, 그림의 밴딩끈과 두 개의 문어 다리, 그리고 스티로폼 상자에 그려진 날개를 조합하면 이 지팡이와 유사한 형상이 떠오르는 식이다. (들켰다!)

이빈소연의 그림과 같은 공간에 놓인 이유경의 <자화상> 연작은 작가 앞으로 온 송장이 붙은 택배를 전시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연질 PVC와 글리터 같은 재료로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형상화한 <사랑의 단상: 파편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인공 털을 소재로 제작해 설치한 날개깃 형상의 <커넥팅...(2)>까지, 나는 이빈소연의 그림에서 제시된 모티브들이 이유경의 설치 작업에서 연상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헤르메스는 문어 다리와 밴딩끈으로 세속화된 카두세우스로 암시되거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장치를 형상화한 버블 랩 속으로 녹아든다. 한주옥이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와 전시 제목으로 활용한 ‘신비한 결속’은 바로 이런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지 싶다.

신비는 어떤 대상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들이 은밀히 서로 결속되는 과정에서 감지되는 것이기에 언제나 대상들에 외재적이다. 특히 그 대상들이 범속한 것일수록 결속의 신비함은 배가된다. 이를테면 이빈소연의 <따르르릉>과 이유경의 <핑크 매터>에 공통적으로 활용된 (인조) 머리카락 같은 소재처럼 말이다. 여기엔 신비의 유물론이 있다. 

 

문득, 『신비한 결속』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키냐르가 소설의 주인공 클레르를 우편집배원과 정신적 친연 관계에 있는 존재로 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우편집배원은 그녀의 친구였다. 집배원은 맞바람을 무릅쓰며 모랫길과 황야의 진창에서 [자전거] 페달 밟기가 너무 힘들면, 마지막 편지 배달을 그녀에게 일임했다.” 기획자 한주옥이 동등하게 전시의 중요한 참조물로 삼고 있는 두 권의 책, 키냐르의 소설과 세르의 철학적 대화집을 신비롭게 결속하는 은밀한 모티브가 있다면 바로 배달(부)이다. 키냐르의 소설 도입부에서, 결혼식 참석차 브르타뉴의 바닷가 고향을 찾은 클레르가 과거 연인이었던 시몽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은 마을의 우편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옛 친구 파비엔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우편집배원은 어떤 형상인가? 그는 세르의 책이 오롯이 헌사된 특권적 존재인 천사의 세속적 형상이다. 세르에게 천사는 무엇보다 소식을 전하는 존재, 즉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하는 가브리엘이나 헤르메스적 메신저로 현현하는 존재다. 천사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물론 날개로 이동한다. 세르는 자크 타티의 영화 <축제일>을 떠올리면서 세속적 천사인 우편집배원의 날개는 바로 자전거라고 말한다. 클레르에게 시몽의 소식을 고지한 파비엔 역시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이처럼 소식을 전하고 정작 자신은 사라지는 것, 그럼으로써 오롯이 소식 자체가 육화─마리아의 수태, 클레르와 시몽의 결속─의 시간에 터를 잡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말의 대리인으로서 메신저의 속성이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소식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아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배달하는 편지를 열어보는 우편집배원은 타락한 천사임이 분명하니 말이다.

세르는 말의 대리인이자 메신저로서 천사의 형상을 예시하기 위해 ‘préposé’라는 프랑스어 단어에서 온갖 가능한 함의들을 끌어낸다. 누군가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거나 누군가를 직책에 임명한다는 뜻을 지닌 동사 ‘préposer’로부터 나온 이 말은 임무나 직책을 맡은 사람, 즉 담당자라는 뜻을 지니지만 한편으로는 대리인 그리고 우편집배원이라는 뜻도 된다. 그런가 하면, ‘préposé’라는 단어를 이루는 의미소를 곧이곧대로 따라가 보면 무언가의 앞에(pré) 놓인(posé) 것이 되는데, 이로부터 세르는 천사란 전치사(préposition)적 존재라는 판단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렇게 생각해본다. 천사는 주체의 지위를 띠는 명사적 존재도 아니고 특정한 활동과 결부된 동사적 존재도 아니며 어떤 특성이나 성질을 띠는 형용사적 또는 부사적 존재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다른 존재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만 가까스로 존재하는 일종의 (허구적) 매질로서의 에테르와 다르지 않다.


다시, 대전창작센터에서 전시를 보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날 전시장을 나온 이후 지금까지 이것저것 읽어보고 반추하며 얻은 일말의 생각 조각들을 들고 그 시간으로 가만히 돌아가 보는 것이다. 날개깃 형상의 설치물이 벽면에 부착된 계단을 천천히 밟으며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정면과 좌우로 각기 다른 전시실로 통하는 세 개의 입구가 보인다. 어디로 들어갈까? 

