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9

소마이 신지: 저항의 미메시스 + <소마이의 유령>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련한 「2015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2015.7.28~8.30)를 통해 영화관에서 꼭 보고 싶었던 두 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앨버트 르윈의 <판도라 Pandora and the Flying Dutchman>(1951)로 이 테크니컬러 걸작은 할리우드 영화가 결정적인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던 - 냉전기의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와 텔레비전의 부상 등 - 1950년대라고 하는 특정한 시기에만 (마지막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인 동화들 가운데 하나다. 이번에 상영된 것은 2009년에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George Eastman House)가 디지털 복원한 판본으로 2010년에 KINO LORBER에서 DVD 및 블루레이로 출시한 바 있다. 


<Pandora and the Flying Dutchman>(Albert Lewin, 1951)


다른 하나는 소마이 신지의 <숀벤 라이더 P.P. Rider>(1983)로, 이 작품은 <러브 호텔 Love Hotel>(1985) 그리고 <이사 Moving>(1993)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마이 영화다. (<러브 호텔>은 최근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네이버 등에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 중이다.) 6년 전(2009년 9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마이의 <태풍클럽 Typhoon Club>(1985) 상영 후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뒤 강연록의 일부를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것을 아래 옮겨 보았다. 소마이의 이력이나 그에 대한 비평적 평가에 대해 언급한 강연 앞부분의 내용은 생략하고 후반부의 내용만을 당시의 강연원고를 토대로 정리했다. 올해 초 미디액트에서 안건형 감독과 함께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강좌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소마이의 유령 Running to Stand Still: Somai Ghost>이라는 제목으로 소마이 신지에 대한 10분 분량의 에세이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이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제작한 영상물들은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상도 아래 링크해 두었다. 바라건대 조만간 서울에서 소마이의 전작(13편)을 볼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1. <소마이의 유령 Running to Stand Still: Somai Ghost>
(제작: 미디액트 / 촬영, 텍스트, 편집: 유운성 / 2015년 / 10분)



2. 소마이 신지: 저항의 미메시스
(2009년 9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 강연원고를 부분적으로 정리한 것임)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1948~2001)에게 있어서 순간이 미학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소마이의 영화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프레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면에서 소마이는 그 이전까지 주로 일본 바깥의 평자들에 의해 '일본적'이라 이해되었던 것들을 폐기하는 작업에서 출발한 감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즈와 미조구치를 떠올려 보죠. 사실 오즈와 미조구치가 '일본적'이라 받아들여진 것도 그들 스스로가 어떤 엑조틱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작업에 힘했기에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화가 폭넓게 받아들여지면서 그들의 특정한 미학이 '일본적'인 것으로 사후에 재정의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많은 감독들이 알게 모르게 이들의 전통 하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영화'라고 하는 어떤 '종'이 성립된 것이죠. 적어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영화가 그 바깥의 이들에게 '종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리 만무합니다. 아, 이것은 일본영화적인 것이다, 라는 어떤 느낌을 가능케 하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방금 보신 <태풍클럽>(1985)에서 미카미라는 소년이 "개체가 종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저는 소마이야말로 한 일본감독이라는 개인이 일본영화라는 종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던 영화작가라 봅니다. 사실 이건 모든 나라의 감독들에게 자연스레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저는 한국영화라는 종이 기존에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지금 이곳에서 생성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건 감독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불행한 일이기도 하죠. 근 15여년 동안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등등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행해졌지만 그건 말하자면 그러한 감독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영화라는 종을 기어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해당하는 것이거든요. 앞서 언급한 감독들은 한국영화라는 종을 구성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사실 미처 종으로 확립되지 못한 일군의 허약한 개체들의 무리 사이에서 나타난 매우 예외적이고 탁월한 -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을지라도 - 돌연변이들이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태풍클럽 Typhoon Club>(1985)


여하간 다시 소마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일본영화의 특정한 양식이 '일본적'인 것으로 인지되고 마침내 엑조틱한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적'인 것으로 즉각 인지되지 않는 일본영화를 재발명해내는 문제를 고민했던 감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예컨대 매우 일본적인 장르 가운데 하나인 야쿠자 장르에 접근하는 데 있어 소마이가 기타노 다케시와 얼마나 달랐던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기타노는 야쿠자 장르의 쇄신이라는 과제를 숏 자체, 프레임 자체, 편집의 리듬 자체를 미학화하는 수준에서 수행했습니다. 이런 식의 형식적 지향과 자결이라고 하는 일본적 매너가 결합된 그의 야쿠자 장르들은 당연히 1990년대를 거치며 서구평자들의 주목을 끌었지요. 여하간 기타노는 좀 미시적 수준에서 엑조틱한 '일본성'을 야쿠자 장르에 재도입한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돌스>나 <자토이치>에 이르면 아예 눈에 띄게 엑조틱한 요소들를 내세우는 바람에 거의 참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즉 기타노가 야쿠자 장르의 비장미를 형식적으로 정련한 현대감독이라면, 소마이는 야쿠자 장르의 세계 자체가 허구적인 연행(performance)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폭로하면서 해방의 쾌감을 만끽하는 쪽이죠. 그런데 그의 영화엔 어떤 식으로건 눈에 띄게 유미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장르의 해체라고 해도 예컨대 스즈키 세이준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 보입니다. '일본적'이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미적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이야말로 소마이가 서구로부터 쉬이 인지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해요. 덧붙여 하스미 시게히코가 지적하듯 소마이가 <세라복과 기관총>(1981) 같은 하이틴 변종영화로 일본 내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흥행작가라는 인식도 (부정적으로) 한 몫 했을지 모릅니다.



