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

문학과 위생: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 아래 글은 《문학과 사회 하이픈》(2022년 가을호)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종반부에는 보수 공사 중인 히로시마평화기념관, 일명 원폭 돔이 석양을 배경으로 보이는 쇼트가 나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직후다. 붉은색 사브 900을 몰고 눈 덮인 홋카이도를 찾아간 가후쿠와 그의 운전기사 미사키가 서로 포옹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와 똑바로 대면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라고 다짐하는 장면 다음에 말이다. 원폭 돔 쇼트 위로는 “잠자코 있긴! 기다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가후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내 장면은 가후쿠와 그가 지도한 배우들이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공연하고 있는 극장으로 넘어간다. 즉 가후쿠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말은 그가 연기하고 있는 바냐의 대사다. 이쯤에서 우리는 저 원폭 돔 쇼트가 매우 이상한 자리에 있음을 알게 된다. 히로시마평화기념관은 가후쿠 팀이 <바냐 아저씨>를 공연하고 있는 극장이 아니다. 그런데 원폭 돔 쇼트가 저 자리에 들어가고 그 위로 바냐의 대사까지 얹어지면서 이는 공연 장면의 설정 쇼트처럼 되어버린다. 물론 원폭 돔은 그 자체로 워낙 잘 알려진 기념물이라 이것을 보고 어떤 극장의 외부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원폭 돔 쇼트는 분명 설정 쇼트‘처럼’ 기능한다. (언젠가 히로시마를 더는 20세기 역사의 특정한 순간과 결부시킬 수 없는 세대가 도래할 때, 그때는 이것이 완벽하게 설정 쇼트‘로서’ 기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굳이 그렇게까지 사변적인 공상에 탐닉할 필요는 없겠다.) 단적으로 말해, 이 쇼트는 무척이나 작위적이다. 게다가 원폭 돔의 상징성 때문에 그 작위성은 한결 두드러진다. 영리한 연출자인 하마구치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1] 그런데도 원폭 돔과 <바냐 아저씨>를 무리하게 중첩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바냐 아저씨>라는 ‘문학’은 대체 ‘역사’로서의 히로시마에 대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다 문학은 영화가 역사에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위생 관리의 수단이 된 것일까?


위생용품으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여기에 더해, 같은 소설집에 실려 있는 「셰에라자드」와 「기노」, 그리고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 무라카미의 다른 작품에서 얻은 소재나 아이디어도 차용되었음은 하마구치의 몇몇 인터뷰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는 <바냐 아저씨> 또한 무라카미가 원작에 도입해 둔 설정이다.

사실 하마구치가 무라카미의 소설을 각색해 신작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닥 의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피 아워>와 <아사코> 같은 하마구치의 이전 작품들에서 은근히 감지되었던 관능적 감각에 대한 지극히 소년적인 쑥스러움을 떠올려 보면 오히려 둘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서 굳이 ‘쑥스러움’이라 표현한 것은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으면서 연신 흘깃거리는 태도, 짐짓 태연함을 가장한 맹렬한 관심을 가리키기 위해서다. 즉 이런 쑥스러움은 어느 정도 부드러운 공격성이 전도된 것이라 봐도 좋다. 하마구치의 영화가 기묘한 것은 이런 소년적 쑥스러움을 허구적으로 매개하는 자리에 정작 여성이 놓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인 ‘동시에’ 그 인물의 연기자로서 카메라 앞에 나타나는 이 여성은 다분히 성적으로 충전된 텍스트를 최대한 무덤덤하게 읊조린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녀의 말과 시선과 몸짓의 세부를 구석구석 살피게 될 익명의 잠재적 관객들을, 즉 “미래의 무한한 시선”을 대리하는 저 무정한 기계 앞에서 말이다. 남자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 그가 쓴 소설에서 가장 성적으로 노골적인 부분을 차분하게 낭독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우연과 상상>의 두 번째 에피소드(‘문은 열어둔 채로’)는 가장 전형적인 예다. 


<해피 아워>


“미래의 무한한 시선”은 하마구치가 자신의 각본 구성 및 연기 연출 방법에 대해 세밀히 기술한 「영화 <해피 아워>의 방법」에서 카메라 장치의 속성을 규정하며 쓴 표현이다.[2] 하마구치가 자신의 영화에서 허구적 인물과 결부된 텍스트를 어떻게 연기자의 말과 시선과 몸짓의 진동을 촉발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글이다. 그런데 텍스트와 연기자의 상호 관계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피 아워>의 각본에서 직접 발췌한 대사를 예로 드는 법은 이상하리만치 거의 없다. 그러다 글의 말미에서 하마구치는 텍스트의 의미가 어떻게 현장의 연기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예시하기 위해 유독 영화 종반부의 대사 하나를 직접 인용한다. 바로 “아침까지 남자랑 있었어. 섹스했어”라는 대사다. 영화를 위해 장기간 워크숍을 거쳤다고는 해도 이전에 연기 경험이 전혀 또는 거의 없었던 <해피 아워>의 연기자들에게 이런 발화가 적잖이 진동을 유발하리라는 점을 하마구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등장인물에 대해 연기자가 맺는 관계를 “그녀는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일 뿐이다”라는 역설로 표현하기도 한다.[3] 이런 불확정적 얽힘의 관계 속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는 어떤 식으로건 연기자의 말과 시선과 몸짓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어 “미래의 무한한 시선”을 위해 고정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셈이다.

