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9

사진적 인물과 영화적 인물: <풀 마이 데이지>


※ 아래는 사진잡지 《보스토크》 제19호(2020.1.30 발행)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로버트 프랭크의 <풀 마이 데이지>는 아래 링크에서 전편을 감상(영문자막 선택 가능)할 수 있다.

<풀 마이 데이지> 보기  https://vimeo.com/92403607 


지난해 9월 9일 세상을 떠난 현대사진의 거장 로버트 프랭크(1924~2019)는 생전에 필름과 비디오로 30여 편의 장・단편을 만든 영화작가이기도 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국인들(The Americans)》(1958년에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작가 잭 케루악의 서문이 실린 미국판은 1959년에 출간)을 비롯한 그의 작업은, 한미사진미술관(2013년)과 아트스페이스 루모스(2018년) 등에서의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도 포괄적으로 소개되었다. 각각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프랭크의 영화작품들도 단편 위주로나마 일부 상영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이 국내의 영화제나 예술영화관 및 시네마테크 등을 통해 상영된 적은 없다. 프랭크의 사진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1984)이나 구스 반 산트의 <말라 노체>(1986) 및 <아이다호>(1991) 등이 영화광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음을 떠올려보면, 폭넓은 관심을 가진 영화광들 사이에서조차 영화작가로서의 프랭크가 여전히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사진작가로 경력을 시작했거나 사진과 영화 작업을 병행한 숱한 작가들(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다룬 작가들로는 레이몽 드파르동, 크리스 마커, 홀리스 프램튼 등) 가운데 프랭크의 영화 작업에 대한 무관심은 특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사진 1

프랭크의 영화 작업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해외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독일의 예술 서적 출판의 명가 슈타이들(Steidl)이 2008년에 시작한 ‘로버트 프랭크 프로젝트’는, 프랭크가 기존에 내놓은 모든 사진집을 재출간하고 새로운 사진집을 기획・출간하는 한편, 더불어 그의 모든 영화를 DVD로 출시하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프랭크의 영화작품 전체를 망라하는 DVD 전집 프로젝트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오다 2016년에 8장의 DVD(NTSC 포맷 4장과 PAL 포맷 4장으로 각각의 구성은 동일)에 담긴 27편의 영화와 네 권의 책자로 구성된 ‘로버트 프랭크: 영화작품들(Robert Frank: Film Works)’(사진 1)로 묶여 나오면서 결실을 보게 된다. 사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전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 법적인 문제 때문이겠지만, 롤링스톤스의 1972년 미국 투어를 기록한 악명높은 다큐멘터리 <칵서커 블루스(Cocksucker Blues)>(1972)는 빠져 있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는 이 작품을 보고 난 이후, “로버트, 좆나게 좋은 영화긴 한데 이게 미국에서 상영되면 우린 다시는 그 나라로 못 들어갈 거야”라고 하며 (몇몇 조건에 따른 제한적인 상영 이외에는) 개봉을 금지시켰다. 또한, 그로서는 드물게 35mm 필름으로 촬영한 프랭크의 유일한 장편극영화인 <캔디 마운틴(Candy Mountain)>(1987)과 몇몇 단편들도 슈타이들의 DVD 박스셋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한편, 프랭크의 몇몇 영화에서 편집자로 참여한 로라 이스라엘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깜박이지 마라: 로버트 프랭크(Don’t Blink: Robert Frank)>(2015)가 뉴욕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된 것도 프랭크의 영화 작업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에서는 아직 상영된 적이 없지만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젼편을 볼 수 있다. https://archive.org/details/DontBlink-RobertFrank사진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영화작가로서의 그의 이력에도 동등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이따금 프랭크는 자신의 영화들을 다시 보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가 젊은 시절의 장-뤽 고다르의 모습이 담긴 엽서를 들고 거기 쓰여진 “명료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모호한 관념들에 맞서야 한다”는 고다르의 말을 읽으며 “최고의 지혜지(wisdom on the top)!”라고 논평할 때(사진 2), 우린 그것이 다름 아닌 프랭크 자신의 작업에 대한 언급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사진 2