<세라복과 기관총 Sailor Suit and Machine Gun>(1981)


미조구치적 롱테이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구체적인 시선의 롱테이크를 시도한 소마이가 특정장르 안에서 그 장르의 주요부분을 이루는 특정 집단의 인공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오즈적 가족, 이른바 일본적 전통가정이란 소마이의 세계에선 매우 낯선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가족적 삶을 이끄는 어른들이 일단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은 등장한다 해도 아이들보다 미숙하거나 철없는 존재들일 뿐이죠. <세라복과 기관총>이나 <숀벤 라이더>(1983)에서 보듯, 야쿠자 장르의 야쿠자들 또한 소마이의 세계로 들어오면 의리와 규율이라는 허울뿐인 외양 밑에 감춰둔 서툴고 유아적인 정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야말로 애만도 못한 어른들이 되어 버리는 거죠. 흥미로운 것은 소마이가 이것을 스즈키 세이준처럼 장르적 유희나 그 해체를 위한 냉소적인 과장으로서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당대 일본사회의 리얼함이라고 공언하는 듯한 태도에 있습니다. 그처럼 경직된 것들을 조롱하는 소마이의 방식은 바로 아이들이란 존재를 내세워 (아도르노의 표현을 맘대로 빌려 쓰자면) 그 경직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미메시스를, 모방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미메시스란 연기 혹은 연행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마이는 개인적으로 무대극이나 오페라에 굉장히 애착이 많은 감독이기도 했고 직접 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숀벤 라이더 P.P. Rider>(1983)


소마이의 데뷔작 <돈다 커플>(1980)의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부부처럼 삽니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짐짓 부부관계를 연기하고 있는 중이며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거꾸로 부부관계란 것이 얼마나 철없는 질투와 이기심으로 지탱되는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건 소마이의 원숙한 걸작 <이사>(1993)에서 실제 어른들의 부부관계를 통해 반복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세라복과 기관총>의 주인공 소녀는 사실 아쿠자 보스를 '연기'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연기'는 실제 아쿠자들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급기야 그걸 괴멸시켜 버리죠. 그걸 보며 소녀는 '쾌감'이라고 중얼거립니다. <빛나는 여자>(1987) 같은 영화는 영화 전체가 아예 펠리니적 세팅의 파이트 클럽이라고 하는 무대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태풍클럽>에서 한 소년은 혼자서 자기 집 문을 들락날락하며 "다녀왔습니다" "그래 다녀왔니"라고 말하며 자식/부모의 역할놀이 혹은 연기를 수행합니다. 소마이의 영화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경직되고 소외된 것, 가족제도나 야쿠자 사회 뿐 아니라 통상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저항이라고 여겨지는 혁명적 태도까지도 미메시스적 차원에서 묘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통상 <숀벤 라이더>나 <태풍클럽>은 어른들이 방기한 세계에서 터져나오는 청춘들의 반항적 에너지를 묘사한 영화라는 식으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리고 그런 언급이 꽤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반항이나 저항 자체가 아니라 저항의 미메시스를 묘사한 영화라는 점도 동시에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숀벤 라이더>의 클라이맥스에서 아이들은 돌연 집의 내외부를 돌며 모종의 공연 비슷한 행위에 몰두하고 <태풍클럽>에서 고교생들의 해방적인 광란의 춤이 시작되는 것은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연이자 연기, 퍼포먼스로서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풍클럽>에서 퍼포먼스의 관객은 단 한 명, 미카미라는 소년입니다. 그는 이미 선생에게서 '15년 뒤면 너도 나처럼 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는 우울해 있는 상태죠. 그가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것은 순수하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약간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입니다. 저항도 미메시스적 퍼포먼스 앞에선 무너져내릴 뿐인 허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그는 종이 개체에게 행사하는 승리의 징표인 죽음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가를 직접 증명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의 죽음조차도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태풍클럽>은 소마이적 주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영화라 할 수 있겠지요.