사실, 등장인물과 연기자 사이에서 진동하는 스크린적 복합체를 포착하려는 연출적 시도 자체는 현대 영화 이후의 동시대 영화에서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4] 철학자 스탠리 카벨에 따르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고전 영화의 경우라 해도 영화에서의 연기자란 작가가 고안한 허구적 등장인물을 실감나게 구현해내는 연극적 의미의 배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카벨은 카메라 앞에 놓인 이러한 연기자의 현전 자체를 통해 출현하는 스크린적 등장인물을 ‘유형type’이라고 부른다. 연극적 배우는 등장인물을 무대에서 투사하는 반면, 영화적 연기자는 스크린에 투사됨으로써 유형을 산출한다. 이러한 유형은 허구적이기보다는 실재적이다.[5] 이처럼 영화 연기에 내재한 근본적 수동성을 “미래의 무한한 시선”에 노출된 육체의 잠재력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러한 육체를 촉발해 유형화하기 위한 기능적 도구로서 텍스트를 동원한다는 점에 하마구치의 독특함이 있다. 

더불어 그는 이처럼 촉발된 육체에 관객의 주의가 최대한 집중되게끔 시각적으로 단순하고 번잡한 요소가 없는 화면을 선호한다. 게다가 그의 영화에서는 연기자의 움직임도 크지 않으며 화면 내부의 동적 요소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이 위생적 강박관념은 극에 달한다. 도쿄에 있는 가후쿠의 집, <바냐 아저씨>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히로시마에서 그가 머무는 숙소, 그가 배우들과 함께 대본 낭독 훈련을 진행하는 연습실 등은 물론이고, 그가 미사키와 함께 홋카이도로 가는 길에 탑승하는 페리의 3등 객실에 이르기까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실내 공간들은 이미 고도로 정갈하게 무대화되어 있다. (이처럼 영화적으로 구성된 정갈함을 곧 ‘일본적’인 것이라고 보는 관광객적 망상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하마구치의 스승인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특히 최근에 국내 재개봉된 걸작 <큐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촬영이 진행되었던 터라, 마스크를 쓰고 지나다니는 행인이 보이지 않게 프레이밍해 주로 무인 풍경의 쇼트들 위주로 실외 장면을 구성한 점도 이런 느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요한 무대적 공간이 되는 자동차의 붉은색은 이러한 풍경을 바탕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의 위생학을 강조하는 상징적 색채처럼 느껴진다. 이는 눈 덮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붉은색 자동차가 보이는 (원폭 돔 쇼트 바로 직전에 삽입된) 쇼트에서 정점에 달한다.

따라서 문학적 기능이 없는 기능적 문학이라 할 무라카미의 텍스트가 하마구치의 연기자들을, 그들의 육체를 촉발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도입부에서 가후쿠의 아내가 성교 중 트랜스 상태에서 구술하는 이야기는 무라카미의 「셰에라자드」에서 정체불명의 여성이 주인공 하바라와 성교할 때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라카미가 이 단편의 제목 및 그 인물의 이름으로 ‘셰에라자드’를 택한 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자신의 시대적・문학적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증거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언어 자체가 관능적 환기력을 지닐 수 있었던 시기의 문학이다. 이때 성교와 이야기가 결합된 존재로서의 셰에라자드는 그러한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다. 그런 반면에 무라카미는 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 언어로 씌어지는 텍스트의 시대, ‘문학 상실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이때 성교와 이야기의 병치는 둘을 모두 사교의 수단이라는 식으로 동등하게 포괄해버리는 시대에 걸맞은 “무표정한blank 아이러니의 현대적 실천”에 지나지 않는다.[6] 그리고 무라카미의 ‘셰에라자드’는 이러한 병치가 수행되는 자리에 불려온 ‘공허한blank’ 매개자다. 이 매개자의 자리는 이처럼 텅 빈 것이기에 위생적이다. 따라서 하마구치는 안심하고 이 자리를 자신의 연기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종종 도착적 설정을 끌어들이지만 언어 자체의 관능적 환기력이 없는─혹은 그 반대로 언어 자체에 관능적 환기력이 없기에 도착적 설정의 힘을 빌리는 것일 수도 있는─무라카미적 텍스트는 연기자들을 안심시키면서도 그들의 육체를 촉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서 ‘무라카미적’이라고 한 것은 꼭 무라카미의 텍스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피 아워>에서 작가 노세 고즈에가 낭독회에서 읽는 「수증기」라는 단편 소설(노세 고즈에 역의 연기자가 직접 쓴 것이다)이나 <우연과 상상>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나오가 세가와 교수 앞에서 낭독하는 그의 소설은 이미 충분히 무라카미적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의 아내 오토를 흠모했고 어쩌면 그녀와 불륜 관계였을지도 모를 젊은 배우 다카쓰키가 이미 죽은 그녀를 대신해 가후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다. 「셰에라자드」에서 무라카미가 “약간 괴담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운만 떼고는 정작 쓰지 않은 이야기를, 하마구치는 정말 괴담에 가까운 무라카미적 텍스트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다카쓰키를 어쩐지 오토의 망령에 신들린 듯한 느낌으로 연출해 성적으로 충전된 텍스트를 읊조리는 여성이라는 모티브에 변주를 꾀하고 있기도 하다. (혹은, 하마구치 영화에서 여성의 자리가 실은 소년적 쑥스러움을 매개하는 자리임을 노출해버리는 순간이랄까?) 