여기서 나는 프랭크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두고 그의 영화 작업을 개괄하기보다는, 사진집 《미국인들》과 1958년에 제작한 그의 첫 단편영화인 <풀 마이 데이지(Pull My Daisy)>에 집중해서, 그를 사진에서 영화로 이끈 숨은 동기가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그저 가설에 그칠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러한 전환은 사진이 결여하고 있는 영화적 이미지의 ‘움직임’에 이끌린 결과라는 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게다가 프랭크 자신도 이런 식의 설명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83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미국인들》이 1955년부터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결과(의 일부)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육체의 이동만이 아니었고 이미지 자체가 이동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뉴욕의 풍경을 찍기도 하고 영화용 16mm 카메라로 촬영해 얻은 일련의 이미지를 나란히 콜라주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풀 마이 데이지>를 만들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만) 생각해도 될까?

《미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사진들에 포착된 사람들은 존재론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는 것인지 따져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가령 이 사진집에 수록된 첫 사진(사진 3)을 보자. 거리에서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고 있던 프랭크가 우연히 포착한 스냅숏처럼 보인다. 아마 실제로도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에게 별다른 연출을 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 사실적 존재를 보고 있으면서도 또한 어떤 허구적 존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꼭 프랭크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통해 포착된 사람들은 언제나 이처럼 존재론적 양극에 동시에 자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존재론적 형상을 ‘사진적 인물(photographic character)’이라 부르기로 하자.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을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연출해 얻은 사진의 경우에도 사진적 인물의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 메이크업과 미장센으로 허구적 존재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사실적 존재의 흔적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사진에서는 사실적 존재와 허구적 존재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 사실성에 집착하는 사진(보도사진)의 인물일수록 들여다보면 볼수록 온갖 이야기를 감춘 존재처럼 보이고, 기능적으로 허구성에 집착하는 사진(광고사진)의 인물일수록 관람자 앞에 그의 얼굴과 몸에 달라붙은 사실적 특징들을 무방비로 노출해버리고 만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사진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오래 들여다보는 ‘심술궂은’ 관람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처럼 역설적인 긴장이야말로 인물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쾌락의 원천인 것이다.


사진 3
 

우리가 흔히 사실적인 사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극도로 사실성을 강화함으로써가 아니라 교묘하게 허구적인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얻어진다. 이미 지적했듯이, 사진의 사실성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허구성이 동시에 강화되면서 급기야 전도(顚倒)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적나라한 포르노사진은 언제나 섹스라는 사실 자체를 허구로 만든다.) 따라서 사실적인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허구를 적절히 누수시키는 일이 요구된다. 증명사진을 찍는 사진관에서 작업했던 익명의 사진사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증명사진이란 사진 속의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끔 상투적으로 가공된 사진이다.) 종종 초점이 어긋나고 기울어져 있기도 하며 흔들리는 상태에서 찍은 듯한 프랭크의 사진은 자칫 그 저널리즘적 특성으로 인해 사실성의 전도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의 진정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프랭크가 여러 다른 방식으로 허구를 누수시켜 전도를 막는 방식에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사진의 경우, 바람에 날려 짐짓 자연스럽게 오른쪽 창가 쪽 인물의 얼굴을 가려버리는 성조기(국가라는 허구)와 왼쪽 창가 쪽 인물의 얼굴에 슬쩍 드리워진 그림자(내면이라는 허구)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는 연출의 결과가 아니라 프랭크 자신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이러한 누수의 광경이 포착된 것을 선택한 결과다. 