나는 왼쪽의 전시실로 들어갔다. 두 구역으로 나뉜 이곳에서는 배인숙의 사운드 설치 작품이 하나씩 전시되고 있었다. 작가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녹음한 새소리들을 여덟 개의 스피커로 들려주는 <혼자 부르는 합창 (8)>,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 틀에 20개의 줄이 수직으로 팽팽하게 달려 있어 하프 모양을 띤 <줄인사>가 그것이다. 줄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무언가 소리가 들리는데 정확히 식별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줄이 작가의 육성 인사말 녹음을 재생하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날개를 지닌 존재로서의 새와 하프라는 천상의 악기. 다시 천사다. 여기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간해선 의미를 식별하기 힘든 (목)소리 자체다. 이유경의 <핑크 매터>를 이루는 커다란 핑크색 기둥 하단에 조그맣게 붙은 QR코드를 스캔하면 들을 수 있었던, 요령부득의 한국어로 말하는 베트남 노동자의 목소리처럼. 천사가 무언가를 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해독하지 못한 채로 듣는다.

걸음을 옮겨 맞은편의 전시실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유리의 회화와 조각 들을 보다가 문득 계단을 올라와 멀리서 잠깐 보았던 중앙 전시실의 몇몇 작품들을 떠올리곤 그쪽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다시 회화와 조각 작품들. 이번엔 고산금과 이산오의 것이다. 복합 매체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던 아래층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여기엔 전통적인 미술의 범주에 속하는 형태의 작품들이 사뭇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물론 여기에도 천사의 기호들은 넘쳐나고 매우 뚜렷하다. 유리의 회화에서 날개 달린 천사의 형상을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깃털 펜을 쥐고 있는 손을 형상화하고 거기에 ‘편지’라는 제목을 붙인 조각, 새나 천사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날개를 뜻하는 프랑스어 ‘엘(aile)’이라는 제목을 붙인 연작 회화 등 이산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천사는 도처에서 보인다. 하지만 그가 고지하는 바의 의미는 여간해선 붙들 수 없다.

다시 유리의 작업들이 전시된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벽면에 걸린 회화들에 둘러싸인 네 점의 나무 조각, 혹은 ‘조각적 아티스트북’인 <고작 한 장의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두툼한 서책 모양으로 자른 나무에 선을 새기고 채색한 작품이다. 어떤 메시지가 고지된 것은 분명하나 그것의 의미에는 아직 가닿지 못한 데서 초래되는 불안을 고요하지만 힘겨운 수행(修行)으로 극복하려는 시도. 한주옥은 이를 “지각할 수 있다는 믿음,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의존해 “수많은 수신자와 발신자 간의 간극을 연결”해 나가려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수행은 고산금의 <메모리 보드> 연작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신체적 힘을 가한 볼펜질을 거듭해서 빼곡히 채워지고 여기저기 울은 커다란 화면 위에 수많은 진주알을 흩뿌린 후, 그것들이 무작위적으로 형성한 모양을 접착제로 고정한 것이다. 사뭇 기술적인 제목을 내건 이 작업은 어떤 면에선 갑골점 같은 고대적 주술의 현대적 변형처럼 비치기도 한다. 다만, 우리에게 해독의 단서가 되는 텍스트는 볼펜이라는 필기구가 남긴 흔적 속에서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이미지만이 출렁인다. 이때의 곤혹스러운 느낌은 텍스트와 이미지 간의 조응과 간격을 섬세하게 가늠해보는 이산오의 드로잉 연작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멀리서 공명한다.


해명하는 대신 소식을 전하고 연결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천사의 기능. 한편으로 이는 비평가-큐레이터의 기능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능을 소명으로 삼은 이의 마지막 임무는 사라지는 것이다. 횔덜린의 시에 대해 논하던 하이데거가 어느 순간 “해명은 그 자신이 무용한 것이 되려고 노력해야만” 하며 모든 해석에서 최후의, 그러나 가장 어려운 단계는 (…) 해명과 함께 사라지는 경지에 있다”고 충고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라짐의 즐거움.

대전창작센터 입구에서는 이빈소연의 <페어리 모빌리티 투자유치설명회 비디오: 고아를 만드는 기계>가 스크리닝되고 있었다. 천사의 또 다른 변양일 요정의 성공적인 사업 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모근을 살린 채로 우리의 머리카락을 뽑아 보내면 된다고 한다. 당연히,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전시장을 나와 어떤 기분으로 길을 걸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무척이나 다른 작품들 간의 신비한 결속을 바라면서도 기묘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듯한 기획자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전시를 보고 난 이후라는 것만 확신할 따름이다. 세르에 따르면, 가장 나쁜 천사들은 눈에 보이고, 가장 좋은 천사들은 사라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