하마구치는 자신의 ‘셰에라자드(들)’을 위한 무라카미적 텍스트를 직접 쓰거나 빌린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들)’의 자리에 선 연기자들이 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표출하는 말과 시선과 몸짓을 카메라를 통해 “미래의 무한한 시선”에 열어둔다. 무엇이 표출될지는 우연에 달린 문제다. 결국, 상상이 우연을 부를 것이다. 이를 위해 하마구치는 연기자가 성적으로 충전된 텍스트를 오히려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내뱉도록 훈련시킨다. 이를테면, (실제로 이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침까지 남자랑 있었어. 섹스했어”라는 대사를 “아침까지 남자랑 있었어. 이야기했어”라고 말하는 기분으로 던지게끔 말이다. 성교나 이야기가 똑같은 무게로 사교의 수단이 된 시대에 어울리는 무라카미적 텍스트는 마침내 그것의 기능적 활용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연출자와 만난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런 유의 텍스트는 당신이 대형 서점 신간 소설 코너에 가서 새로 나온 한국소설을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열에 아홉은 만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왜냐고?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1989년에 가라타니 고진이 지적한 것처럼 “무라카미가 일찍이 가치전도에 의해 발견한 ‘풍경’은 지금 세계적으로 자명하게 된 풍경”이기 때문이다.[7]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하마구치의 드로리안


무라카미적 텍스트를 하마구치처럼 용의주도하게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아예 그의 소설 자체를 서사적 뼈대로 삼아 고스란히 따라갈 때 얼마나 공허한 결과가 나오는지는 이치가와 준의 <토니 타키타니>나 트란 안 훙의 <상실의 시대> 같은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마구치는 이를 모르지 않았을 터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의 동명 원작에서 인물과 설정을 차용하지만 그것만을 서사적 뼈대로 삼지는 않는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같은 작품도 참고했다고는 하나 그것으론 불충분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무라카미의 소설은 의외로 영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만 두고 보면 그는 카프카에 필적한다. (실제로 그는 카프카의 「변신」을 차용한 「사랑하는 잠자」를 쓰기도 했다.) 오쓰카 에이지가 조지프 캠벨적인 ‘원질 신화monomyth’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한 무라카미 소설의 서사 구조[8]는 그것이 누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보더라도 분명 보편적이지만, 그 보편성은 ‘무표정한 아이러니를 현대적으로 실천’하는 무라카미의 언어적 장식 없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살펴본 바대로 무라카미적 텍스트를 기능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는 해도 하마구치는 어떤 의미에서도 아이러니의 작가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진정 보편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그에게는 무라카미적 서사 구조를 아이러니 없이 지탱할 다른 방책이 필요하다.

<아사코>의 허구적 세계에 동일본대지진을 주요하게 끌어들일 때부터 ‘국제적(으로 통하는) 동시대 일본영화 만들기’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던 하마구치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한결 보편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고 마침내 인정받았다. 여기서 보편적인 드라마란 특정한 지역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앎이 없이도 여하간 그곳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하는 위생적 서사 구조를 뜻한다. 이만큼이나 동시대의 일본과 무관하게 널리 수용될 수 있는 동시대의 일본을 무대로 한 동시대 일본영화를 본 것이 과연 얼마만인가? 여전히 나는 대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해피 아워>의 세계를 가장 좋아하고,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우연과 상상>의 세 번째 에피소드(‘다시 한 번’)─성적으로 충전된 무라카미적 텍스트도 없고, 그런 텍스트를 읊조리며 소년적 쑥스러움을 매개하는 여성도 나오지 않는, 여러 의미에서 진정한 우정의 영화─가 훨씬 훌륭하다고 보지만, 지금으로서는 동시대의 문제적 영화로서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열정>이나 <심도>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이가 지금과 같은 연출자가 된 것은 <귀여운 여인>을 만들었던 이가 훗날 <비정성시>를 만든 것만큼이나 영화라는 매체의 ‘민주주의’를 웅변적으로 증언하는 기분 좋은 사건이다. ‘재능’이란 낭만적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주니 말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기 전부터, 나는 눈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붉은색 자동차 사진을 보고 다소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가후쿠와 미사키가 홋카이도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아, 이것만은…’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어머니가 산사태로 죽은 고향 집의 폐허를 내려다보며 둘이 서로의 트라우마를 토로하고 어루만지는 클라이맥스는 그 순간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왜 이런 뻔한 무리수를 두는 일을 감행한 것일까? 어느 순간 문득, 하마구치는 그저 국제적 영화작가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20세기 말 일본영화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그 계보를 잇는 유일무이한 적자로서 그리되겠다는 야심을 품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국제적 예술영화 유통망에서 일본영화에 부과되어 온 ‘이중구속’을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일본영화에 부과된 이중구속이란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현대적 미학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동시대적인 드라마나 장르 영화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지향하더라도 봉준호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둘은 모두 하마구치가 존경하는 감독들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본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당대의 미학과 양식을 선도하는 것이면서 보편적인 드라마나 장르 영화를 만드는 것이기도 했던 시대─이를 대표하는 인물은 <라쇼몽>과 <7인의 사무라이>의 구로사와 아키라이며 <교사형>의 오시마 나기사를 거쳐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를 끝으로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한참 전에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특히 서구적 예술영화 유통망은 여전히 이러한 일본영화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9] 하지만 저 이중구속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고, 결국 21세기의 일본영화는 일종의 ‘로컬 시네마’가 되어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가오세 나오미의 ‘일본적 영화’로서 소수의 해외 예술영화 팬들에게 다가가곤 했다. 물론 대단히 특이한 방식으로 대중 장르를 갱신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걸출한 연출자가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에게 그의 영화는 <큐어>나 <도쿄 소나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요령부득이라 여겨지는 듯하다. 구로사와로서는 오랜만에 이중구속을 벗어난 듯한 <스파이의 아내>가 하마구치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점도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다시 보는 동안, 내겐 요즘 영화들보다는 세기가 전환되던 2000년 전후에 보았던 몇몇 일본영화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마구치의 서사 구조는 어쩌면 이 영화들을 가로지르는 과거로의 여행을 위한 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마구치는 자신의 영화적 ‘원체험’이 <백 투 더 퓨처>라고 스스럼없이 밝히곤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인물들을 트라우마적 과거로 이끄는 무대적 장치로 자동차를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브라운 박사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것들로 개조한 타임머신 카 드로리안처럼 그 자체가 여러 영화적 기억의 조합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조합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또는 우연적으로 그리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여하간, 무라카미의 원작에서 차용한 인물과 설정, 그리고 무라카미적인 텍스트는 상당히 개인적인 것에 그칠 수도 있었을 이 ‘조합적’ 여행을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구조에 부드럽게 접속하는 기능을 한다. 


