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7

<서신교환> 프로젝트

어제(8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빅토르 에리세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2005~2007)을 보고 나오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자크 데리다의 <우편엽서 The Post Card>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편지가 항상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그것은 언제라도 반송되지 않은 채 조각나 버릴 수 있다." 문득 이 데리다의 말은 에리세-키아로스타미의 영화편지 뿐 아니라, <서신교환> 프로젝트 전체를 설명하기에도 적절하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다 깊이 생각해 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래는 서울아트시네마 소식지에 기고했던 <서신교환>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옮긴 것이다. 


'영화-편지'의 조건, 또는 '영화-편지'는 가능한가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을 이야기로 시작하는 걸 양해해 주기 바란다. 고다르와 과학, 이는 사실 하나의 소논문 주제도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관계다. 영화가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 잡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다르는 영화는 예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특히 과학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과학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화됨으로써만 비로소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보았던 것 같다. 그가 한때 장-피에르 고랭과 결성했던 지가 베르토프 집단도, 흔히 논의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 영화제작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영화제작을 일종의 과학적 공동연구와 같은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기획, 예컨대 수학계의 부르바키(Bourbaki) 집단이나 수학적 방법론을 문학연구와 창작에 끌어들인 울리포(Oulipo) 집단 등과 유사한 기획이었던 것으로 간주할 때 훨씬 더 흥미로운 사색의 장이 열린다. 고다르는 영화가 예술일 수 있었던 시대는 그가 데뷔했을 즈음에 이미 끝났다고 보았다(1968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는 더 이상 예술작품이 아니다 [...] 10년 전이었다면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가 보기엔 이른바 작가주의라는 것도 영화의 과거와 그 자신이 등장한 시기(1960년대)를 일단 예술로서 긍정하면서 무언가 다른 미래를 불러들이기 위한 연결고리였을 뿐 미래의 영화 ‘예술가’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다르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가 예술로서 고착된 것, 바꿔 말하면 영화감독이 예술가일 수 있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야말로 현대영화의 커다란 굴절이라 할 만한데, 이로 인해 초래된 여러 부작용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화감독이 전통적 예술의 창작자들과 다를 바 없이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다르는 과학자들이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한다는 사실에도 매력을 느꼈고 그러한 상호성을 영화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너선 로젠봄과의 인터뷰(1980년)에서 "도쿄의 과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단편적인 언급에 비평적으로 확장 가능한 통찰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도쿄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인식과 그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사유의 도구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 장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우선 편지와 관련된 거리의 문제를 살펴보자. 편지란 서로 떨어져 있는 친밀한 이들 뿐 아니라 서로 개인적인 교분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이들 사이에서도 오갈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조금 달리 말하자면 편지가 발송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간에 어떤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편지의 교환이란 바로 그 거리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까운 친구와는 대화를 나누면 된다.) 물론 거리의 존재 자체가 곧 편지의 교환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친밀하지 않거나 심지어 낯선 이들 사이에서라면 편지의 교환 가능성은 전적으로 그 교환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의지에 내맡겨지게 된다. 다음으로, 과학에 필적할 만큼의 공통된 사유의 도구를 갖고 있다곤 말하긴 힘든 - 달리 말하면 공약가능성이 낮은 - 영화 같은 영역에서, 비단 개인적 교분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편지를, 그것도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로 된 영화-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앙트완 베르만의 선구적인 저작(<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에 이어 철학자 폴 리쾨르가 그의 <번역론>에서 정식화한 논의를 빌리자면, 영화-편지 교환은 모놀로그의 씁쓸함 속에 갇히지 않고 낯선 것이 주는 시련을 통해 스스로의 낯섦을 깨닫기 위한 '언어적 환대'(linguistic hospitality)로서의 번역과 유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는 만국공통어라는 기만적인 주장은 일소에 부치고) 각각의 영화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모국어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본다면, 영화-편지 교환이란 타인의 영화라는 외국어를 통해 거꾸로 자신의 영화의 낯섦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 즉 영화적 환대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상의 언급과 관련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현대문화센터(CCCB)에서 기획한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국적과 언어를 달리하는 두 명의 영화감독이 일련의 영화-편지를 만들어 서로 교환하고 이 결과물을 일반에 공개한다는 아이디어는, 원래 알랭 베르갈라와 호르디 바요가 기획한 전시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후 "에리세-키아로스타미: 서신교환"(Erice-Kiarostami: Correspondences)이라는 제목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2006.2.10~5.21), 프랑스 파리(2007.9.19~2008.1.7) 그리고 호주 멜버른(2008.8.21~11.2) 등에서 진행된 이 전시는, 같은 해(1940년)에 태어난 두 명의 거장감독,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작품들과 설치작품들을 기반으로 삼았다. (키아로스타미의 영상설치작업에 대한 관심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그는 침대에서 잠자는 젊은 커플의 모습을 촬영해 침실처럼 꾸며진 공간에 놓인 실제 침대 위에 100분 동안 영사하는 <잠자는 사람들>(Sleepers)을 제작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고, 이는 "에리세-키아로스타미" 전시에도 포함되었다. 한편 미술계 쪽에서는 빌 비올라가 1992년에 동명의 설치작품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처럼 앤디 워홀의 <잠>(1963)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전시공간에서 계승한 것이었다.) 두 감독은 1997년에 한 영화제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 친밀하게 교분을 나눈 적은 없는 사이였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한 존경심으로 기꺼이 전시에 참여하기로 동의했고, 논의와 숙고 끝에 에리세는 영화-편지를 만들어 서로 교환한 뒤 이를 전시에 포함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영화-편지 작업과는 별도로 에리세는 이 전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붉은 죽음>(2006)이라는 33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2005년 4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이어진 두 감독의 영화-편지 교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잠자는 사람들 Sleepers>(Abbas Kiarostami, 2001, video installation)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영화-편지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서신교환> 프로젝트가 영화-편지를 실험한 최초의 시도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고다르의 경우만 해도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1972)나 <프레디 뷔아슈에게 보내는 편지>(1982)에서 일찌감치 에세이 형식의 영화-편지를 실험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편지 교환의 회로를 실제로 가동시키며 영화-편지의 실험을 성공시킨 사례는 분명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가 주고받은 10통의 영화-편지들은 타인의 작품에 대한 번역에 기초해 그것을 자신의 창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적 환대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때 교환의 전체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첫 번째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이다. 알랭 베르갈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통상 첫 번째 메시지가 앞으로 이루어질 서신교환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이 첫 편지에 대한 답장 역시 마찬가지로 결정적인데, 이는 장차 이어질 편지들의 교환 규칙 자체를 설정한다."

