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Don't Have My Heart in My Mouth"
: 장-뤽 고다르의 비디오 편지
올해 첫 공개되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 가운데 조만간 꼭 보고 싶은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장-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이다. 지난 5월 초, 신작 촬영 중이던 페드로 코스타를 리스본에서 만났을 때 그는 고다르의 신작을 운좋게 미리 보았다고 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거기서 고다르가 영화란 정말 단순한(simple)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거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처럼, 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는 복잡한(complicated) 영화를 만들지만 그것은 너무 쉬운(easy) 방식의 영화만들기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돌연 식당 테이블에 놓여 있던 받침용 세팅지를 뒤집어 포르투갈과 스페인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백을 가리키며) 장-뤽 고다르는 롤에...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는 포르토에... 빅토르 에리세는 산세바스티안에...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포르투갈 북부의] 기마랑이스에... 그리고 나는 리스본에 있다. 모두 고독하고, 단순하게 영화를 찍는 이들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다섯 명의 감독들은 옴니버스 영화 <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órico>(2012)에 참여했거나 참여가 약속되어 있었던 - 고다르의 경우 - 이들이다.)
한국에서도 언론을 통해 짧게 보도된 바 있지만, 올해 고다르는 칸영화제에 불참하는 대신 집행위원장 질 자콥과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 앞으로 한 통의 비디오 편지("Letter in Motion to Gilles Jacob and Thierry Fremaux")를 보냈다. 이 영상은 온라인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래 참조).
9분 정도 되는 이 짧은 영상은 사실 한 편의 빼어난 단편 에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국내 언론에서는 올해 칸영화제의 작은 스캔들 정도로 다루었을 뿐 제대로 소개된 바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워낙 짧은 영상이라 혹시라도 누군가 나서 번역을 해 올리는 이가 없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감감 무소식이어서, 결국 (형편 없는) 프랑스어 독해력과 (영어권 필자들이 올려둔) 부분적인 영문 번역 - 내가 보기에도 원래의 프랑스어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의역한 경우가 많았다 - 을 토대로 내가 직접 번역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글로 번역한 자막파일(smi 파일)을 여기 올려 두었다. (프랑스어에 익숙한 분들이 조금 더 근사하게 수정하거나 수정할 부분을 댓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비디오 편지에는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장 카바이에스(Jean Cavaillès, 1903~1944)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주 짧은 언급인데 함축이 짙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Hannah Arendt"라는 이름이 떠오를 때,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종종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집에서 위안을 찾는다네. 장 카바이예스가 게슈타포에게 저항했던 곳이지." 한나 아렌트 - (그녀의 저서 제목인) 전체주의의 기원 - 나치즘 - 게슈타포 - 레지스탕스 - (그 일원이었던) 장 카바이에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연상적 사유, 반-실증주의적(anti-positivist) 역사 기술, 혹은 역사적 몽타주는 고다르의 숱한 작품에서 익히 봐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집"이란 대체 무엇일까? 거기서 위안을 찾는다는 건? 그리고 왜 카바이에스인가? 이에 대한 단서는 조금 뒤에 나온다.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어둠에 묻힌 텅 빈 극장의 무대 위에 선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체주의의 지도자들이 활용한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내용이 아니라 법의 근거가 되며 법에 한결같은 확실성을 제공하는 논리와 같은 종류의 논리다."(This is not the content of ideologies, but the same logic which totalitarian leaders use which produces this familiar ground and the certainty of the Law without exception.)
먼저, 이 장면은 (고다르의 동반자인) 안느-마리 미에빌이 1997년에 만든 <우린 모두 아직 여기에 있다 Nous sommes tous encore ici>에서 따 온 것이다. (비디오 편지에 발췌, 삽입된 미에빌 영화의 해당 부분은 이곳에서 조금 더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고다르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1951)이 아니라 그보다 뒤에 집필된) 논문 「전체주의의 본성에 대하여 On the Nature of Totalitarianism」(1954)를 낭독하고 있는 중이다.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논리에 의해, "관심과 무관한 순수한 추론"에 의해 지탱되었다는 아렌트의 주장 - 이는 전체주의가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과 결부되어 있다는 통념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 을 되새기면서, 고다르는 불현듯 (그다운 비약을 통해) 그러한 '논리'를 다루는 일에 종사했던, 그리고 레지스탕스였던 한 수학자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고다르가 보기에, 장 카바이에스의 저항(resistance)은 두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서 나치즘(전체주의)에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집"으로서의 논리의 기초를 다시 묻는 형식적이고 이론적인 것이었다.