<바람꽃>


홋카이도라고 하면 거기서 유년기를 보냈고 자신의 영화에서 종종 이곳을 소환하기도 했던 영화감독 소마이 신지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그의 유작 <바람꽃>(2000)은 하마구치의 영화를 보는 동안 곳곳에서 떠올랐다. 여기서 우연히 만나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두 남녀는 분홍색 렌터카를 타고 여자의 딸을 만나기 위해 홋카이도로 향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와 오토 부부의 딸이 죽은 해는 소마이가 타계한 해인 2001년이고 운전기사 미사키는 죽은 딸과 동갑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가후쿠 역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젊은 시절 배우 지망생으로 나왔던 스와 노부히로의 데뷔작 <2/듀오>(1997)도 있다. 니시지마를 매개로 삼아 스와와 하마구치의 영화를 느슨하게 전편과 후편 관계로 두고 그가 거듭해서 커플 관계의 파국을 경험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스와의 이름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관련해 이중으로 울린다. 첫째는, 그가 히로시마 태생이고 <H 스토리>와 <히로시마에서 온 편지> 등 히로시마를 영화적으로 다루는 문제를 고민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응답인 2020년 작품 <바람의 목소리>에서, 그는 쓰나미로 부모를 잃고 히로시마에서 친척과 살던 소녀가 홀로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둘째는, 등장인물인 ‘동시에’ 그 인물의 연기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말과 시선과 몸짓을 포착하는 극영화 작업에 일찍부터 관심을 두었던 연출자가 바로 스와라는 점이다. <2/듀오>에서 그가 즉흥에 기대는 방식은 하마구치와 사뭇 다르기는 해도 말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가장 성실하게 되짚고 있는 20세기 최후의 일본영화는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2000)가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아오야마는 올해 3월 21일에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두 영화의 서툰 비교는 삼가기로 하자. 상영 시간이 각각 179분과 217분에 달하는 영화라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다. 마음에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차를 몰고 치유의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끔찍한 사건을 겪고 나서 고통스러워하는 과정까지를 담은 긴 도입부 후에 “2년 후”라는 자막이 뜨면서 새로운 전개로 들어선다는 것도 넘어가기로 하자. 장애로 인해 수화를 사용하거나 실어증에 걸린 인물(들)을 통해 비언어적 소통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자.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보다 어린 두 남녀가 세 개의 꼭짓점을 이루는 트라우마의 삼각형이 어린 남자의 살인 행각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결말부로 이행하는 구조를 띠고 있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라는 대사와 “살라고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죽지는 마”라는 대사가 공명한다는 점에 너무 깊이 몰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구조적 요소들을 제하고 나서 보이는 것이 ‘연출’이다. 그렇다면 하마구치의 ‘연출’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1990년대 중반에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던 옴진리교 사건 ‘이후의 영화’인 <유레카>와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영화’인 <드라이브 마이 카> 사이에는 단순히 시간적인 데 국한되지 않는 어떤 거리감이 있다. 사회적 재난과 자연적 재난의 차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아오야마가 서부극의 신화적 구조를 참조하기는 해도 그의 영화는 결코 신화적 대지 위에서 배회하지 않는다. 화면 내부에 거듭 잡스러운 요소들을 불러들이는 그의 연출로 인해 신화적 추상화가 여간해선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런 요소들을 통해 감지되는 현실이 자꾸 영화 내부로 틈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마구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화적 기억의 대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그것을 청결하게 표백해 신화에 어울리는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위생학과 그 기능이다. 이제 남은 일은 눈 덮인 홋카이도의 대지를 배경으로 치유의 의식을 행하는 두 등장인물-연기자의 말과 시선과 몸짓을 거의 5분 동안 한 호흡으로 담아낸 다소 기이한 구도의 롱테이크 쇼트를 지켜보는 일이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대사로도 이런 순간을 포착해내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방법’에는 솔직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혹시, 성적으로 충전된 것만이 아니라 길고 진부한 대사를 통해서도 배우들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던 것일까? 발화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나 민망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하마구치가 그처럼 큐브릭적인 연출자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여하간,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원폭 돔이 말하는 것


이제 원폭 돔의 쇼트가 어떤 상황에서 등장하는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하마구치의 연출이 성실히 수행하는 기나긴 위생 관리의 여정을 거쳐 홋카이도가 다자키 쓰쿠루의 핀란드처럼 하나의 보편적 ‘풍경’으로 재탄생한 다음이다. 남은 것은 다시 돌아온 히로시마다. 가후쿠와 미사키가 홋카이도에 가기 전까지 영화의 주된 무대였던 이곳이다. 그 무엇보다 이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건물이면서도 여태 보이지 않았던 원폭 돔이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이 최후의 상징물을 위생적으로 보편화하기 위한 ‘문학’으로서 동원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문학’은 위생 관리를 대리 수행하는 무대극으로 상연된다. 그런데 하마구치의 위생적 강박관념은 분명 그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예상치 못했을 대단히 문제적인 ‘몽타주 효과’를 낳는다.