<유리병 편지 Sea-Mail> (에리세-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 중에서)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성공에 고무된 기획자들은 이후 다섯 개의 프로젝트 - 서신교환이 시작된 날짜가 이른 순부터 나열해 보면, 이사키 라쿠에스타/가와세 나오미, 하이메 로살레스/왕빙, 요나스 메카스/호세 루이스 게린, 페르난도 에임브케/김소영, 알베르 세라/리산드로 알론소 - 를 추가로 진행했다. 이 모두가 예술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가능한 영화 형식 하나를 진지하게 실험했고, 그 실험의 결과 초기조건(첫 번째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에 따라 영화-편지 교환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혹은 증거들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간과할 수 없다.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에 이어 각각의 감독들은 영화가 무언가 다른 것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묻기 전에 일단 영화-편지를 주고받는 일의 가능성과 의의를 가늠해 보려 했고, 이 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게린과 메카스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였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영화적 서간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영화-편지 특유의 스타일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영화-편지들에 편지라는 인상을 부여하는 것이 있다면 문학적 서간체를 고스란히 본뜬 보이스오버나 자막 정도이며, 영화-편지로서 교환된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제외하고는 그것이 편지임을 암시하는 어떤 단서도 없는 경우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알베르 세라가 리산드로 알론소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두 번째 장편 <기사에게 경배를>(2006)에 참여했던 배우 및 스탭들과 함께 찍은 146분짜리 장편영화다. 그리고 알론소는 자신의 데뷔작 <자유>(2000)의 주인공을 데리고 제목이 없는 23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세라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제외하면 그것이 편지임을 알려주는 아무런 단서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등장인물은 알론소가 준비 중인 장편영화의 스토리를 낭독한다. 이 두 감독 간의 영화-편지 교환은 단 한 번의 주고받음으로 끝났지만, 사실 이는 편지의 목적지를 불분명하게 만듦으로써 - 달리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다수의 수신인을 가정함으로써 - 교환의 회로를 사방으로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초기조건을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제 편지는 교환의 회로를 벗어나 답신에 대한 기대 없이 무한히 산포될 수 있다.

영화적 서간체 혹은 특별히 영화적인 영화-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발송이라는 사태를 개시하고 교환의 회로를 가정하기만 하면, 사실상 어떤 영화적 형식도 영화-편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때 세상의 모든 영화는, 서로가 서로의 낯섦을 깨닫게 만드는 낯선 것으로서, 가능한 모든 우연한 마주침에 열려 있는 환대의 공동체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