소마이 신지, <이사 Moving>(1993)


다시 한 번 "15년 뒤엔 너도 나처럼 될 거야"라는 <태풍클럽>에서의 선생의 대사를 떠올려 봅시다. 미카미라는 소년은 선생의 말과 같이 되지 않을 것임을 그 자신의 즉각적인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지만, 소마이는 15년 후에 그의 유작이 된 <바람꽃>(2000)을 발표했습니다. 이 영화엔 모종의 피로감이 덮여 있습니다. 소마이의 영화에서 경직된 사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물들의 영원한 도피처처럼 종종 묘사되어 왔던, 그리고 소마이가 유년을 보냈던 홋카이도가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했던 대사, "홋카이도는 죽기에 좋은 곳이다"라는 대사도 그가 죽은 지금에 와선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소마이가 거부하고자 했던 일본영화라는 종의 어떤 흔적도 느껴집니다. 당시 소마이는 이 영화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고, 1년 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게 마치 자살처럼 느껴집니다. □

※ 주

[1] 2001년 9월 9일 소마이가 5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미국영화잡지 <필름 코멘트 Film Comment>에 "잃어버린 연결고리 Missing Link"라는 제목의 소마이 소개글을 발표한다. 하스미는 소마이의 부고를 듣고 루비치의 죽음을 떠올렸다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는데, 루비치도 소마이와 비슷하게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할리우드 시절에만도 30편이 넘는 뛰어난 영화들을 남긴 루비치의 죽음에 과연 당대의 사람들이 너무 이른 죽음이라고 생각했을지 의문을 표하며, 20년 경력에 고작 13편의 영화만을, 그것도 여러모로 봐도 최고의 영화라고는 말할 수 없는 <바람꽃>을 유작으로 남기고 죽은 소마이의 죽음을 애석해한다. 그리고 소마이의 비극을 1980년대라고 하는 일본영화계의 좋지 않은 상황, 말하자면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연출을 시작한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보고 있다. 1980년대는 일본영화계를 70여 년 간 지탱해 온 스튜디오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인 동시에 독립적 영화작가들을 지원할 새로운 세대의 젊은 프로듀서들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어쩌면 감독들에게는 꽤나 불행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마이는 그 시기를 버텨내면서 그리고 일본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지탱하고 작가영화의 가능성 또한 모색하면서 이후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소마이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황혼에 도제시스템을 경험하며 출발한 마지막 세대였고 – 그는 로망포르노에 뛰어든 닛카츠 연출부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23편의 로망포르노 영화에서 조감독 일을 수행했으며 거기서 만난 이전 세대의 조명기사인 쿠마가이 히데오와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다 - 1980년대 이후의 새로운 일본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감독인 하세가와 가즈히코(소마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을 영화작가)의 <태양을 훔친 사나이>(1979)에서 조감독을 거쳤다.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하세가와 가즈히코와 소마이 신지의 조감독을 거쳤다.

확실히 소마이의 때이른 죽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일본영화계 내에 어떤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모양인지 최근 일본영화들을 보다 보면 문득 그의 그림자나 그에 대한 추억이나 존경의 표지를 접하게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예컨대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카뮈 따윈 몰라>의 오프닝 시퀀스는 6분 31초 동안 이어지는데, 거기서 한 영화과 학생이 오슨 웰스의 <악의 손길>이나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의 오프닝에 구사된 롱테이크의 길이를 언급하며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언급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마이의 세 번째 장편이자 최고걸작 가운데 하나인 <숀벤 라이더>다. 대학 캠퍼스 내 청춘의 에너지를 바지런히 포착하려 시도하는 이 시퀀스 자체가 소마이의 <숀벤 라이더>를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시퀀스의 지속시간 역시 <숀벤 라이더>의 오프닝 롱테이크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이건 1945년 생으로 소마이와 동세대의 작가라 할 야나기마치의 추억이다. 동시대 일본감독들 가운데 가장 소마이적인 작가라 할 구로사와 기요시의 경우는 야나기마치보다 은밀하지만 보다 존경이 담긴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보도를 걷는 일군의 청소년들의 보조에 맞춰 카메라가 비스듬히 후진트래킹하는 가운데 "밝은 미래"라는 제목이 떠오르고, 이어서 카메라가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 왼쪽으로 옮겨가 후진트래킹을 계속하다 마침내 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작은 화면으로 감싸이고 나면 크레딧이 올라가는 <밝은 미래>(2002)의 엔딩은 명백히 소마이의 걸작 <이사>의 엔딩을 강력히 환기시키고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 뿐 아니라 "어디로 가니?"라는 물음에 "미래로요"라고 대답하던 주인공 소녀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붕괴직전의 가족, 철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성장의 고통을 겪는 조숙한 소년이 등장하는 <도쿄 소나타>(2008) 역시 <이사>의 21세기판 리메이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이 조숙한 소년은 사실상 소마이의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다만 소마이의 아이들 같은 발랄함은 없다.) 좀 더 거슬러 가자면 아이의 실종과 죽음 이후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샐러리맨의 이야기인 구로사와의 <거미의 눈동자>(1998)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갑작스레 야쿠자 보스가 되어 버린 소녀의 이야기인 <세라복과 기관총>의 전도된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