해질녘에 촬영된 이 원폭 돔의 쇼트를 보면서 “기다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는 가후쿠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두 개의 쇼트와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나는 영화의 첫 번째 쇼트다. 성교 중 트랜스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오토의 상반신을 창밖의 어스름을 배경으로 포착한 쇼트 말이다. 다른 하나는 가후쿠와 나란히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다카쓰키의 얼굴을 정면에서 잡은 쇼트다. 여기서 그는 가후쿠를 똑바로 바라보며 생전의 오토音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소리音에 들린’ 사람처럼 구술한다. 두 쇼트 모두 약간의 빛이 감도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사로잡혀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키가 자신의 엄마에겐 두 개의 인격이 있었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미사키에게 폭력을 가하고 난 다음이면 그녀는 사치라는 이름의 여덟 살 난 소녀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다. 미사키의 고향 집처럼 폐허인 채로 남아 있는 원폭 돔은 오토와 다카쓰키처럼 무언가에 사로잡혀 “기다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가 듣는 것은 바냐를 연기하는 가후쿠의 목소리다. 이렇게 가후쿠는 오토/소리音가 된다. 우리는 오토와 다카쓰키의 내면은 볼 수 없었던 반면 원폭 돔의 내면은 볼 수 있다. 원폭 돔에 바로 뒤이어 <바냐 아저씨> 공연 중인 극장의 무대를 보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바냐는 매형이자 고매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세레브랴코프가 자신을 착취해왔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중이다. 

줄곧 어딘가 역사 바깥에서만 맴도는 것 같던 영화가 돌연 이상한 방식으로 역사의 복화술을 펼친다. 피해자로서의 바냐의 목소리가 피해자로서의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웅변하는 원폭 돔의 이미지와 겹쳐질 때, 무라카미의 다자키 쓰쿠루가 감행하는 치유의 순례는 오늘날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정신에 상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갈한 오쓰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10] 하마구치는 뜻밖의 장소에서 무라카미와 다시 만나고 또 그와 위생적으로 공명한다. 그러나 반동적인 것은 언제나 순수한 것에 깃든다.


[1] 웹진 《가미노타네》에 수록된 대담(www.kaminotane.com/2021/09/08/17146)에서 하마구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원폭 돔 쇼트는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편집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일단 찍어두었던 것을 활용한 것이다. “(…) 보수 공사 중이었어요. 덕분에 이른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원폭 돔’이 아니라 촬영한 시간대를 포함해 우연히 우리 눈앞에 나타난 ‘그 순간의 원폭 돔’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죠. 나와 개별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면서, 그렇다면 써도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원폭 돔은 보통 아주 단적으로 ‘히로시마’를 상징하는 데 그칠 것 같지만, 이런 상태를 찍은 컷이라면 영화가 도달하는 장소로서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하마구치 류스케・미야케 쇼・미우라 데쓰야, 「영화의 ‘연출’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필로》 2021년 9/10월호, 131쪽.

[2] 다음 책에 번역, 수록되어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노하라 다다시・다카하시 도모유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이환미 옮김, 모쿠슈라, 2022, 34~35쪽.

[3] 같은 책, 27~28쪽.

[4] 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페드로 코스타, 그리고 홍상수의 영화를 주요 참조점으로 삼아 ‘형상-픽션’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복합체의 영화적 존재론을 개진한 바 있다. 유운성, 「형상적 픽션을 향하여─커모드, 아우어바흐, 그리고 영화」, 《문학과사회 하이픈》 2017년 가을호, 172~211쪽.

[5] Stanely Cavell, The World Viewed: Reflections on the Ontology of Film, Enlarged ed., Harvard University Press, 1979, pp.25~29.

[6] “무표정한 아이러니의 현대적 실천”이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패스티쉬적 특성에 대한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의로, 가라타니 고진은 이를 자신의 무라카미 비평에서 원용한 바 있다. 가라타니 고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풍경」, 『역사와 반복』,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08, 163~164쪽. 다만 가라타니는 무라카미의 『1973년의 핀볼』이나 『양을 둘러싼 모험』이 무표정한 아이러니의 현대적 실천처럼 보이면서도 그 뒤에 “강한 집착과 전도의 의지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이런 ‘숨겨진 동기’는 무라카미 이후의 무라카미적 작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패스티쉬가 된다.” 가라타니가 이 글을 발표한 것은 1989년이다. 오늘날의 무라카미 자신,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무라카미 원작의 구조만이 아니라 ‘문체’까지도 차용해 각본을 쓴 하마구치 또한, ‘문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무라카미 이후의 무라카미적 작가”에 속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가라타니가 인용한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는 다음 책에 번역, 수록되어 있다. 할 포스터 엮음, 『반미학』, 윤호병 외 옮김, 현대미학사, 1993/2002, 176~197쪽. 

[7] 가라타니 고진, 앞의 글, 179쪽. 

[8]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책(특히 1장과 2장)을 참고. 오쓰카 에이지,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선정우 옮김, 북바이북, 2017.

[9] 10년 전에 나는 다른 글에서 일본영화에 부과된 이중구속의 문제를 오늘날 국제영화제의 ‘검열-효과’와 연관지어 논한 바 있다. 유운성, 「영화제의 검열-효과에 관한 노트」, 《인문예술잡지F》 제4호(2012년 1월), 7~14쪽.

[10]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해 논하고 있는 다음 책의 7장을 참고. 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선정우 옮김, 리시올, 2020. 

2022-11-07

아르케이온의 도둑: 고다르의 <이미지 북>

 

※ 아래 글은 《오큘로 009: 열렬한 희망, 고다르와 이미지의 책》(2021년 10월 10일 발행)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이 글의 후반부는 고다르와 파졸리니의 관계에 대해 요즘 생각해보고 있는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은 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예수의 말,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삶과 사상을 떠올리면서 파졸리니의 미완의 프로젝트 <성 바울>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다시 읽어볼 때다.