나는 아직 카바이에스의 저술을 직접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그가 저술한 책들의 제목을 살펴보고 이런 추정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제목만으로 거칠게 추정해보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수학계를 휩쓸었던 집합론, 형식주의, 수학기초론 등과 관련된 저술들로 여겨진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리적 방법과 형식주의』, 『추상적 집합론의 형성에 대한 논변』. 그리고 칸토어와 데데킨트 간에 주고받은 서신들을 편집해 간행하기도 했다. 고다르가 카바이에스의 저술을 직접 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내 생각에 그는 조르주 캉길렘(George Canguilhem)의 『장 카바이에스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e Jean Cavailles』을 통해 카바이에스에 접근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카바이에스는 프랑스 우표에 얼굴이 실린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 고다르는 캉길렘, 특히 그가 J. 브랭과 공동으로 저술한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Ideologie Et Rationalite: Dans L'histoire Des Sciences De La Vie』(국내에도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절판)이나 『정상과 병리 Le normal et le pathologique』(역시 번역되었으나 절판) 같은 책의 애독자였다.
나는 아직 카바이에스의 저술을 직접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그가 저술한 책들의 제목을 살펴보고 이런 추정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제목만으로 거칠게 추정해보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수학계를 휩쓸었던 집합론, 형식주의, 수학기초론 등과 관련된 저술들로 여겨진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리적 방법과 형식주의』, 『추상적 집합론의 형성에 대한 논변』. 그리고 칸토어와 데데킨트 간에 주고받은 서신들을 편집해 간행하기도 했다. 고다르가 카바이에스의 저술을 직접 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내 생각에 그는 조르주 캉길렘(George Canguilhem)의 『장 카바이에스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e Jean Cavailles』을 통해 카바이에스에 접근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카바이에스는 프랑스 우표에 얼굴이 실린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 고다르는 캉길렘, 특히 그가 J. 브랭과 공동으로 저술한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Ideologie Et Rationalite: Dans L'histoire Des Sciences De La Vie』(국내에도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절판)이나 『정상과 병리 Le normal et le pathologique』(역시 번역되었으나 절판) 같은 책의 애독자였다.
확실히, 여기서 고다르는 장 카바이에스의 '저항'과 자신의 '저항'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그가 "전체주의의 기원이 된 집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말할 때, 이는 그가 어떤 식으로건 이성, 추론, 논리, 언어의 세계에서 싸우고자 노력해 왔음을 뜻할 - 나는 고다르를 간단하게 '직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시적'인 시네아스트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을 믿지 않는다. 그는 확실히 그만의 방식으로 이론적이다. - 것이다. 그리고 장 카바이에스가 게슈타포(전체주의의 환유)에게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던 만큼이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던 것처럼 자신 또한 그와 유사한 자리에서 저항해 왔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다르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짧게 정리해 둔 적이 있는데, 이 글 말미에 옮겨 두었다.) 전체주의란 법, 과학 혹은 수학, 그리고 예술과 (간단히 대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장 위에서 펼쳐지며, 따라서 이 장은 무엇보다 격렬한 투쟁의 무대가 된다.
하지만,
"[...] 그보다 종종 나는 코델리어와 점심을 함께 하며 그녀와 침묵을 나눈다네." 고다르 자신의 영화 <리어 왕 King Lear>(1987)의 발췌장면과 더불어 그가 읊조리는 말. 이 비디오 편지에서 고다르가 비로소 무언가를 토로하는 순간. (말 그대로 '언어와 작별'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밝히는 순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언어와의 작별>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에서 판단할 수 없다.) 코델리어는 말한다. "제 마음은 제 입에 담겨 있지 않아요." 고다르는 카메라를 보며 - 실은 우리는 그의 눈 아래 부분만 볼 수 있다. - 코델리어의 말을 똑같이 읊조린다. 왕국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말로써 진심을 표현하기만 하면 왕국을 분할해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 자는 누구인가? (자, 이 비디오 편지가 이른바 세계 최대, 최고의 영화제라 일컬어지는 칸영화제의 수장들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말의 거부, 왕국과 그것의 지배에 대한 거부. "그래서 나는 떠나네. 나를 실어나르는 바람과 함께, 여기저기로, 고엽처럼 말이네." 그가 "하나의 단순한 왈츠"라 부른 <언어와의 작별>을 남기고.
