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3

영원한 불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아래 글은 대한항공 기내지 《비욘드》 2019년 4월호에 기고한 것이다. 지난 4월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탄생한 지 꼭 80주년이 되는 때였다.) 


<영원한 젊음 Youth Without Youth>(2007)


1970년대 ‘새로운 할리우드’의 핵심적 인물이었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어느 때부터인가 ‘실패한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평적 반전을 거쳐 그에게 덧씌워진 한때의 거물이라는 이미지는 바야흐로 80세를 맞은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마음의 저편>(1982)부터 <트윅스트>(2011)에 이르는, 대체로 미적지근한 평가를 받거나 때로 혹평을 받았던 1980년대 이후 코폴라의 영화들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재평가는 종종, 그 호의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코폴라 작품들이 <대부> 1부(1972)와 2부(1974), <도청>(1974),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1979) 같은 1970년대의 걸작들에는 못 미치지만 예사로운 영화들보다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는 식의 논지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바꿔 말하자면, 코폴라가 1970년대에 너무 뛰어난 영화들을 내놓은 나머지 이들 영화의 그늘에 가려 그 이후의 영화들이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식이다.


<트윅스트 Twixt>(2011)


<레인메이커>(1997) 이후 한동안 연출에서 손을 뗀 것처럼 보였던 코폴라가 21세기 들어 <영원한 젊음>(2007)으로 돌아왔을 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우아한 걸작은 종종 예상치 못한 샛길로 빠져드는 요령부득의 내러티브를 지닌 범작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코폴라가 2년 후 내놓은 <테트로>(2009)와 더불어, 1970년대의 공인된 걸작들에 필적하는 말년의 양식의 빼어난 예인 동시에 코폴라 영화들을 가로지르는 모티브와 강박관념 일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여행하기를 거듭하다 마침내 그 핵심에 놓인 ‘불화’를 용감하게 응시하는 영웅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0년대 후반에, 영화평론가 앤드류 새리스는 아직 <대부>를 연출한 거물이 되기 전이었던 코폴라의 초기작만을 본 상태에서 놀랄 만한 혜안으로 이 젊은 감독의 특징을 간파해냈다. 그는 코폴라의 UCLA 졸업작품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너는 이제 다 컸어>(1966)와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1967)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졸업>에서의 니콜스의 연출이 <너는 이제 다 컸어>에서의 코폴라의 연출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니콜스는 좋은 영화들만을 참조하는 반면 코폴라는 이따금 나쁜 영화들을 참조한다는 것이다.” 다분히 양가적인 뜻이 있는 문장이지만, 여하간 여기서 새리스는 코폴라 영화의 핵심을 짚고 있다. 

<대부>가 1970년대 새로운 할리우드가 낳은 ‘고급’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B급 영화적인 폭력 장면과 선정영화(exploitation movie)에나 어울릴 법한 누드 장면들이 적잖이 삽입되어 있음도 사실이다. 다만 세례식과 일련의 살인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후반부의 유명한 시퀀스에서처럼 솜씨 좋게 주류영화의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 있을 뿐이다. 코폴라가 B급 영화의 산실인 로저 코먼의 제작사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에서 영화 경험을 쌓았다는 것은 ‘나쁜 영화들’에 대한 코폴라의 집착에 부분적인 설명밖에는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는 할리우드 고전기 영화는 물론이고 유럽 예술영화에서도 자양을 취하는 한편, 공식적 영화사(史)에는 등재되지 못한, 아니 심지어 등재될 가망이 없는 영화들(이를테면 포르노그래피)까지 넘나들면서 영화라는 우주의 불균질성 자체를 자신의 영화 속에 껴안으려 한 드문 미국 감독이다. 이는 코폴라와 마찬가지로 코먼의 밑에서 영화 경험을 쌓은 마틴 스콜세지나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같은 이들에게선 거의 감지되지 않는 특징이다. 


<디멘시아 13 Dementia 13>(1963)


로저 코먼이 제작비를 댄 저예산 공포영화 <디멘시아 13>(1963)으로 데뷔한 코폴라는 할리우드의 거물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천출(賤出)을 굳이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즈니가 제작하고 마이클 잭슨이 주연을 맡은 테마파크용 3D 뮤직비디오 <캡틴 이오>(1986)는 그 제작비와 일급의 제작진 구성을 고려하면 기이하다 할 만큼 B급 SF영화의 감성으로 넘쳐난다. 짐짓 우아한 시대극 멜로드라마의 외양을 취한 <드라큘라>(1992)에는 주로 1970년대에 양산된 ‘유로트래쉬(Eurotrash)’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섹슈얼한 이미지와 수간을 연상케 하는 장면까지 등장하고 있다.


<캡틴 이오 Captain EO>(1986)


확실히 코폴라의 영화는 종종 쉬이 통합되지 않는 불균질한 요소들과 스타일들이 뒤섞여 있는 불화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대부> 1부와 2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뉴욕에서 촬영된 장면들과 시칠리아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그 시각적 설계에 있어 매우 다르다. <대부> 2부의 경우, 마피아 두 세대의 삶은 별다른 서사적 동기화 없이 과감하게 교차되고 있다. 코폴라가 여행 혹은 여정의 플롯을 선호한다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상이한 장소 혹은 시간 사이를 오가면서 그때마다 스타일 상의 변이를 꾀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된다. 이의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물론 <도청>에 이어 두 번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지옥의 묵시록>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임신 사실을 알고 가출해 여행길에 오른 주부의 이야기인 <레인 피플>(1969)과 이혼을 앞둔 중년 주부가 돌연 시간을 거슬러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페기 수 결혼하다>(1986)처럼 유사한 모티브를 각각 공간적 혹은 시간적 여정으로 변주해낸 사례도 있다.


<레인 피플 Rain People>(1969)


코폴라적인 불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각인된 곳은 다름 아닌 그의 인물들의 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종종 아직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몸과 마음의 불화에 시달리곤 한다. 코폴라적 인물이란 죽은 여동생의 망령에 사로잡힌 청년이거나(<디멘시아 13>),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소년이거나(<너는 이제 다 컸어>), 임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젊은 주부이거나(<레인 피플>),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상으로 예기치 않게 마피아 가족과 조직 전체를 떠맡게 된 샌님이거나(<대부>), 어쩐지 사십 대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는 이십 대거나(<럼블 피쉬>(1983)) 십 대의 몸으로 돌아가 고교 시절을 다시 겪게 되는 중년 주부이거나(<페기 수 결혼하다>), 죽지 않는 몸으로 수백 년을 살아온 흡혈귀이거나(<드라큘라>), 조로증에 걸려 성인의 몸을 하고 살아가는 소년(<잭>(1996))이다.

공간적으로는 루마니아, 스위스, 인도, 그리고 몰타를,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 2차 대전 전후의 시기를 넘나드는 <영원한 젊음>에서, 번개를 맞고 돌연 청년의 몸을 갖게 된 언어학자는 과거에 죽은 연인과 꼭 닮은 여인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생의 존재들에 종종 사로잡히는가 하면, 그로부터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때마다 점점 더 먼 고대의 존재에 사로잡히고 점점 더 빠르게 나이 든 모습이 되어 간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원작 소설에서 코폴라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가로지르기 위한 여정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그가 그 여정의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진실은 자신의 몸과 불화하는 두 존재 간의 영원한 불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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