잠시 생각해 보자. 고다르의 <이미지 북> 도입부에 나온 ‘archives et morale’이라는 자막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어렵지 않게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분명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이 작품의 꽤 후반부에 나오는 ‘archéologie et pirates’이라는 자막은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도 여간해선 떠오르지 않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리스어 ‘아르케(ἀρχή)’에 공통의 기원을 두고 있는 두 단어, 즉‘archives’와 ‘archéologie’가 작품의 앞뒤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거듭 보고 난 다음이었다. 예민한 이들이라면 사정이 달랐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다(혹은 없다)고 하는 것, 즉 연상─정확하게는 ‘association/dissociation’의 과정이 부단히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고다르의 작업을 움직이는 제일의 원리라는 것을 여기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아카이브와 고고학이라는 서로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용어들이 <이미지 북>에 등장하고 있음을 일단 깨닫고 나니, 결코 고다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 두 명의 사상가와 그들의 저서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는 『지식의 고고학』의 미셸 푸코이고 다른 하나는 『아카이브병』의 자크 데리다이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고다르가 그의 영화에서 직접 언급하거나 그것을 통해 환기시키는 철학적・예술적 저술들을 부단히 떠올리며 그의 영화에 접근하려 드는 이는 자신이 어느덧 과대망상적 독해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그러니, 주의하도록 하자, 고다르의 영화에서 몽테스키외와 베카신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병』의 도입부를 여기 옮겨놓고 고다르의 영화와 함께 살펴보자 제안하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 (다짐은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 우리는 떠올려본다, 아르케란 시작(commencement)과 명령(commandement)을 한꺼번에 거명한다는 것을. 분명 이러한 거명은 동일한 것 안에 두 개의 원리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자연이나 역사를 따르는 원리─물리적, 역사적 혹은 존재론적 원리─가 그 하나로 여기는 일이 시작되는 곳이고, 율법을 따르는 원리─입법론적 원리─가 다른 하나로 여기는 인간들과 신들이 명령을 내리는 곳이자 권위와 사회 질서가 행사되는 곳으로서 바로 이곳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온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매개로 고다르의 영화에 접근할 때 과대망상적 독해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으면서 그것도 오직 피상적으로만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다르 자신의 독서가 언제나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데리다의 독자라면 위에 인용한 도입부만을 읽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비단 독서에 있어서만 그러할까? ‘법의 정신’이 여러 소제목들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해서 <이미지 북>의 이해를 위해서는 몽테스키외에 대한 면밀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이 터무니없는 만큼이나, 한스 오테가 작곡한 《소리의 책(Das Buch der Klänge)》이 영화에 사용되고 제목을 짓는 데도 영감을 주었다 해서 이 곡의 의의를 과장하는 일 또한 그러하다. (고다르와 음반사 ECM 레코드와의 협력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미지 북>에 사용된 오테의 곡 역시 ECM에서 발매된 헤르베르트 헨크의 연주 음반이다.)

일단 거칠게 나눠보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을 묻는 고고학이 시작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카이브는 명령과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카이브 자체가 직접 어떤 명령을 내리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명령에 모종의 권위를 부여한다─‘이러이러한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게끔─는 점은 분명하다. 대체로 이러한 명령은 이론적인 법칙보다는 실천적인 율법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오늘날에는 예술적 판단마저도 아카이브에 근거해 정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조사연구의 충실함과 윤리적 정당성에 기대어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식이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미적 가치판단의 출구 없는 미궁에 다시 빠져들 필요야 없겠지만, 그런 식의 평온한 나태함을 비평적 입장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미지 북>의 도입부에 ‘archives et morale’이라는 자막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서 고다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카이브 및 그것에 근거를 둔 명령의 실천적인 차원이라는 쪽에 확실히 무게가 실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고다르의 방식이 아니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도 아카이브는 반드시 고고학과 더불어 사유되는 것이며 고고학은 반드시 아카이브와 더불어 사유되는 것이다. 아카이브 없는 고고학은 공허하고 고고학 없는 아카이브는 맹목이라고 믿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고다르를 진정 에세이스트적 정신의 소유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는 그가 시작과 명령이라는 서로 환원 불가능한 아르케의 의미들을 언제나 동시에 붙들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르케란 오직 아포리아를 통해서만 사유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리하여 그의 영화는 아도르노가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 가정 내지는 전제에 입각해 에세이적 움직임의 궤적을 따르게 된다.


하나의 단어가 여러 다른 것들을 의미한다면 그것들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감춰져 있다 하더라도 단어의 통일성은 대상 자체에 있는 통일성을 상기시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일성을 오늘날의 보수적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그저 언어적 친연성으로 간주해 버려서는 안 된다. (……) 에세이는 추론적 절차에 단순히 대립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 에세이는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의 명제들이 전체로서 서로 어울려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에세이는 논리적 규준들을 따른다.


오늘날 에세이적 작업이라 하면 일종의 자유연상을 따르는 스타일을 취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아도르노는 그런 수필 같은 작업은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아도르노 자신은 편성(configuration)이나 성좌(constellation)라고 부르지만 폴 발레리는 유추(analogy)라고 부르고 마츠모토 토시오는 은유라고 부르며 앙드레 바쟁은 수평적 몽타주라고 부르는 에세이적 방법─물론 여기에 구체(球體)의 형태를 띤 책과 영화를 상상해본 에이젠슈테인의 아이디어를 더해도 좋다─에 대해 생각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에세이란 “문화적으로 미리 결정된 특수한 대상들”에 대한 고찰로서 이러한 대상들은 푸코라면 담론 구성체라고 불렀을 법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 에세이적 방법은 연상의 흐름을 따라 유사한 것들을 배열하는 작업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업이 진정 겨냥하고 있는 것은 서로 떨어진 불연속적 요소들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상동성(homology)─오늘의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발레리의 용어 자체가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방법’ 속에서 에세이적 정수를 읽어내는 그의 통찰이다─을 파악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미지 북>에서 고고학과 아카이브, 시작과 명령, 존재론적 원리와 입법론적 원리라는 양극을 부지런히 오가는 고다르가 겨냥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아르케는 결코 규정되거나 정의되는 법은 없지만 움직임 속에서, 아니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서, 그것도 오직 사이에서만 경험된다.