* 고다르가 올해 내놓은 작품은 총 3편이다. 칸영화제 측에 보낸 비디오 편지, <언어와의 작별> 그리고 옴니버스 <사라예보 다리 The Bridges of Sarajevo>에 포함된 "탄식의 다리 The Bridge of Sighs"가 그것이다.
* [2014.8.12 추가] <언어와의 작별> 완성 직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기억하기론, 과거에 나는 칸영화제에 가는 게 행복했는데 어떤 가족... 영화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현실에서는] 가족적 삶이라는 게 없었던 우리가 거기서 다른 종류의 가족을 [...] 찾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점점 이 가족이 다른 가족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게 되자 더 이상은 거기 가고 싶지 않았다." 이 발언이 담긴 인터뷰 전체 영상은 이곳(1부와 2부)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오늘날의 SMS(Short Message Service)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건 사실 고독한 자들이 내뱉는 "내 영혼을 구해줘"(Save My Soul)라는 신호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3D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점이라고 일갈한다. 또한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스위스의 보(Vaud) 주에서는 "adieu"라는 프랑스어가 문맥에 따라 "farewell"과 "hello"의 상반되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즉, 한국어에서 "안녕"이라는 말의 용법과 유사하다.) 기억할 만한 말 하나. "많은 언어가 있지만 더 이상 제대로 된 낱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낱말들은 숲 속에서, 혹은 아프리카에서 [...] 길을 잃었다."
* [2014.8.12 추가] 칸영화제에서 배포된 <언어와의 작별> 프레스북에 실린, 고다르가 직접 작성한 영화 개요와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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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8.12 추가] <언어와의 작별> 완성 직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기억하기론, 과거에 나는 칸영화제에 가는 게 행복했는데 어떤 가족... 영화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현실에서는] 가족적 삶이라는 게 없었던 우리가 거기서 다른 종류의 가족을 [...] 찾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점점 이 가족이 다른 가족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게 되자 더 이상은 거기 가고 싶지 않았다." 이 발언이 담긴 인터뷰 전체 영상은 이곳(1부와 2부)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오늘날의 SMS(Short Message Service)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건 사실 고독한 자들이 내뱉는 "내 영혼을 구해줘"(Save My Soul)라는 신호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3D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점이라고 일갈한다. 또한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스위스의 보(Vaud) 주에서는 "adieu"라는 프랑스어가 문맥에 따라 "farewell"과 "hello"의 상반되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즉, 한국어에서 "안녕"이라는 말의 용법과 유사하다.) 기억할 만한 말 하나. "많은 언어가 있지만 더 이상 제대로 된 낱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낱말들은 숲 속에서, 혹은 아프리카에서 [...] 길을 잃었다."
* [2014.8.12 추가] 칸영화제에서 배포된 <언어와의 작별> 프레스북에 실린, 고다르가 직접 작성한 영화 개요와 번역문.
<언어와의 작별>
개요
이야기는 간단하다
개요
이야기는 간단하다
유부녀와 독신남이 만난다
그들은 사랑하고, 다투고, 주먹이 오간다
한 마리 개가 읍내와 마을을 배회한다
계절이 지나고
남자와 여자는 재회한다
그들 사이에 개가 있다
하나는 다른 하나 속에
다른 하나는 하나 속에
그리고 그들은 셋이다
전남편이 모든 걸 부숴버린다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된다
첫 번째와 같지만
그래도 다른 영화
우리는 인류로부터 메타포로 향한다
이것은 개 짖는 소리와
아이의 울음 소리로 끝난다
장-뤽 고다르
장-뤽 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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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메모 中 발췌한 것임]
고다르가 영화사라기보다는 과학사의 영역 내에 자신을 위치지으려 하는 시도는 꽤 집요한 데가 있다. 예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고다르 특별전 소개차 <씨네 21>에 기고한 짧은 글에서 나는 이미 이런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미지의 정치학이라고 할 만한 고다르의 이 같은 사유와 더불어 우리 또한 답변이 없는 물음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깊은 숙고로 즐겁게 빠져들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곤 하는 것이 과학에 관한 고다르의 견해이다. 비평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고다르가 ‘발견’과 ‘발명’의 수사학을 종종 끌어대는 것도 영화(와 스스로)를 예술사뿐 아니라 과학사의 한 부분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는 뤼미에르 스스로가 “미래가 없는 발명품”이라 진술했던 영화의 과학적 기원을 잊지 않는다. 또한 영화와 정치의 몽타주를 근심하는 동시에 영화와 과학, 과학과 정치의 몽타주에 대한 사유를 병행한다. 물론 여기서 고다르가 자신을 위치시키는 곳은 언제나 영화이며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정치와 과학은 ‘여기’(here)의 영화가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다른 곳’(elsewhere)으로서 기능한다. 