《미국인들》에 수록된 적지 않은 사진들에서, 인물들은 각종 프레임(액자, 텔레비전, 드라이브인 극장의 스크린 등등) 속의 이미지로서 제시되거나 몸의 일부만 보이는 채로 포착되기도 한다. 제목이 무색하게 심지어 아예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사진들도 있다. 이 사진집의 제목은 분명 ‘미국’이 아니라 ‘미국인들’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미국인들》은 미국(적 풍경)이라는 허구와 사람이라는 사실의 동시적・모순적 공존을 통해서만 성립가능한 프랭크 특유의 사진적 인물에 관한 유형학적 탐구이며, 여기 수록된 사진들을 통해 프랭크는 자신의 사진적 인물을 지탱할 수 있는 허구의 누수율을 여러 방식으로 가늠해본 것이라고 말이다. 《미국인들》의 인물사진은 사진적 인물의 명료한 현존을 통해 ‘허구 없는 사실’(인간 자체)이라는 모호한 관념에 맞선다. 《미국인들》의 풍경사진은 사진적 인물의 명료한 부재를 통해 ‘사실 없는 허구’(미국 자체)라는 모호한 관념에 맞선다. 

알프레드 레슬리와 공동연출한 <풀 마이 데이지>는 프랭크에게 있어서 사진에서 영화로의 이행 또한 사진적 인물의 존재론적 양극성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짐작케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이행은 일종의 도전이기도 한데, 이유인즉 영화적 이미지는 인물과 관련해서 허구와 사실의 동시적・모순적 공존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극영화의 경우 허구적으로, 다큐멘터리의 경우 사실적으로 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해당 영화작품의 스틸사진은 영화적 이미지에서 억압되어 있던 존재론적 극을 재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을 볼 때 (톰 크루즈가 연기한) 이선 헌트를 지각하는 반면, 이 영화에서 발췌한 스틸 사진을 볼 때는 동일한 존재를 (이선 헌트를 연기한) 톰 크루즈로 지각하곤 한다.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독자 각각의 실험에 맡기고 싶다.) 특히 원본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아무런 정보가 없는 관람자에게 스틸사진 속의 인물은 철저하게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대상으로 비칠 것이다. 크루즈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뭔가 이러저러한 것도 같고 이러저러한 척하고 있는 것도 같은 잘생긴 남자’ 정도는 지각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스틸사진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존재론적 양극성을 영화적 이미지 내에서 활성화시키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돌이켜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19세기 말에 탄생한 영화는 이후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문제에 거의 무관심한 채로 남아있었다.


사진 4

프랭크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투신한 1950년대 후반은 영화적 인물의 존재론적 양극성을 활성화하는 문제를 두고 여러 영화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씨름하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프랭크가 <풀 마이 데이지>를 제작(사진 4)하던 무렵,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다큐멘터리스트인 장 루슈가 <나, 흑인>(1958)에서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영화적 인물의 형상화라는 도전에 임하고 있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의 고다르는 이 영화를 보고 흥분해서 “프랑스영화라는 늪지대 속의 포석(pavé)”이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여기서 루슈는 ‘비-배우(non-actor)’인 출연자들에게 사운드트랙이 없는 가편집 상태의 필름을 보여주고는 각자 즉흥적으로 코멘트하게끔 한 뒤 이를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활용했다. 프랭크가 이 작업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풀 마이 데이지>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구성 방법은 <나, 흑인>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별다른 사운드 장비 없이 무성으로 촬영된 <풀 마이 데이지>의 편집을 마친 뒤, 프랭크는 작가 잭 케루악으로 하여금 편집본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이야기하게 하고 이를 보이스오버로 활용했다. 케루악의 보이스오버는 단지 영화 속 상황에 대한 묘사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 부분까지 포괄하고 있다. (무성영화 시기의 변사 공연 비슷한 것을 떠올려보면 된다.) 루슈의 비-배우들과의 중요한 차이라면, 여기서 케루악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즉흥적 보이스오버는 관객이 영화적 이미지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게 하면서 허구나 사실 어느 쪽으로 쉽사리 경도되지 않게끔 하는 효과를 낳는다. 프랭크와 루슈 모두에게 있어 보이스오버는 그 자체로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사진적 이미지와는 달리 양극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는 영화적 이미지의 구속을 풀어놓는 장치가 되고 있다.