무엇보다도, 이론적으로 상관적인 짝─archive/archéologie─을 고찰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상반적인 짝─morale/pirates─을 함께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그다운 것이다. 이에 착안하면 ‘archives et morale’과 ‘archéologie et pirates’라는 일견 기이해 보이는 조합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를테면 1960년대에 발표한 <중국 여인>에서 그가 마오주의의 의미를 탐문하는 방식은 그것을 여름 휴가와 나란히 두고 그 둘을 동시에 산출하는 보편성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었다.) 무언가의 의미는 그것의 속성을 규정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다른 관념들과 이리저리 결합해보는 시도들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고 보는 태도라고나 할까? 들뢰즈가 고다르를 두고 무언가의 의미를 단정하는 계사 ‘이다(est)’의 영화작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예하는 접속사 ‘그리고(et)’의 영화작가라고 불렀던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이는 나무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닮은 것이다. 여하간, 덕분에 우리는 쉽사리 유사성의 함정에 빠져드는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된다. 대신 노략질(pirates)을 윤리(morale)로 취한다는 것─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미지 북>의 핵심적인 테제가 아닐까?─의 의미에 대해 고려해보게 된다.


그림 1


가령 <이미지 북>에서 고다르가 혁명에 관해 이야기할 때 거듭 등장하는 이미지 하나를 살펴보자. 그것은 흰옷을 입은 한 소년이 길에서 붉은색 바퀴 같은 것을 굴리고 있는 이미지(그림 1)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바퀴가 아니라 필름을 감는 데 쓰는 릴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워낙 저화질인 데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이미지라서 정작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붉은색 바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고다르가 혁명에 대해 고찰하는 방식은 역시 말과 이미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식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말을 훔쳐서 이미지에 건네주고 다시 이미지를 훔쳐서 말에 건네준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혁명(révolution)은 일단 ‘굴린다(revolve/ribouler)’는 행위와의 연계 속에서 파악되고 이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구르는 바퀴의 이미지가 화면에 떠오른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년이 굴리고 있는 것은 단순한 바퀴가 아니라 필름이 감겨 있는 릴이다. 그는 이 릴을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혹시 훔친 것은 아닐까? 고다르적 연상의 노선에서 혁명이란 ‘다시-훔친다(re-voler)’는 행위와도 얼마든지 연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혁명과 연계된 이러한 행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겨냥해 수행되는 것일까? 고다르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화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릴을 굴리며 뛰어가는 소년의 이미지는 일단 (고다르의 동반자 안느-마리 미에빌의 저서 제목으로 쓰인) ‘말하는 이미지들(images en parole)’이라는 텍스트와 몽타주되며, 얼마 후에는 붓으로 쓰여진 ‘말과 이미지(parole et image)’라는 텍스트와 다시 몽타주된다(그림 2).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인가? 


그림 2


확실한 것은, 다시 훔쳐내야 하는 것도 영화이고 다시 굴려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도 영화라는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노략질은 하나의 윤리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를 무엇으로부터 훔쳐내야 한다는 말인가? 일단 아카이브를 교묘하고 기민하게 활용하는 고착화된 명령들로부터다. 고착화된 명령들은 CMD 혹은 명령 프롬프트와 다를 바 없으며, 이런 명령들과 관계하는 아카이브는 점점 데이터베이스화된다. 푸코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역사적 아프리오리로서의 아카이브가 형식적 아프리오리로서의 데이터베이스로 화하는 것이다.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고다르가 쓰는 용어로는 전자는 랑가주, 그리고 후자는 랑그에 대략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고다르에게 있어 랑가주가 역사적 아프리오리에 상응한다는 것은 흔히 오해하듯 그가 제멋대로의 임의적인 사적(私的) 언어에 집착하는 이가 아님을 암시한다. <이미지 북>의 종반부에서 그는 다짐하듯 말한다. “하지만 랑그는 결코 랑가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mais la langue ne serait jamais le langage)”라고. 그렇다, 데이터베이스는 결코 아카이브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혹은, 언제나 저항이, 아니 노략질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미 <영화의 역사(들)>에서부터 고다르는 어느덧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거치는 동안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전화(正傳化)되고 문화적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린 영화 이미지들을 ‘도용’─다시 강조하건대, 훔치고 굴리기─하여 그것들을 어떻게든 중립화하고 비결정적인 것으로 변환하려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는 지독히 반(反)아카이브적인 인물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업이야말로 아카이브를 데이터베이스화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분명 고다르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아카이브의 질서를 교란하고 흐트러뜨린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결과로 얻은 이미지들을 다시 아카이브에 자리매김하고 특수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에서 고다르의 작업은 진정 고고학적이다. 이는 고고학이란 담론들을 아카이브의 요소 내에서 특수화된 실천들로 기술하는 것이라고 했던 푸코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푸코와 마찬가지로 고다르 역시 고고학을 어떤 시원(始原)이나 창조적 개시에 대한 탐구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온갖 고유명들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주의하라고, 이미 말했다. 고다르의 영화에서 몽테스키외와 베카신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그런데 이쯤에서 『지식의 고고학』의 한 부분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결국 다짐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어쩐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원저의 냉철함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이정우의 번역으로 해당 부분을 읽어 보자.