즉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을 본다.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탐정>) 물론 고다르는 정치학자가 아닌 만큼이나 과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학과 과학의 방법론을 영화적으로 ‘번역’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그러한 번역의 가능성에 대단히 민감한 시네아스트이다. 예컨대 <즐거운 지식>은 화학에서의 물질의 정성적(定性的) 분석방법을 이미지의 분석에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파트리샤란 인물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요소로 분해하고”, “환원시켜”, “치환기”를 만들고, “재배열한” 뒤에 사운드와 이미지의 올바른 모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잘 돼 갑니까?>는 ‘비트’(bit) 개념과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의 노이즈(noise) 이론의 영화적, 실천적 적용이다.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노이즈는 단순히 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 동시대 유럽인의 삶을 바꿔놓은 ‘사회적’ 노이즈의 실례로서 베트남전을 들었다. 또한 그는 <열정>의 인물들이 “자기장 속을 가로지르는 철심들”로 고려될 수 있으며 이 영화는 그것들의 교차에 관한 이야기이자 비전이라는 식의 괴이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과학적 방법론의 예술적 전유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괴테의 소설 『친화력』을 떠올리게도 하는 고다르의 모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를 둘러싼 숱한 비평적 상투구들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고다르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갖고 찾아보았던 글들 가운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시네마 저널 Cinema Journal』(vol.41, no.2, Winter 2002)에 실렸던 케빈 J. 헤이즈(Kevin J. Hayes)의 「고다르의 <잘 돼 갑니까>(1976) : 정보이론에서 유전학까지 Godard's Comment Ca Va (1976) : From Information Theory to Genetics」라는 논문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인터뷰집 『고다르 X 고다르』에서 고다르의 과학에 대한 언급들 가운데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여기 옮겨 보았다. (페이지 표기는 한글번역판의 것임.)
"<결혼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만들고 있었을 때, 꼭 곤충학자가 벌이나 새를 연구하는 것처럼 이 젊은 여인을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만을 보고 어떤 과학법칙을 찾아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p.49)
""과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주제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과학학도가 연구실에서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2~3개월 동안 무엇인가를 탐구한 것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p.72~3)
"나에게 과학자와 에세이스트는 동일한 존재이다."(p.74)
"정보에 대한 일반적 관념을 정립한 클로드 섀넌이라는 미국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송신기와 통신로가 있은 다음에 송신기가 하나 더 있고 그 다음에 수신기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통신로에서 케이블은 소음이 생기는 곳이다. 우리는 이 소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소음은 단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20년 동안 북베트남에서 나오는 소음은 여기서 자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p.110~111)
"예술가와 과학자는 유사합니다. 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바라건대 과학자처럼 섞습니다. 과학적인 것의 비밀은 예술적인 것의 비밀과 같습니다. 비참(悲慘)도 서로 같습니다."(p.121)
"진정한 영화잡지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자들이 하는 방식으로 상호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그 때문에 과학이 미국 국방부에 있든, 다른 어디에 있든 그렇게 강력한 것이다. 도쿄의 과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p.168)
"이미지는 법정의 증거 같은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 같다. 그릇된 증거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검토될 수 있겠지만 말은 새로운 증거를 수립하기 위해서 이용되어야 한다.이것이 과학자가 일하는 방식이다. 나는 과학자들과 매우 가깝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 사물에 대한 접근방식을 구축하기 때문이다."(p.193~194)
"영화는 사물을 보고, 식별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발명되었다. 영화는 주로 과학의 도구였다... 생명체를 상이한 방식으로 보기 위한 것이었다. 볼거리는 영화의 5에서 10퍼센트이어야 한다. 나머지 전부는 탐구와 에세이를 의미하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연구를 위한 다큐멘터리이어야 한다. 나는 반은 소설가이고 반은 에세이스트이다."(p.283)
덕분에 잘 봤어요 ^^
답글삭제KHAN KHANNE를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고의 작품을 덕분에 봅니다.
답글삭제자막 감사히 가져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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