《미국인들》에서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사진적 인물의 유형학적 탐구를 수행했던 프랭크는, <풀 마이 데이지>에서 영화적 인물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유형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장르적으로는 분명하게 극영화라고 할 수 있는 프랭크 영화의 출연자들은 루슈와는 달리 ‘비-배우’에 국한되지 않으며 유형도 훨씬 복잡하다. 영화의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다. 철도노동자이자 색소폰 연주자인 남편 마일로, 화가인 아내, 그리고 부부의 아들이 사는 집에 남편의 친구들이 들이닥친다. 아내는 집에 한 전도사 가족을 초대하는데 이들의 방문은 남편의 친구들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다. 프랭크가 각각의 등장인물을 연기할 이들을 캐스팅한 방식은 흥미롭다. 아내 역은 델핀 세리그가 맡았는데, 당시 화가 잭 영거맨과 결혼한 상태였고 갓 경력을 쌓고 있던 신인배우였던 그녀는 이후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1961)나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1975) 등으로 널리 알려진다. 남편 역을 연기한 이는 화가인 래리 리버스였고, 부부의 아들로 출연한 아이는 로버트 프랭크의 실제 아들인 파블로 프랭크이다. 한편 남편의 친구로 출연하고 있는 앨런 긴즈버그, 피터 오를로프스키, 그레고리 코소는 (보이스오버를 맡은 케루악과 더불어) 이른바 비트 세대의 작가들로 영화에서 그들은 실명 그대로 ‘스스로를 연기’한다. 이쯤이면 짐작했겠지만, <풀 마이 데이지>의 인물들이 허구와 사실 사이에서 양극을 관계짓는 양상들은 꽤 다양하다. 나의 가설은 이렇다. 이처럼 다양한 양상을 한꺼번에 스크린 공간에 모아두고, 정작 스크린에는 보이지 않는 케루악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말들을 통해 영화적 이미지를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 각각의 양상에 따라 영화적 인물의 존재론적 양극성은 어떤 식으로 활성화되는지를 탐구한 작품이 <풀 마이 데이지>라는 것이다.


사진5


<풀 마이 데이지> 중반부의 한 장면에서 발췌한 두 개의 프레임(사진 5)을 보자. 별다른 정보 없이 스틸사진처럼 바라보면 프랭크가 《미국인들》 작업 당시 촬영했으나 사진집에는 최종적으로 수록하지 않은 사진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아이(파블로 프랭크)의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이 델핀 세리그라는 사실을 모르고, 휘날리는 성조기에 가린 채 설교하고 있는 전도사가 실은 아트딜러인 리처드 벨라미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풀 마이 데이지>에서 이 장면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남편 친구들이 전도사에게 짓궂은 질문을 퍼붓는 동안 아내는 자신이 전도사를 처음 보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때 돌연 플래시백이 시작되고, 케루악의 보이스오버는 사라지며, 우리는 데이빗 암람의 음악과 함께 그야말로 무성영화 상태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진정 영화적 내기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맡은 배역과 무관하게 그들을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영화적 인물로 경험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세리그와 벨라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느냐의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저 이 스크린적 존재들을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자 허구적인 이야기의 등장인물로서 동시에 경험하는가에 대한 물음일 뿐이다. 내 생각에 프랭크는 이에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적 인물의 존재론적 양극성을 활성화시킨다는 문제는 그의 이후 작업으로, 특히 첫 장편영화인 <나와 내 동생(Me and My Brother)>(1969) 같은 작업으로 유예된다. 


※ 로버트 프랭크의 <나와 내 동생>에 대해서는 《보스토크》 제20호(2020.3.16 발행)에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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