고고학은 (……) 단지 언표들의 규칙성을 수립하고자 할 뿐이다. 여기에서의 규칙성이란 (……) 언표적 기능이 수행되도록 해주는 조건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 고고학은 발명을 추구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최초로 어떤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 이 순간(감동적인, 우리는 이에 동의한다)에 무감각한 것으로 머무른다. 즉 고고학은 이 축제의 아침들이 내뿜는 빛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 고고학이 린네 또는 뷔퐁의, 페티 또는 리카르도의, 피넬 또는 비샤의 텍스트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정초하는 성자(聖者)들의 목록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담론적 실천의 규칙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부 표기를 수정하고 ‘언설(言說)’ 대신 ‘담론’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여기서 푸코가 ‘규칙성(régularité)’이라 부른 것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고다르의 용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단어의 연관성에 기대어 ‘규칙(règle)’을 그 후보로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이미지 북>에서 고다르가 “나는 규칙도 예외도 알지 못했다(je ne connaissais ni les règles ni les exception)”는 몽테스키외의 회고의 말을 따라 읊조릴 때, 이는 그가 규칙과 예외를 모두 가능케 하는 ‘조건들의 집합’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고다르가 『법의 정신』에서 발췌해 인용하고 있는 부분은 아니나다를까 모두 이 책의 서문 몇 페이지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책에 피상적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푸코가 규칙성이라 부른 이러한 조건들의 집합, 이를 가리키는 고다르식 용어가 바로 ‘법(loi)’이다. 그의 영화에서 존재론적인 것과 입법론적인 것은 동일한 무대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서로 교차하며 아르케란 오직 그들 사이에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처럼, 법이라는 말 또한 이론적인 법칙과 실천적인 율법 양자를 왕복하는 움직임의 궤적을 통해서만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푸코의 기획이 무엇보다 언표들의 규칙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고다르의 고고학적 실천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미지들의 법과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들의 법이란 이미지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제도적인 측면에서 따라야 할 율법적 규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제도적으로 율법화되곤 할 때마다 고다르는 노략질(pirates)로 맞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에 여기저기서 ‘훔쳐온’ 온갖 이미지들이 만연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지들의 법이란 이미지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미학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제공해 주는 이론적 법칙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법이 미학적으로 이론화되곤 할 때마다 고다르는 윤리(morale)를 내세우는 것으로 맞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에 정치적 표상으로 들끓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고 온갖 정치적 슬로건들이 만연하는 이유다. 이렇게 보면 그가 1982년에 발표한 <열정>에 나오는 “영화에는 법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지(Il n'y a pas de loi au cinéma, c'est pour ça qu'on l'aime encore)”라는 대사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흔히 이 대사 속의 ‘loi’는 ‘규칙’─공식적인 영문판 프린트에서는 ‘rule’─으로 번역되었고 또 그렇게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원래 대사의 반어적 뉘앙스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법의 부재를 두고 희희낙락거릴 수도 없지만, 그것을 정의 내리고 규정할 수도 없다. ‘법의 정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미지 북>의 4부에서 고다르는 자신의 고고학적 실천과 관련된 곤혹스러움을 몽테스키외의 말을 빌려 읊조리고 있다. 고다르가 낭독하고 있는 부분을 어쩐지 친밀한 느낌을 주는 이재형의 번역으로 읽어 보자.


만일 내가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갖게 하고, 복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종하는 데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믿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믿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편견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인간들을 깨우쳐주려고 애씀으로써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이 보편적 덕성을 실천할 수 있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에 따르는 유연한 존재인 인간은 그에게 그 자신의 본성을 보여주면 그것을 이해할 수도 있고, 그것을 빼앗으면 그것에 대한 감정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다. (……) 나는 이 작업을 (……) 수도 없이 포기했다. 나는 구상 따위는 안 짜고 그냥 내 목표만 따랐다. 나는 규칙도 모르고 예외도 몰랐다. 내가 진실을 발견한 것은 오직 그것을 잃어버리기 위해서였다. [‘nature’는 ‘성격’ 대신 ‘본성’으로, ‘ouvrage’는 ‘책’ 대신 ‘작업’으로 옮겼으며, 번역을 아주 약간 수정하였다.]


위의 문장들을 고다르가 이따금 낭독하는 동안 정작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 학살과 살인과 모욕과 감금과 순교와 처형 등의 광경을 담은 폭력의 이미지들이다. 영화작가로서 고다르가 근심하는 지점은 이러한 이미지들과 연관된 현실의 폭력에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다루는 ‘법(loi)’ 자체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배우 헨리 폰다가 출연한 두 편의 미국영화, 즉 존 포드의 1939년 작품 <젊은 날의 링컨>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6년 작품 <누명 쓴 사나이>를 흥미롭게 끌어온다. 전자의 영화에서는 법─정확히는 법률 서적─과의 만남에 들떠 있는 젊은 폰다의 모습을, 후자의 영화에서는 감옥에 갇힌 채 법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나이든 폰다의 모습을 발췌해 보여준다(그림 3).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법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il y a quelque chose qui cloche dans la loi)”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서 법은 결코 사법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것은 실천적인 정의론과도 거의 관련이 없다. 여기서 고다르는 할리우드라는 하나의 역사적 아프리오리가 제공했던 규칙성으로서의 법이 특정한 순간에 정립되고 붕괴되는 국면들─1939년과 1956년─을 폰다의 이미지들을 통해 포착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림 3


돌이켜 보면,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는 이미지들의 법이 아포리아를 통해서만 파악되는 아르케이길 그치고 일종의 제도이자 관습법이 되었을 무렵 시도된 일련의 혁명 속에 있는 것이었다.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로서의 법을 다시 아포리아 속에 두라는 요청, 이는 법의 정신을 회복하라는 요청이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자신들의 시원(始原)적 지위를 과시하지도 않고 명령 프롬프트를 통해 호출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요소도 아닌 채로 존재하는 곳, <이미지 북>의 고다르는 그곳을 캐나다 실험영화 작가 마이클 스노우의 표현을 빌려 ‘중앙 지역(la région centrale)’이라 부른다. 이 영화의 5부는 여러 아랍영화에서 발췌한 이미지들로 가득한데 이것들은 서구화된 시네필들의 기억 속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고다르는 서구적 시네필의 정전들과 단단히 묶여 있는 이미지들의 갱생이란 역시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온 노략질의 대가가 여전히 새로운 아르케이온을 물색하고 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